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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13. 2023

다문화사회의 성공 요건 1

종교에 대한 수용성

다문화 사회는 구성원들의 언어, 피부색,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로 연결된 상태로 여러 다른 생활양식이 존재한다. 다문화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종교 문제가 나오면 존중과 배려보다는 자기 종교의 독창성과 배타성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게 된다. 하물며 혈육으로 맺어진 가정에서도 식구들의 종교가 달라 갈등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전쟁 중 70%는 종교적 갈등과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십자군 전쟁 (1096~1270)은 2세기에 걸쳐 유럽의 기독교 국가와 서아시아의 이슬람(무슬림) 국가 간에 예루살렘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 유럽 기독교인들은 무려 8차에 걸쳐 십자군이라는 기치 아래 원정 전쟁을 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에게 성지(聖地)라는 점에서 피차 양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3차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3차 십자군 전쟁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연대하여 가장 막강한 군사를 조직하였지만 가장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린 전쟁이기도 했다. 이슬람군에는 관용과 아량을 앞세운 살라딘(1137~1193) 왕이 있었다. 이슬람군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포로들을 풀어주는 데, 이때 영화 주인공 발리앙이 살라딘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 그러나 모든 것이기도 하다(everything)”고 대답한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전쟁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모든 것을 건다. 특히 종교전쟁은 nothing 같지만 everything이 되는 아이러니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종교개혁(1517년) 이후에는 프로테스텐트(개신교)라고 부르는 신교파 교회가 생겨나면서 가톨릭을 신봉하는 나라와 개신교를 신봉하는 나라 간에 무려 30년(1618~1648) 동안 전쟁을 벌였다. 현대에서도 중동,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전쟁의 근원에는 종교적 갈등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어떤 국가든 종교가 근인이 된 물리적 또는 정서적 전쟁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종교가 개인과 집단의 신념체계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며, 종교 자체가 자신의 교리만이 유일무이하고 절대 진리라고 믿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문화사회에서 개인이나 집단이 신봉하는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한 국가에서 다문화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정도를 다문화수용성지수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나와 다른 인종과 다른 문화를 지닌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한 의사표현이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대학에도 많은 외국 유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다. 지방 소재 대학일수록 외국 유학생들이 더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2023년 3월 기준 21만 4000여 명의 유학생이 우리나라 대학의 학위 또는 비학위 과정에 등록하여 수학하고 있다. 국적별로는 베트남이 7만 38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이 6만 7451명으로 다음을 차지했다. 중동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슬람문화권 학생들도 눈에 띈다. 국내 대학들은 인구감소로 한국인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자 아예 외국 유학생만으로 학과를 만든다. 군장대학교는 현대삼호중공업과 외국인기술인력양성 협약을 체결하여 전체 신입생을 외국 유학생으로 선발한다. 졸업 후 취업연계프로그램이다. 심각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지역 소재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국내 대학 입학 전 현지 고등학교에서 미리 예비 외국 유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시키고 입도선매(稻先賣)하는 풍경도 본다. 앞으로 확 달라진 입학 풍속도를 빈번하게 보게 될 것이다.


외국 유학생들은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학생을 룸메이트로 묶어주는 대학도 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학생들이 생활하면서 다양한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려하는 차원일 것이다. 어느 날 한 밤 중에 한국인 학생은 검은 그림자가 방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도둑이나 강도로 알고 기겁을 했지만 알고 보니 자신의 룸메이트였다. 룸메이트는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로 밤중에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슬람교인은 하루에 다섯 번(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를 드리는 방향은 "끼블라"라고 하며 세계 어느 곳에서든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는 "까아바"라는 옛 신전을 향하여 예배를 드린다. 우리나라에서 메카 방향은 서서남으로 약 260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모두 한 방향을 향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들이 하나의 형제로 통일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바레인에서 런던으로 가는 걸프에어(Gulf Air) 좌석에는 TV 모니터가 하나씩 장착되어 있다. 이 모니터에는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알려주는 표시가 나온다. 위치인식위성(GPS)이 비행기에 달린 안테나와 교신하면서 메카의 위치를 알려준다. 무슬림 신자들은 비행기 안에서 모니터에서 알려주는 방향에 기도용 융단을 깔고 기도를 올릴 수 있다. 항공사에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무슬림 신자들의 종교에서 요구하는 교리를 실천하도록 돕는 것이다. 


두 사례는 매우 상반된 다문화 수용성을 나타낸다. 만약 한국인 학생이 무슬림 학생은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 기도한다는 사전 교육을 받았다든지, 대학에서 무슬림의 종교적 특성을 고려해 기도방을 만들었다면 한 밤 중에 놀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걸프에어는 사전에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들이 종교의식을 행사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급격히 이동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외국인과 이민 2세, 귀화자 등 이주배경인구가 총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2021년 11월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은 2,134,569명으로 총인구(51,738,071명) 대비 비율은 4.1%를 나타냈다. 이중 168만여 명은 결혼이민자다. 결혼이민자의 국적은 중국 35.4%, 베트남 24.6%, 일본 8.9%, 필리핀 7.1% 순으로 많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이주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다. 농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다. 


현실을 직시하면 우리나라 인구 구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에서 '인구소멸국가' 제1호로 한국을 지목했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 즉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인구 구조다. 인구구조모형이 피라미드에서 역 피라미드(역 삼각형)의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모형으로 바뀌었다. 더 큰 문제는 역 삼각형을 받치고 있는 꼭짓점의 힘, 즉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산율(가임 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은 1965년 6명, 1970년 4.07명, 1983년 2.08명, 2003년 1.19명, 2022년 0.78명으로 떨어졌다. 저출산 정도가 아니라 초저출산이다. 2021년 기준으로 프랑스 1.83명, 미국 1.6명, 영국 1.56명, 독일 1.53명, 일본 1.3명과 비교하면 매우 낮다. 우리나라와 같은 초저출산 현상은 전쟁이나 기아 같은 재난 시기에나 나타난다. 이러한 초저출산 추세가 이어진다면 우리나라 인구는 2100년에는 반 토막이 되고 2300년에는 0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이미 2017년을 정점으로 줄어들었고, 앞으로 50년 후면 절반이 된다. 매해 평균 3% 안팎의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500만 명가량의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다(임현진, 2023).


2021년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경기도와 충청남도는 외국인 주민 비율이 5%를 넘어 다문화사회의 척도가 되는 OECD 기준(5%)을 충족시켰다. 2022년 5월 기준으로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된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는 무려 111개 국적의 외국인 26,021명(전체 인구의 81.1%)이 거주하고 있다. 2023년 3월 기준 안산시 전체 주민 약 64만명 중 외국인이 9만 여명으로 약 14%를 차지한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중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 이곳에서는 순찰하는 경찰도 현지어로 소통이 가능한 외국인 출신이다. 안산시청은 11개국으로 상담이 가능한 시스템도 갖췄다. 역동적인 코리아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지역 경제의 한 축이 되었다. 지금부터 4, 5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나 잡화점을 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한국인들처럼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인들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강다은, 2022). 


이주자가 국경을 넘어 타국으로 이주할 때는 신봉하는 종교도 함께 갖고 온다.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이주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종교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에서 이주민에 대한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늘(몸통)로 비유하면 그 사람이 국경을 이주하게 되면 실(문화)도 함께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류 역사는 이주와 교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주와 교류의 과정에서 지역과 국가의 문화는 이합집산을 거쳐 또 다른 문화를 만든다. 오늘날 인류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이종번식의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일례로 과수원에서 일어나는 이종번식에 대해 알아보자. 기후변화로 꿀벌이 실종되어 꽃가루를 나르는 꿀벌의 몸값이 천정부지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과수원의 수분(受粉)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람, 새, 꿀벌 같은 곤충 등 자연 수분으로 진행될 터이지만 수분을 위해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꿀벌의 집단 폐사로 사람이나 기계가 수분을 해야 한다고 한다.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된다.) 과일나무의 수분 과정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과일나무는 자기 꽃가루를 거부하는 성질이 있어 다른 나무의 수술에 있는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옮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열매를 맺는 생명은 동종번식을 거부하고 이종번식을 선호한다. 지속적인 종의 번식을 위한 생태계의 원리다. 이 생태계의 원리가 과일나무에게만 적용되겠는가.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기독교, 불교, 가톨릭은 물론 여러 소수 종교가 공존해 왔다. 이제 다문화사회로의 잰걸음을 옮겨가는 한국 사회는 보다 다양한 종교와 종파를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2021년 대구 대현동 경북대 인근 주택가에 이슬람 사원(모스크)을 건축하려는 건축주(무슬림 유학생)와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은 대법원 판결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은 건축주의 손을 들어주면서 공사 재개를 판결했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건축허가를 내 준 관할 구청은 주민반대가 크자 건축주에게 공사중지를 통보하고, 건축주는 구청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다. 주민들은 건축될 모스크가 사방이 주택으로 둘러싸인 곳인 데다 담 하나를 두고 붙어있어서 생활불편이 커 공사중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축주는 주택 사이에 위치한 교회는 괜찮고 왜 모스크는 안되냐고 불평을 털어놓는다. 대구시민사회는 유엔에 긴급구제요청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외국 유학생을 유치한 대학에서 유학생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제도와 시설을 구비하는 것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의 선결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모스크 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건축현장에서 이슬람교에서 금지하는 돼지고기 음식을 나누며 일종의 혐오 포퍼먼스를 벌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아니다. 특정 문화를 혐오와 기피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다문화사회에서 가장 지양해야 할 행동이다. 종교적 다원성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요구하는 다문화사회에서 주택가의 모스크 건설과 주민의 생활 불편 사이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낼지 지켜볼 일이다. 


2021년 우리나라 성인의 다문화수용성은 52.27점으로 71.39점인 청소년에 비해 19.12점 낮게 나타났다. 2018년과 비교하면 청소년의 다문화수용성은 0.17점 상승하였으나, 성인은 0.54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가운데에서도 연령이 낮을수록 다문화수용성은 더 높게 나타났다. 성인과 청소년 사이에 다문화수용성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다문화교육에 대한 참여 정도와 다문화 구성원과의 접촉과 교류 여부가 주된 변인으로 꼽히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이행해 가는 데 있어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라는 질문, 즉 이웃으로서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거부 비율에 대한 조사결과에서 대폭 감소하는 수치를 나타냈다. 1990년에는 53.4%, 1999~2001년에는 46.8%, 2010~2013년에는 40.6%, 2017~2018년에는 22%를 나타냈다. 불과 2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감소했다. 독일과 미국의 경우 에는 1990년대 이후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교육과 교류의 효과다. 앞으로도 이주배경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다문화교육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고 지역 공동체에서 이주민과 함께 부딪히며 인간적인 교류를 하게 되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면 다문화수용성 지수는 올라가게 될 것이다. 타 종교에 대한 수용성 지수도 올라가면 좋겠다. 무엇보다 6, 70년대  우리나라에서 광부와 간호사를 수용한 독일의 노동부 장관이 "우리는 노동자를 수입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인간이다"라고 한 말을 새겨야 한다.  


염철현. (2033). 인문의 마음으로 세상을 읽다. 서울: 박영스토리. 

강다은. (2022). 다문화 특구 원곡동 "여긴 빈 상가가 없어요". 8월 3일.

임현진. (2023). 매일경제. 서기 2300년, 한국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진다 …"이민은 필수". 4월 19일. 

최은경. (2023). 조선일보. 외국 학생으로 99% 채운 지방대. 5월 2일. 

여성가족부. (2022). 2021년 국민 다문화수용성조사. 

<킹덤 오브 헤븐>. (2005).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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