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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한민족 디아스포라

국가란 무엇인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서 비롯되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타국으로 이주하여 한민족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역사 교과서에서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언급하지 않고, 공식적인 이민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우리나라 이민은 1903년 하와이 이민을 그 시초로 본다. 디아스포라는 이민보다 광의적인 개념이고 이민은 디아스포라의 한 가지 부류로 볼 수 있다. 공식 이민의 역사는 약 117년이지만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엄밀하게 따지면 한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민족이나 부족이 흩어지고 뭉치고 하는 연속선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인천 월미도에 둥지를 틀었다. 해외로 나가는 이민자들은 주로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갔으니 인천에 자리 잡은 것은 이치에 맞다. 항구 도시 인천은 이산의 슬픔과 비애와 기다림이 혼재된 곳이다.  재결합과 이산은 모든 항구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특성이다. 이 박물관은 인천 시민과 해외 동포의 성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디아스포라는 영화, 문학 작품, 역사학의 소중한 배경과 소재가 된다. <애니깽 (1995)>과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2003)>은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의 비애를 예술적, 문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애니깽, 즉 에네켄(henequen)은 용설란으로 알려진 선인장의 일종으로 여기에서 추출한 삼실은 밧줄(로프)의 원료가 된다. 에네켄은 녹금(green gold)라고 한다. 흑인 노예를 흑금(black gold)으로 부른 것에 비유하여 사용했다. 금만큼 가치가 컸다. 식민 열강의 해양 무역이 활발해지고 국가 간의 주도권 쟁탈을 벌일 때 수요가 많아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세계적으로 멕시코의 용설란과 마닐라삼이 유명했다. 이자경은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1998)> 대작을 출판하여 잊고 있었던 한민족의 해외 이민사를 상기시켜 주었다. 애니깽은 이 대작이 나온 뒤에 제작되었으면 풍부한 사실에 바탕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가 영토를 보전하지 못하고 백성의 안전을 지키지 못할 때는 디아스포라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예외가 있는 국가는 없다. 몽골 원나라의 고려 지배, 만주족 청나라가 일으킨 두 번의 호란, 일본의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침략자의 노략질과 약탈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낯선 타국으로 끌려갔던가. 국가가 영토와 백성을 지키지 못한 일제 강점기에는 러시아와 만주 지역, 심지어는 중앙아시아까지 이주했다. 특히 임진왜란('임진동아시아 전쟁'이라고도 함)은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조선인이 외국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한민족 네트워크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것은 우연히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근성으로 이겨낸 결과이다.

      

임진동아시아 전쟁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마카오, 마닐라, 인도, 코친차이나(베트남 남부 지역) 등으로 팔려나갔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당시 일본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네덜란드와 교역이 활발했는데 조선인 노예들은 이 무역선에 실려 물건 팔리듯 팔려나갔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때 조선인을 노예 시장에 팔 계획을 했다. 국제 무역에 일찍 눈을 뜬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은 한반도 전쟁의 와중에 조선인, 중국인, 일본인을 노예로 팔아 전시 특수를 보았다. 전시 특수 품목에는 전쟁에 필요한 식량과 군수 물자만이 아니라 사람도 거래의 대상이었다.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는 약육강식의 논리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사람이고 물건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는 아편전쟁에서 제국주의의 추악한 욕망을 확인한 바 있다. 나쁜 짓은 쉽게 따라 한다. 일본 제국주의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앞세워 해외 이민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조선인을 모집하고 하와이, 멕시코로 노예로 팔아넘겼다. 임진동아시아 전쟁에서 하던 버릇이다. 영화 <애니깽>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일본이 노예로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알 것을 두려워하여 멕시코에서 조선에 15년 만에 돌아온 주인공을 총살시킨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적으로 700만 명 정도이다. 디아스포라 중에서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재회를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이 있다. 남북 이산가족이다. 남북 이산가족은 분단과 이데올로기가 만든 디아스포라다. 자발적으로 월북을 한 경우도 있고, 납북된 경우도 있다. 반대로 자발적으로 월남한 경우도 있고, 가족이 모두 월남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다. 현재 지구 상에서 분단국가는 남과 북이 유일하다. 디아스포라치고 지리적으로 이처럼 최단거리에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하와이도 멕시코도 아니다. 이산가족이 재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들의 흘리는 재회의 눈물은 잊을 수 없다. 그 눈물은 피만큼 뜨겁다. 피눈물이고 한 맺힌 눈물이다. 디아스포라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남북 디아스포라의 재회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 줄 기회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을 한민족디아스포라박물관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김원모(2002). 한미 외교관계 100년사. 철학과 현실사. 

이자경(1998). 한국인 멕시코이민사. 지식산업사.

이종찬(2016). 열대의 서구, 조선의 열대. 서강대학교출판부.

영화 <애니깽>(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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