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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14. 2023

교사

사랑하고 기다리는 사람

인도 영화 ‘블랙(Black)’을 봤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선천성 중증장애를 앓는 여자 아이와 교사의 이야기다. 영화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 갇혀 고통받는 아이 미셀 맥널리(Michelle McNally)와 그녀를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헌신적인 교사 데브라지 사하이(Debraj Sahai)가 만들어낸 인간 승리 스토리다. 픽션이 아니라 실화라고 하니 감동이 더하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유형의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있다. 미국만 해도 5,400만 명의 장애인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많은 장애유형 중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처럼 안타까운 것도 없다. 저자도 시각장애에 대해 특별한 연민을 갖고 있다. 장애인 중 우리나라 출신으로 미국 연방정부 차관보에 올라 장애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한 고(故) 강영우 박사(1944~2012)를 깊이 존경한다. 강 박사님은 중학생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망막을 다쳐 시력을 잃었다. 고인이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이 있다.


“인간에겐 보는 것(sight)과 비전(vision)이 있는데, 육안의 시력은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지만, 비전은 눈에 보이지 않은 더 높고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는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음으로 상상하고 시각화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미래를 보는 인생의 비전을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각장애라는 고난과 시련은 그가 더 큰 비전을 갖도록 단련시켰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미셀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 장애로 고통을 받았다. 부유한 그녀의 부모는 백방으로 미셀을 돕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부모는 미셀을 장애시설로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특수교사 사하이를 초빙해 맡긴다. 사하이 선생은 엄격함과 세심함을 갖추고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고 극복할 수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교사다. 사하이 선생도 장애를 가진 누이를 잃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미셀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학에 입학한 뒤 낙제에 낙제를 거듭한 뒤 친구들은 4년 걸리는 졸업을 12년 만에 하는 장면이다. 미셀은 사하이 선생으로부터 강의 내용을 수화로 전달받으면서 대학 공부를 했다. 사하이 선생의 손가락은 강의실이든 집에서든 미셀에게 향해 있었는데, 그의 손가락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마법의 손처럼 보였다. 사하이 선생이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한 말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자에게는 눈이며, 말 못 하는 자에게는 목소리이며, 귀 먼 사람에게는 시다.” “저 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유일한 단어는 ‘불가능’이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했다. 무려 18년을 오직 미셀의 개인교사로서 헌신한 사하이 선생은 알츠하이머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 기회를 얻은 미셀은 장애인에게 졸업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졸업의 영광을 사하이 선생에게 돌린다. "어릴 때 전 항상 뭔가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매번 잡히는 건 어둠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저를 낯선 사람 품에 안겨줬습니다. 세상 누구와도 다른 그분은 마법사였습니다. 바로 그분이 저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하이 선생은 미셀의 졸업조차 모른 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자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교육학에서 ‘교육’의 개념은 사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며 내면에 잠재한 능력과 가능성을 계발시켜 준다는 뜻이다. 사람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을 바다 밑 뻘에서 진주를 캐내고, 지하 깊은 곳에서 보석을 발견해 내는 일에 비유하면 어떨까 싶다. 사하이 선생은 나 자신을 진지하게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학생 모두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끄집어내려 하고 있는가? 그들을 끊임없는 사랑과 진심 어린 관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미셀의 졸업 연설에는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대사가 있다. “신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장님이고 귀머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는 것과 들리는 것만 믿으려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탓한 말일 것이다. 이 세상에 진짜 장님은 누구이고, 진짜 귀머거리는 누구인가? 강영우 박사의 말처럼,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이 진짜 장님이 아닐까. 자기에게 필요한 말만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진짜 귀머리는 아닐까. 교사에 대한 정의를 내린 사람들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만큼 넓고 깊은 울림을 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영혼을 낳아 키워주는 교사는 육신을 낳아 준 어버이보다 더 귀하다." 교사는 아이의 영혼을 담당하는 신성한 사람이다. 아무나 교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사야말로 교육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미셀은 사하이 선생을 마법사라고 부르지만, 사실 모든 교사가 학교에서 마법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법이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법은 '불가능(Impossible)'에 작은따옴표(')를 붙여 가능(I'm possible)으로 만드는 것이다. 저자에게는 작은따옴표가 마치 사하이 선생이 미셀의 손바닥에 글을 쓰는 손가락 모습과 비슷하게 생각된다. 마법사 사하이 선생은 어둠의 터널에 갇힌 미셀의 마음을  세상의 밝은 빛으로 인도했다. 교사가 무슨 마법을 부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교사가 사용하는 마법은 아카페적 사랑과 기다림이다. 그 마법의 효험이 곧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교사가 사용한 마법의 효험이 나타나는 시간이 각각 다를 뿐이다. '아이들은 열두 번 변성한다'는 말이 있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는 뜻이다. 마법의 효험이 어떤 아이에겐 학교 다니는 중에 나타날 수도 있고, 또 다른 아이에겐 한참 후 어른이 되어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의 지효성(遲效性)이다. 저자에게 '교육적 사랑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서슴지 않고 그것은 바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기다려주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원의 화초가 그렇듯, 미셀의 부모와 사하이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주삼환. (2021). 감동의 영화로 배우는 교육. 파주: 교육과학사.

블랙. (2009).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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