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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an 19. 2023

호남 3대 명촌(名村) 1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金安里) 사례



광주-무안 고속도로에서 나주 톨케이트를 지나 좌회전 신호등을 기다리다 보면 정면에 '호남 3대 명촌 금안동'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명촌(名村)이라는 말도 낯설지만 호남 지역 마을 중 세 개 마을만을 명촌으로 부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선정되어 불려져 왔다. 호남 3대 명촌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 원촌(院村) 마을, 전남 영암군 구림(鳩林) 마을, 전남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金安里)를 말한다. (저자는 타 지역에도 '명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마을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사이트를 검색했지만 찾지 못했다.)


어떤 마을이 '명촌(名村)'이 되는 것일까? 전통 사회에서는 명촌을 이야기할 때는 우선적으로 풍수지리를 빌어 명촌의 지리적 조건을 따졌다. 풍수지리에서 명촌이란 실개천과 냇물이 마을을 감아 돌고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 논밭이 넓어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는 마을을 말한다. 명당자리가 곧 명촌에 필요한 중요한 입지조건이다. 그 마을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오고 대대손손 명성을 이어나가는 것도 명당자리이기 때문이다. 숙명론적인 환경결정론이다.


전통사회에서 풍수지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풍수지리는 집터나 묏자리를 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의 수도를 정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국가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조선은 수도를 정할 때 계룡산으로 할 것인가, 한양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논쟁을 벌였다. 한양을 수도로 결정한 뒤로는 좌청룡 우백호를 어느 쪽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을 필요로 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자리는 '후손에게 장차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되는 묏자리나 집터'인데 누가 이 좋은 자리를 마다하겠는가. 명당자리는 풍수지리설에서 이상적 환경으로서 길지(吉地)를 가리키는 지리 용어이지만, 음과 양의 조화에 따라 자연의 질서가 변화한다는 사고체계를 가진 전통사회에서는 논리적 합리성을 갖춘 '과학'에 해당했다. 풍수지리는 사람이라면 살아서는 좋은 환경을 갖춘 집터에서 살고 싶고, 죽어서는 땅의 기운을 얻어 영원히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땅에 대한 논리화된 사고체계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수지리설은 땅의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명당>은 '땅의 기운이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라는 왕조시대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시대극이다.


현대 사회에서 명촌의 개념은 전통 사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명촌은 교통의 접근성이 쉽고, 문화 및 여가 생활이 편리하며, 자녀의 교육환경이 잘 갖춰진 곳이면 명촌의 반열에 들어갈 것이다. 역세권, 초역세권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는가 싶더니 요즘엔 '슬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슬리퍼와 권의 합성어로 슬리퍼 차림과 같은 편한 복장으로 카페나 편의점, 쇼핑몰 등의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을 뜻한다. 풍수지리를 따지는 것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할 것이다.


저자는 명촌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5대 조건은 지리적 조건, 인물, 마을공동체 의식, 전통의 현대적 계승, 마을의 지속가능성이다. 조선시대에 호남 3대 명촌 중 한 곳에 해당하는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를 사례로 들어보자.


첫째, 지리적 조건으로서 금안마을은 금성산(해발 451m)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실개천과 냇물이 막힘없이 사시사철 흘러내려 논밭을 축축하게 적신다. 심한 가뭄이 닥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대개 마을에는 한 두 개 정도의 저수지가 있는 법인데 금안리에는 저수지가 곳곳에 있고 냇물과 실개천이 논과 밭에 핏줄마냥 이어져 있다. 금성산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마을과 논밭을 보호하는 형세다. 전통적인 기준에서 명당자리다.


 둘째, 금안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이 배출된 고장이다. 금안리에는 유독 서원, 사당, 공덕비가 많다. 그만큼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어 마을의 이름을 빛냈다는 뜻이다. 금안리는 조선 유학의 정통성을 잇는 서원이 세 개(정가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설재서원, 나주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 박순을 모신 월정서원, 동방오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김굉필을 추모하는 경현서원)나 있다. 마을마다 한 개의 서원이 있을까 말까 하지만 무려 세 개씩이나 있다고 하여 ‘서원동네’라고도 불린다. 금안리 출신 인물들을 이곳 지면에 모두 나열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인물들 중 대표적인 몇 사람들만 소개해보자.


고려시대 설재(雪齋) 정가신(1224∼1298)은 명문장가에 명망 높은 정치가였다. 설재가 충렬왕 때 세자와 함께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 세조 쿠빌라이(칭기즈칸의 손자)에게 바친 고향집을 그리워하며 지은 사향시(思鄕詩) 수를 감상해 보자.  


고국의 남쪽에 금성산이 있고 海東南有錦城山

그 산 밑에 내가 살던 초가삼간 있네. 山下吾廬草數間

골목과 뒤안의 버들과 복숭아는 내가 친히 심었으니 巷柳園桃親手種

봄이 오면 응당 주인 오기를 기다리겠지 春來應待主人還

 

내 집은 머나먼 삼천리 밖에 있고 家在三千里外地

내 몸은 화려한 십이제왕성에서 놀고 있구나 身遊十二帝王城

옥통소를 불며 고향 생각을 달래는데 玉簫吹斷江南夢

창밖의 무심한 달은 벌써 새벽녘을 알리고 있구나. 窓外無心月五㪅


고향에서 삼천리 떨어진 멀고 먼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소박한 감정을 담은 시다.( 이 시는 마을 담장이나 나주시의 카페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시에 감동받은 쿠빌라이는 설재에게 금으로 된 말안장과 백마, 옥대를 선물로 주었다. 원래 금안동은 숲이 우거진 날짐승의 낙원이란 금안동(禽安洞)이었으나, 쿠빌라이가 설재에게 선물한 '황금 안장' 곧 '금안(金鞍)'을 하사 받고 돌아왔다고 해서 동명의 금안동(金鞍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금안동은 금안동(金安洞)으로도 부른다. 저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중국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설재에게 선물한 황금안장(金鞍)에서 금안동(金鞍洞)이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대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에서 금안동(金安洞)이라는 마을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원주민들은 금안리를 '기말리'라고도 부른다.) 


고려 말 정지(鄭地) 장군은 호남과 남해안에서 활개 치던 왜구를 물리쳐 크게 이름을 떨쳤다. 정지 장군은 동시대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최영, 이성계와 더불어 고려 말 3대 무신 중 한 사람으로 관음포 대첩을 이끌었다. 관음포 대첩은 최영의 홍산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 최무선의 진포대첩과 함께 고려말 왜구를 격퇴한 4대 대첩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해군의 정지함은 바로 정지 장군의 공적과 충절을 기리는 함선이다. 금안리의 경열사(景烈祠)는 정지 장군을 추모하는 사당이다.  


금안리 출신으로 조선시대 대학자 보한재(保閒齋) 신숙주(1417~1475)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금안리는 신숙주의 친가가 아닌 외가다. 보한재는 금안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설재 정가신이 외조부다. 조선시대 인물 중 더 이상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인물이 바로 신숙주일 것이다. 보한재는 세종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집현전 학사 중 한 명이었지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리를 저버리고 수양대군을 세조로 옹립하는데 가담하면서 의리를 배신한 인물로도 기록되고 있다. 대의명분과 의리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조선에서 그는 배신과 변절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람들은 여름철 쉽게 변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부른다. 다른 유래도 전해온다. 신숙주는 숙주나물을 좋아했다. 함길도 체찰사로 여진족을 정벌할 때, 여진족이 숙주나물을 순식간에 길러 군량으로 쓰는 걸 보고 숙주의 종자를 가져와 보급했다. 세조는 보한재가 숙주나물을 유난히 좋아하고 잘 먹는다고 하여 '숙주나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탓이리라.


보한재는 지조가 없는 나약한 선비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그가 남긴 공적은 변절과 배신이라는 낙인을 지우고도 남을 정도다. 한글은 세종 혼자만으로 창제될 수 없었다. 세종은 유능한 참모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중에 보한재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일본어, 중국어, 여진어, 몽골어 등 다국어에 능통하여 여러 언어의 음운과 어휘 등 언어학에 탁월한 능력을 지녀 한글을 창제하는데 꼭 필요한 인재였다. 보한재는 요동(遼東)에 귀양온 명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 황찬(黃瓚)을 찾아 열세 번이나 요동으로 왕래하여 음운에 관해 토론하면서 한글 창제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명촌의 조건으로서 지리적 조건과 인물로만 따지면 명촌의 반열에 들어갈 마을이 많을 것이다. 명촌 금안리에는 다른 마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결정적 한방이랄까. 고방(告榜)터. 고방터는 조선시대 과거급제를 알리는 임금의 교지를 수령하는 장소이다. 이 마을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음을 짐작케 하는 곳이다.


명촌의 세 번째 조건으로서 마을 공동체 의식에 대해 살펴보자. 금안리에는 하동 정 씨, 나주 정 씨, 풍산 홍 씨, 서흥 김 씨가 자자손손(子子孫孫) 거주하고 있다. 각 성씨들은 인천, 천변, 반송, 광곡, 수각, 원당, 송대, 영안, 구축, 월송, 송정, 금곡 등 12개 자연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자치규약인 대동계를 통해 마을의 중요한 사안을 풀어왔다. 이 대동계는 임진왜란 때 나주 출신 김천일(1537∼1593) 장군의 진중에서 활약했던 홍천경 장군 등이 황폐해진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뜻에서 결성했다고 한다. 쌍계정(雙溪亭)은 대동계가 개최되는 곳이다. 쌍계정은 설재 정가신이 1280년 세운 정자로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는 현판도 보인다. '사성'이란 나주 정 씨, 하동 정 씨, 풍산 홍 씨, 서흥 김 씨 등 네 성씨 문중을 말한다. 쌍계정에서는 신숙주, 말주 형제와  마을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이곳에서 마을 공동의 자치규약인 대동계를 결성하여 미풍양속의 전통을 실현하고 학문을 토론한 명소로 잘 알려졌다. 용마루 창고에는 대동계의 규약집이 보관되어 있는데, 회의를 열 때마다 열람한다. 전통사회에서는 마을에 인물이 많다 보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일방적으로 마을 일을 끌어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명촌 금안리에서는 오늘날 지방자치의 뿌리가 되는 자치규약을 만들어 대동(大同)이라는 기치 아래 주민 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촌의 조건으로서 네 번째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다. 금안리  진입 표지판을 보면 '한글마을'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영어마을, 정보화마을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지만, 한글마을은 생소하다. 조선시대 신숙주와 연결된다. 신숙주의 후세들은 금안리에서 출생하여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기여한 신숙주의 생가를 복원하여 공원으로 가꾸고 한글창제의 교육장으로 활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주시청 등 관계 기관에 문중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출하였다고 한다. 훈민정음은 세종을 중심으로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완성된 국가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그때 참여했던 신하의 생가터를 한글마을로 짓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금안리 주민들이 과거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측면에서는 가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10월 9일 한글날에는 한글백일장을 개최한다.) 2023년부터 나주시에서는 명실상부 명촌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금안리를 전통역사문화센터로 만드는 사업에 착수했다. 이뿐 아니다. 나주시는 명촌 금안리가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금성산생태숲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금성산의 생태특성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다섯 번째 명촌의 조건은 우리나라 모든 농촌 마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마을의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다. 농촌 마을 지속 가능성의 핵심 변수는 인구다. 금안리가 속한 나주시는 2022년 소멸위험지역(2022년 3월 기준 소멸위험지수 0.465)으로 진입했다.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인구수를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나눈 값으로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이 크다.) 마을에서는 갓난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볼 수가 없다. 마을 경로당 앞 공간에는 유모차가 줄지어 있다. 고령의 할머니들은 안전을 위해 유머차를 밀고 다니신다. 마을을 떠난 사람을 어떻게 돌아오게 할 것이며, 젊은이들이 귀농, 귀촌할 수 있도록 할 방안은 무엇인가?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대한민국에서 이 과제를 해결하는 마을이 곧 명촌이다. 금안리에 적정 인구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명촌이라는 수식어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나주시가 2023년부터 시작하는 귀농·귀촌인 유입을 위한 키움 하우스 조성 사업이 명촌 금안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명촌이란 수식어를 달기보다 그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은 더 쉽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명촌이 대대손손 그 이름값을 하려면 명촌으로서 지속 가능한 노력들을 부단히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명촌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지리적 조건, 인물, 마을 공동체 의식,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노력, 마을의 지속 가능성 등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지리적 조건은 현대사회에서 가변적인 요소가 되었다. 명당자리를 찾아 매장하는 풍습에서 화장장(2021년 기준 화장율 90.5%)이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바다와 사막에도 고층빌딩을 짓는 시대가 아니던가. 마을의 지리적 조건이 물리적 환경이라면 나머지 네 가지는 마을 주민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소프트 파워다. 오늘의 명촌이 내일 소멸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가수 이선희의 노래 '아, 옛날이여'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 날~" 명촌 금안마을 주민의 '일 금안 이 회진'이라는 자부심이 지속적으로 계승되기 바란다. (회진은 나주군 다시면 회진마을을 가리킨다.)



김선기. (2003). 호남정신 뿌리깃든 전라도 정자 기행. 보림.

김준태. (2014). 동아비즈니스리뷰. 탁월한 실력의 신숙주가 '배신의 아이콘(?)'이 된 이유.

박용수. (2022). 무등일보.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6월 8일.

손영철. (2014).. 광주일보. ‘호남 명촌’ 꿈꾸는 신숙주의 고향. 6월 19일.  

송형일. (2022). 연합뉴스. '호남 3대 명촌' 나주 금안동 귀농·귀촌 메카 조성. 10월 21일.

이돈삼. (2022). 전남일보.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돌담골목… 금성산 생태숲… 정겨운 '한글 마을'. 10월 6일.

이승준. (2022). 한길타임스. [한국의 서원 80] 정가신을 기리기 위한 나주 ‘설재서원(雪齋書院)’. 9월 20일.

나주시청. <금안리>. https://www.naju.go.kr/

<명당>. (2018).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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