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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

도량과 용인술의 차이

역사적 인물 중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은 종종 흥미로운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출신 배경과 성장 환경이 다를 뿐 아니라 성품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리더십의 좋은 소재거리가 될 것이다. 이 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발단은 전국시대를 평정한 진(秦)의 시황제가 리더십을 잃게 되면서 야기되었다. 중국처럼 광활한 국토에 수많은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곳에서 리더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민심을 잃게 되면 지역의 맹주들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시황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통해 정국을 주도해 나갔지만 만리장성 축성과 대운하 건설 등 과도한 토목공사에 따른 가혹한 노역 등으로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 이뿐이 아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로 통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유학 경서와 유학자들을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반인륜적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면서 인재들이 떠난다. 설상가상으로 제후국으로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군웅들이 거병할 명분을 제공했다. 거병의 명분은 시황제의 가혹한 폭정을 멈추게 하고 그를 황제의 자리에서 내쫓는 것이었다.   

   

현대의 정치공학 용어로는 독재타도와 정권교체라는 기치 아래 모여든 군웅들 중 유방과 항우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통일 국가치고 너무나 짧은 역사(15년)를 남기고 멸망한 진 이후 패권은 유방과 항우의 싸움으로 결정 나게 되었다. 유방과 항우는 출신 배경과 성장 환경 그리고 성품에서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다. 史記에서도 유방과 항우의 성격을 비교하고 있다.      


유방은 가난한 농민 집안의 출신이다. 가방끈도 짧아 문해 능력도 변변치 못했다. 한때는 장돌뱅이처럼 이리저리 다니면서 이른바 협객 노릇을 하면서 수하를 거느리기도 했다. 얼굴 하나는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용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고 약간의 신비감마저 드는 관상이었다. 도량이 넓고 의리를 중히 여기고 참모들의 의견을 잘 듣는 편이다. 전형적인 덕장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항우군에게 쫓길 때 마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함께 탄 아들과 딸을 떠밀 쳐 버리는 비정한 모습에서는 유방이란 인물이 무섭기도 하다.      


항우는 명문가 출신이다. 공부도 어느 정도 했지만 칼 쓰는 것이 적성에 잘 맞았다. 무인형의 외모에 힘이 장사였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 氣蓋世)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당백의 힘을 자랑했다. 마초형의 호연지기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자만심에 빠지는 성품의 소유자다. 성질이 불같으면서도 감수성이 풍부하여 눈물을 보이는 변덕스러운 스타일이다. 자신의 용맹을 과신한 나머지 참모들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전형적인 용장의 영웅적 기질을 갖췄다. 그러나 수십 만 명의 적군의 포로에게 먹일 식량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을 생매장하는 등 잔인무도한 폭군의 기질도 다분하다.      


유방과 항우가 난세에 호각지세를 보이는 가운데 펼쳐진 패권 다툼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두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누가 더 넓은 도량을 가졌느냐이다. 전쟁의 초중반 객관적인 군사력을 평가하면 유방의 군대는 항우의 군대에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유방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본래 성품이 느긋하고 의리를 중시하지만 믿는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고 공을 세운 부하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해주었다. 항우는 전신(戰神)으로 불릴 정도로 용맹하고 싸움에 능했지만, 그는 부하 장수의 공적에 대해 걸맞은 보상을 하는 데 인색했다.  둘째는 용인술, 즉 인재 등용이다. 유방은 개인적으로 싸움과 지략에서 항우와 비교하기 곤란할 정도로 상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인재 발굴과 적재적소의 등용으로 보완했다. 반면 항우는 자신을 과신하고 주변의 인재를 무시하고 내치는 스타일이었다. 한신(韓信)만 해도 그렇다. 원래 그는 항우 진영에 가담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자 유방에게 투항하고 종국에는 항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역사의 결과를 보면 용장보다는 덕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덕장이란 표현에는 당사자의 인품이 넓고 관대한 도량을 갖추고 주변 참모들의 의견을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항우와 유방에게도 책사와 지략가들이 있었다. 항우는 의부라 부르는 범증이 있고,  유방에게는 수많은 참모들이 있지만 장량(장자방)이 대표적일 것이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은 두 사람의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참모들 간의 지략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쟁의 우위를 예측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 즉 군사 수, 사기, 용맹성, 군량미, 기동성 등의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게 힘, 즉 참모들의 지략과 민심 등 정치공학의 이용 등을 놓고 보면 유방이 앞서게 된다. 또 전쟁이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항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면서 특급 참모로서 뿐 아니라 뛰어난 지략가였던 범증을 내치는 최악의 자충수를 두고 만다. 물론 유방 측이 쳐놓은 덫에 걸려든 결과였다.       


항우와 유방의 리더십 스타일, 그리고 그들이 패권을 놓고 다투던 때에 보여준 의사결정과 행동들은 현대의 국가나 기업의 경영에서도 역지사지로 눈여겨볼 점이 아닐까 싶다. 도량이 넓으면 인재풀도 넓어지게 마련이다. 도량과 용인술은 민심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상승작용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재풀이 넓다는 것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국가 통치에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요즘 부동산에서 '똘똘한 한 채'가 중요하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국가 통치를 위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똘똘한 한 사람'보다는 다양한 의견과 서로 다른 이견을 제시할 여러 명의 인재들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결국 역사의 승자는 자신과 다른 인간 유형에 대한 관대한 도량과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인재의 등용에 달려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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