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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실크로드 12,000 km 도보 완주


한때 나는 약골이라는 놀림감이 되곤 했다. 환절기에 감기에 가장 먼저 걸렸고 일상의 리듬이 조금 깨지면 몸살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던 내가 걷기와 달리기를 규칙적으로 하면서 예전의 내가 아니다. 걷는 이야기를 해보기로하자. 나는 매일 집과 학교를 걸어서 다닌다. 걷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지 않으면 생체 리듬이 깨진 것 같다. 매일 일정한 거리를 걷게 되면서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연구에 따르면 하루 30분 이상의 걷기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 증가, 심혈관 질환 예방, 호흡기 기능 증진, 스트레스 완화, 면역기능 증진, 허리와 다리 근력 증대, 내장 운동을 증가시켜 체내 노폐물 배출을 돕는 등 신체를 건강하게 해준다. 두 발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생리적으로 걷도록 최적화된 구조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현대인의 대사증후군의 직직접적인 원인은 걷지 않고 자동차 등 문명 이기(利器)의 도움을 받아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한곳에 오래 머물면 썩게 되고 흐르는 물은 그 과정에서 정화되어 늘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본래 두발로 걷도록 되어 있는 인간이 걷지 않게 되면서 생기는 현상에 다름아니다. 인간은 걷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원이 아닐까 싶다.  


2022년 1월 21일 입적한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명상 수도승 틱 낫한(Thích Nhất Hạnh 1926-2022) 스님은 걷기 명상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불교 승려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 '플럼 빌리지(plum village)'을 세운 틱 낫한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종착지는 무덤인데, 왜 그리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가?'라고 묻는다(백성호 2022). 앞만 보고 달려가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동차 시동을 끄고 깊이 곱씹어볼 말인 듯 싶다.


여기 동서 문명의 교류와 이주의 역사길인 실크로드를 두 발로 걸었던 사람이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er). 그는 전직 기자 출신이다. 그는 가난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항만 노동자, 식당 종업원, 외판원, 토목 인부, 체육교사, 웨이터 등 다양한 사회적, 직업적 경험을 했다. 대학은 저널리즘 그랑제콜을 졸업하고 르피가로, 파리 마치와 같은 유력 신문과 잡지사에서 일하다 은퇴하였다. 60대의 그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실크로드 도보 여행에 도전하게 된다. 터키 이스탐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2,000 km를 오로지 걸어서 말이다.   


그의 도보 여행기는 단순히 걷는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마치 기자가 취재 수첩에 기록을 하듯 걷는 과정에서 접하게 하는 인간의 모습, 자연 풍광, 다양한 문화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였다. 그가 걸으면서 터득한 경험과 통찰은 비행 청소년을 바른 길로 인도하자는 목적으로 '쇠이유(Seuil 문턱)'라는 청소년 교화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다. 정부 교정 당국과 협력하여 청소년을 소년원에 가두는 대신 석 달 동안 자원봉사자인 낯선 어른과 함께 '걷기'를 통해 비행 청소년의 사회복귀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청소년은 해외에서 1,800km를 걸어야 한다. ‘비행’과 ‘정상’ 사이에 놓인 문턱을 넘어오도록 돕는다.  올리비에는 4년간의 실크로드 도보 여행 기록을 <Longue Marche>(2000년)로 출간했다. 우리나라에는 <나는 걷는다>(2003년)로 번역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책 인세는 단체 운영비로 사용된다. 


걷는 것이 비행청소년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이때 걷는 것은 건강 관리를 위해 매일 조금씩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는 걷는 것이 일탈 청소년에게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신문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 2020년 6월 27일 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코너에 실린 '中卒 아빠, 게임중독 中卒 형제를 직접 가르쳐 서울대로'라는 기사를 읽고서였다. 게임 중독에 빠져 고등학교를 중퇴한 2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8시간씩 소양강을 따라 25㎞를 걸었다. 걸으면서 아버지는 춘천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해줬는데, 아이들은 듣기는커녕 눈길 한번 안 주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속하였다. 걷기는 놀라운 결과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게임을 조금씩 줄였고 나중에 공부를 위한 체력까지 미리 기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이 자녀들의 말이 재밌다. “걷는 시간 빼고는 다 게임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덟 시간씩 걷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게임을 오래 못 했다. 그렇게 게임하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올리비에는 두 가지의 걷는 원칙을 지켰다. 어떤 일이 있어도 '걸어서' 갈 것, 달팽이처럼 서두르지 말고 '느리게' 갈 것. 그는 이 원칙을 지키면서 결국엔 실크로드 도보 여행을 4년 만에 완수했다. 1,099일 하루 평균 11km. 몸이 아파 지나가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을 때는 다음 날 다시 원위치에서 걸어서 갈 정도로 철저히 걷는 여행을 했다. 마르코폴로 이래 걸어서 실크로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간 사람은 역사상 두 번째 일지 모른다. 대장정의 대기록이다.


그가 발로 쓴 실크로드 여행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땅을 걷는 것은 나를 이 세계와 화해하게 해 주었다.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이 두 문장이야말로 비행청소년이 걷기를 통해 어떻게 치유되고 자신과 화해하고 미래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게나 삶은 평탄한 포장도로가 아니다. 쇠이유(문턱)를 넘기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래오래 걸어보면 어떨까 싶다. 걸으면서 '나란 존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자아 정체감과 존재의 의미를 체득하는 순간 삶의 의미는 또 달라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숨 쉬고 있는 삶을 향해 걸음을 옮겨라"고 말했던 틱 낫한 스님의 말이 깊이 와닿는 이유이다.  


백성호. (2022). <중앙일보>. <[종교의 삶을 묻다] 틱 낫한 스님의 유언>. 2월 10일.

올리비에, 베르나르. (2003). <나는 걷는다>. 임수현, 고정아 옮김. 효형출판.

틱 낫한. (   ). <너는 이미 기적이다>. 이현주 옮김. 불광출판사.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걷기의 놀라운 효과 7가지> https://www.korea.kr/news/healthView.do?newsId=14879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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