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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r 07. 2023

baker's dozen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보너스

어릴 적 어머니 따라 시골장에 갔을 때 상인과 어머니가 주고받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생선가게에서 사용하는 말과 계란가게에서 사용하는 말이 달랐다. 좀 크서 알고 보니 시장에서 물건을 팔 때 물건마다 둘 이상의 단위를 부르는 각각의 이름이 있었다. 시장에서 고등어 한 손은 2마리고, 생선 한 두름은 20마리다. 한약방에서 한약 한 제는 20첩, 바늘 한 쌈은 24개를 뜻한다. 이 밖에도 마늘 한 접은 100개, 달걀 한 꾸러미는 10개다. 이런 용어들은 요즘 시골 장터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일상에서도 무게(g, kg), 양(리터)을 나타내는 단위를 많이 사용하는 데 모른다면이상할 정도다. 


문구점에서 연필을 살 때 단위는 다스다. 연필을 주로 사용하면서 몽당연필까지 아껴 쓰던 시절에 연필 한 다스를 사다 놓으면 한 동안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으니 든든했다. 다스는 영어 dozen의 일본식 발음인데 숫자 '12'를 가리킨다. 연필 1 다스(타스)는 12자루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다스(타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타’를 쓰고 있다. 한 다스는 '12'를 가리키는데, 빵집의 다스는 '13'을 의미한다. 빵집의 한 다스는 어떻게 숫자 '13'이 되었을까?


빵집의 '13'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가장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야기는 중세 영국에서 제빵사들이 고객에게 빵을 파는 방식과 관련된다. 당시 빵은 무게 단위로 팔았는데, 빵가게에서 무게를 속이고 폭리를 취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당국에서는 빵의 무게를 속여 파는 업주에 대해서는 벌금형과 채찍형을 가할 정도로 엄격히 단속에 나섰다. 죄질이 나쁜 제빵사에겐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제빵사들이 치밀하게 계산을 한 뒤 빵을 구워도 모든 빵이 똑같은 무게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많은 제빵사들은 밀가루 반죽 무게를 재는 저울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빵사들은 함량 미달에 따른 처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고객이 빵 1 다스를 주문하면 한 개를 추가로 더 주었다. 혹시라도 규정을 위반할 것을 두려워한 제빵사들의 선의 아닌 선의로 생긴 용어다. 어떤 빵집은 더 확실하게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14개를 주기까지 했다.


베이커스 더즌이 미국의 대도시 고층빌딩에도 사용된다. 13번째 층을 '빵집의 한 더즌'(Baker's Dozen)으로 표기한 빌딩도 있으니 말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베이커스 더즌 표기를 보면 빌딩 13층에 제과점이 있을 것으로 짐작할 것이다. 서양인들은 '13'이라는 숫자를 불길하게 생각한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날이 13일이라고 해서 그렇다고 한다. 13일에 금요일은 더 불길한 날이다. 13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빌딩주라면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베이커스 더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빌딩의 4층에는 아라비아 '4' 대신에 영어 'F'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베이커리 더즌은 제빵사들이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고육지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에게 선심을 쓰는 엑스트라 서비스로 발전하였다. 이런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직장에서 매일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확인했다. 대부분 전화는 아침에 이루어졌지만 어떤 경우에는 낮이나 밤에도 할 때가 있었다. 매일 한번 하는 전화지만 간혹은 두 번 걸어갈 때가 있었다. "아들아, 무슨 일이 있더냐?"라고 물으시는 어머니에게 "보너스입니다"라고 답하면 좋아하시며 웃으셨다. 내 나름의 해석을 하자면 베이커리 더즌은 고객을 기쁘게 하는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일본 소설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장면이다. 일본판 소설의 제목은 <一杯のかけそば>(한 대접의 메밀 온면)다. 배경은 홋카이도 삿포르시다. 매년 섣달그믐 밤이면 우동 한 그릇을 시켜 세 모자가 나눠먹는다. 요즘 세태에서는 세 사람이 우동 한 그릇을 시키면 아예 자리를 내주지 않는 식당도 많다. 그러나 주인은 세 모자를 위해 남 모르게 반 그릇 분량을 더 넣어주고 지정석까지 남겨준다. 주인은 매해 그날이 되면 세 모자가 앉았던 자리에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올려둔 채 자리를 비워둔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엄마와 장성한 두 아들이 가게에 들러 그동안 사정을 얘기한다.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해피엔딩이다. 베이커리 더즌의 추가 빵 한 개가 우동 반 그릇으로 바뀌었다. 넓은 세상에서 인간관계를 훈훈하게 만드는 베이커리 더즌이 어디 한 두 이야기만 있겠는가.


금융권의 베이커리 더즌은 뱅커스 더즌으로 바뀐다. 뱅커스 더즌(Banker's Dozen)은 베이커리 더즌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12에서 하나를 보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를 빼 11을 주는 것을 말한다. 채무자가 은행에서 12달러를 빌릴 경우 은행에서는 첫 달 이자 1달러를 미리 제하고 고객에게 11달러를 대출한다. 선 이자를 제하고 대출금을 주는 냉정한 거래방식이다. 머리로 장사하는 사람과 가슴으로 장사하는 사람과의 차이점이다.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 때문에 세상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 식당에는 김치가 사라지고 고추와 된장도 놓지 않는다고 한다. 김치를 담는 재료값이 너무 올라 식사비를 올리지 않은 대신 아예 진열을 하지 않는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도 있는 법이다. 광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각박해지는 인심을 누구엔들 탓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어려운 때만 있는 것도, 항상 좋을 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어려운 형편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에 좋은 시절이 언제 왔다 갔는지 잘 모를 뿐이다. 아무리 고물가에 인플레이션이 극심해도 베이커리 더즌에 담긴 훈김 나는 정겨움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박용필. (2008). 미주 중앙일보. <빵 한 더즌은 13개?>. 10년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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