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Aug 24. 2022

기후변화,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④ 집중호우

2022년 8월 8일 서울 동작구에는 하루 동안 381.5㎜의 비가 내렸다. 1907년 서울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이 1,200㎜인데 약 3분의 1이 하루 만에 쏟아졌다. 이날 집중 폭우로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강남지역은 한밤에 지하철역이 침수되고 도로가 잠겨 도시가 마비될 정도가 되었다. 재난영화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일정하게 한정된 지역에 중적으로 쏟아지는 비를 국지성 집중호우(局地性 集中豪雨)라고 한다. 언제 어느 지역에서 폭우가 내릴 줄 모른다고 해서 게릴라성 호우라고도 불리는 국지성 집중호우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8월 5일 미국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사막기후인 데스벨리(Death Valley)에는 3시간 만에 37.1㎜가 쏟아졌다. 8월 평균 강수량 2.79㎜의 13배 수준이다. 이 정도의 강수량이면 다른 지역에서는 통상적인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데스벨리에서는 천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홍수라고 하니 얼마나 비가 내리지 않는지 짐작이 간다. 데스벨리는 사하라 사막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무더운 지역으로 배드워터 분지는 해발 고도가 -82m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내륙 지역에 해당한다(저자는 2010년 겨울 자동차로 데스벨리를 통과한 적이 있었는데 그 무더운 사막에도 주민들이 거주하고 각종 관광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이 경이롭게 보였다). 2021년 10월 캘리포니아 주도(州都) 새크라멘토에는 24시간 동안 132㎜의 비가 내려 1880년 이후 일일 최고 강우량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김진욱, 2021). 작년 7월 독일 쾰른에서는 7월 평균 강수량 87㎜의 2배인 154㎜가 내렸고, 라이퍼사이트에서는 9시간 동안 207㎜의 집중호우가 내렸다(박상현, 2022). 지구촌 곳곳에서 전해지는 집중호우에 대한 소식은 너무 많아 일일이 기록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기에 집중호우가 내리는 것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난 수년간 지구촌의 집중호우는 그 횟수가 더 빈번해지고 정도 또한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중호우는 지역에 따라 산사태, 주택과 도로의 침수, 농경지 유실, 단전 단수 등 다양한 유무형의 피해를 동반하는데 이를 수해 또는 수마(水魔)라고도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저수지와 댐을 만들고 관개수로를 정비하여 물로 인한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어릴 적 농촌에서 겪은 수해로 인한 피해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불이 나면 흔적이라도 남지만,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특히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는 날에는 그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예컨대 1987년의 셀마로 345명, 2002년의 루사로 246명, 2003년에는 매미로 132명이 사망했다. 


여름 집중호우와 태풍이 고향의 집과 터전을 얼마나 참혹하게 할퀴어놓았는지 눈에 선하다. 7, 80년대 농촌은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현재보다 허술했다.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날이면 저지대에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피난 가기 일쑤였고, 힘들게 짓던 농사를 망쳤다. 삶의 터전인 평야지대는 거대한 강으로 변하고 가재도구며 돼지, 염소 등의 가축이며 심지어는 사람까지 둥둥 떠내려갔다. 바윗돌도 뚫을 듯한 강력한 물줄기는 강의 지형을 바꿔놓을 정도였다. 이전의 강줄기는 자갈로 덮이고 엉뚱한 곳에 새로운 강줄기가 만들어졌다. 


최근 부쩍 빈번해진 집중호우는 인류에게 보내는 심각한 '경고장'이 아닐까 싶다. 특히 사막지역에 홍수가 나는 것을 '대이변'으로 받아들이고 해외토픽으로 취급하고 마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아의 홍수는 아니더라도 지구 기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것이다. 기후변화 연구의 권위자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 원장을 지낸 권원태 박사에 따르면, 집중호우의 결정적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海水) 온도의 상승을 꼽는다. 통상 온도가 1℃ 증가하면 수증기는 7% 증가하는데, 현재까지 산업화 이전과 대비하여 1.1℃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40년까지는 0.4℃가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인 1.5℃ 상승은 피할 수 없다고 한다. 한반도만 해도 남부 지방은 온대기후가 아니라 아열대 기후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일 평균 기온이 5℃ 이하면 겨울이고 20℃ 이상이면 여름이라고 정의하는데 부산, 제주 등에선 사실상 겨울이 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박상현, 2022). 집중호우의 원인은 명확하다. 전문가들의 내놓은 집중호우의 근본적인 원리는 지구온도가 상승하면 해수온도가 상승하고 더불어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리는 것이다. 


세계 주요 국가의 지도자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이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 간 협약을 체결하기도 하고 과학적 연구결과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 마지노선을 달성할 진단과 해법은 충분히 나와있다. 문제는 실천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국가 간에 지구온도를 낮추기 위한 탄소중립 등 추진 과정을 지켜보면 그 마지노선을 지켜낼지 장담하기 어렵다. 개인과 국가의 이기주의가 극도로 팽배하다. 국가마다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유다. 탄소중립은 경제적 이유를 앞세우면 절대 달성할 수 없다. '너는 줄이고 나는 지켜보겠다'라는 식의 기후변화 대책으로는 기후 마지노선이 뚫릴 수밖에 없다. '나도 줄일 테니 너도 줄여라'로 생각을 바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하면서 탄소중립 타령을 하고 있을 때 집중호우현상은 더 빈번해질 것이며 수해의 규모는 점점 증가할 것이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진행하면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동원해도 역부족이라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치수(治水)는 곧 임금의 주요 역할 중 하나였다. 중국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요, 순, 우 임금은 물을 잘 다스린 것으로 유명하다. 전통사회에서 대홍수는 국가적 재난이었고 임금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시험하는 중차대한 도전이고 역경이었다. 물을 잘 흐르게 하고 적절하게 가둬놓으면 되었다. 이제 인류는 단순히 물을 관리하는 치수와 관개(灌漑)의 문제를 훨씬 넘어섰다. 기후변화를 멈춰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지구의 위기에는 전쟁, 국익, 이념, 지역, GDP를 뛰어넘는 담대한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당대의 세대만 편하게 잘 살고 떠나는 지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후손에게 남겨줄 우리의 지구라는 점을 명심하자.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한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도 그 공을 다투지 않기 때문이다. 제발 인간을 무한정 이롭게 하는 물이 인간을 향해 화를 내지 않게 하자. 



김진욱. (2021). 《한국일보》. 美 서부 기록적 폭우, 대형 산불까지 껐다 … 의외의 순기능?〉.  10월 26일.

문영일. (2022). 《중앙일보》〈서울의 빗물 배수 시간당 100mm 이상 돼야. 8월 16일.

박상현. (2022). 《조선일보》. “한반도 남부 이미 아열대 기후 … 하루 381㎜ 강우, 스콜도 기승”. 8월 15일.

클라크, 조세린. (2022). 《중앙일보》. 물을 다스리는 지도자. 8월 18일.

작가의 이전글 갑(甲)의 귀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