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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기록은 기억보다 위대하다

사마천(BC 145? - BC 89?)의 '史記' 이야기

사마천의 史記는 단순한 역사서로 볼 수 없다. 시공을 뛰어넘어 불후의 세계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역사서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가슴 아린 인간적인 아픔과 고난, 바윗돌과 같은 신념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조상은 대대로 왕실의 사관인 태사(太史)였다. 아버지 사마담은 황실의 태사령으로 궁중의 예의 제도를 관장하고 천문 역법에 따라 해가 끝나면 새 역법을 바치며, 국가의 큰 행사가 있으면 길일과 기일(忌日)을 선택하여 올리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으로 있던 시절 한무제(BC 156-BC 87)의 봉선(封禪) 의식에 제외되는 바람에 마음의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왕조시대 봉선 의식은 제왕이 하늘과 땅에 왕의 즉위를 고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태사령으로 의식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천명이 다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때 사마담은 史記를 쓰고 있었는데, 아들 사마천에게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역사책을 집필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역사서 집필을 유언으로 남긴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아들의 능력을 믿고 있는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소자가 영민하지는 못하나, 아버님께서 순서대로 정리해 두신 옛 문헌들을 빠짐없이 모두 논술하겠습니다.”


사마천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태사령이 되어 본격적으로 역사서를 집필하던 중 그의 일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친구 이릉(李陵) 장군이 전쟁 중 흉노족에 투항하였는데 이를 변호하다 사형 언도를 받게 된다. 당시 사형 언도자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는 허리를 잘리고 죽는 것이고, 둘은 50만 전의 속죄금을 내고 풀려나는 것이며, 셋은 궁형(宮刑)을 받고 살아남는 것이다. 남성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은 너무나 치욕적인 형벌이라 형을 받기보다는 자결하는 것이 상례였다. 


사마천은 치욕적인 궁형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유언도 있었지만 발분(發憤) 의식이 발동했다. ‘史記’를 완성시켜 치욕을 상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다. 궁형이냐 자결이냐 양자택일의 길목에서 사마천은 유방(劉邦)을 도와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을 생각했다고 한다. 한신이 가랑이 밑을 기는 모욕을 견디고 훗날 중용되었듯이, 궁형의 치욕과 울분을 감수하고라도 기필코 살아남아 역사서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빛을 본 史記는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는 인문학의 진수가 아닐 수 없다. 인문학은 인간이 걸어온 길이요 인간이 수놓은 무늬다. 사마천은 냉철한 비판 의식을 바탕으로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수많은 인물들을 문헌, 현장 실사, 구전설화에 근거하여 그들의 발자취를 조망하였다. 인간의 영광과 좌절, 성공과 실패, 대립과 갈등, 배반과 우정, 탐욕과 자선, 이익과 손해 등 인간의 본질을 소신 있게 그려냈다. 사기는 우리나라, 일본 등 동아시아 역사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산문, 소설, 희곡, 문장 학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唐나라에서는 史記를 관리 임용 시험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오늘날 국가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입사 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과 같은 이치다. 


史記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나라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을 떠올리게 된다.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이자 독서왕으로 널리 알려진 백곡은 어릴 때 천연두를 거듭 앓아 지각 능력이 떨어졌다. 학습 장애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임진왜란에서 진주성 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이다. 그는 사기열전 중 ‘백이전(伯夷傳)’을 11만 3천여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1억 3천 번이라는 기록도 보인다.) 이 기록은 믿기지 않은 인크레더블한 사건이다.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을 읽었을 때 이런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까 싶다. 작년 충북 증평에서는 독서왕 김득신 문학관을 개관하였다. 


사마천은 치욕이냐 자결이냐는 일생일대의 갈림길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선택하였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사성(史聖)으로 평가받으면서 한때의 치욕을 영원한 찬사로 이어지게 했다. 자칫 딱딱한 역사서가 사마천의 인간적인 시련과 고통을 포개 읽으면 훨씬 흥미롭다. 기록은 기억보다 훨씬 더 힘이 세다. 목숨을 걸고 기록하고 후세에 역사를 남긴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을 확인한다. 치욕과 울분을 극복하고 역사의 고전을 완성한 사마천의 인간승리다. 史記는 중국 역사 3천 년과의 소통을 넘어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삶의 핵심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현대인의 물음표에 느낌표와 따옴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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