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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30. 2023

나의 영어공부

외국어 정복에 왕도는 없다.

저자가 영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부모님 다음으로 오래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저자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중학생 때 영어와 만난 뒤 현재까지도 영어와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영어를 좋아했다. 학교에서도 다른 과목보다는 유달리 영어에 애착이 많았고 영어를 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선배들은 영어 단어를 외우기 위해 영어사전을 페이지마다 뜯어 통째로 외운 다음 불에 태워 한약처럼 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한때는 영어사전을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할 욕심도 부려보았다. 뜻은 좋지만 혈기 왕성한 나이에 생각할 수 있는 무모한 짓이었다. 인간은 컴퓨터 저장장치가 아니다. 사전의 기능은 모르는 단어를 찾는 데 쓰이는 용도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카세트 녹음기에 테이프를 넣고 텍스트를 반복하여 들으며 발음을 따라 했다. 미국 코네티컷의 모 대학에 있 친구 김창석 교수는 영어에 일찍 눈을 떴고 문법과 독해식 영어가 아닌 구어체 영어 습득에 집중했다. 당시만해도 그런 전자제품을 갖추고 공부할 수 있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목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영어공부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창석이의 듣고 말하는 방식의 영어공부는 대학까지 꾸준히 이어졌고 유학을 마치고 미국 대학에 자리 잡았다. 영어에 관한 한 저자보다 차원이 다른 친구가 하는 말은 약이 되었다. "단어 하나하나는 생명력이 떨어진다. 그 단어가 문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장으로 단어와 구조에 익숙해져라." 영어 단어도 바둑돌과 같았다. 바둑판 위에서 하나의 돌이 생명력을 가지고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돌들과 관련지어 착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의 충고는 영어공부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고 문장 속에서 어휘, 문법, 관용구 등을 공부하게 되었다. 문장 속에 쓰이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했다. 문장 속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를 떠올리면 단어에 대한 기억도 오래 지속되었다. 성문종합영어는 최고의 영어교재였다. 저자 또래에 성문종합영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수학정석과 함께 베스트셀러였다. 성문종합영어는 수준 높은 문법서뿐 아니라 장문독해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명문들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고2 때 영어 선생님은 교과서보다는 성문종합영어를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선행학습을 한 친구들이 늘 앞서나갔다. 저자는 과외를 받을 환경이 아니었지만, 영어 과외만은 받아보고 싶었다. 


고교 교사를 퇴직하고 전문 과외교사로 나선 선생님을 만났는데 새벽 시간에 댁으로 방문하여 공부하는 방식이었다. 선생님은 파생어 중심으로 어휘력을 향상했는데 처음 접해보는 단어들이 많았다. 예컨대, 사슴(deer)의 형용사는? 사슴의(cervine)이다. 아들(son)의 형용사는 자식의(filial)이다. 그래서 효도는 'filial piety'가 된다. 선생님은 어휘제조기처럼 끊임없이 파생어와 연상어를 가르쳤다. 입시과목에서 영어를 잘 준비하기 위해 과외까지 하고 있는데 단어의 파생어를 집중적으로 공부시켰다. 하나의 단어에서 나타날 수 있는 파생어와 연상어를 모두 다뤘다. image, imagine, imagination, imaginative, imaginary, imaginable. 하나의 단어가 세포분열을 하듯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상기법으로 단어를 이해하는 연습을 하였다. 때로는 단어 공부하느라 정말 필요로 하는 영어공부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 효과는 한참 후에 나타났다. 대학에서의 고급영어를 수강하거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나 <타임>을 구독하는 데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던 단어들이 빛을 발휘했다. 영어 실력은 곧 워드 파워라고 느꼈다. 단어를 문장의 맥락에 따라 파악하는 능력이 곧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주변에서 저자는 희한한 영어 단어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데 그때 과외에서 배웠던 단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을 하고 영어로 상원과 하원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보았다. 대통령의 영어 연설은 적진 한복판에서 칼을 휘두르는 조자룡을 연상시켰다. 영어를 좋아하는 저자도 대통령의 연설을 유심히 들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많은 연습을 한 태가 나고 영어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에도 정성을 쏟았다. 한국말을 놔두고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아쉬움도 피력하는 사람이 있지만,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할 수만 있다면 외국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표현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 효과적인 외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외국 정상이 우리말로 연설하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정파를 떠나 영어 애호가로서 대통령의 도전 정신과 담대한 용기를 높이 사고 싶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외국어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가를 직접 보여준 사례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했는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이신 이용수(1928~)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다. 90에 가까운 할머니가 미국 의사당에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위안부에 대해 증언하면서 미국 의회에서는 위안부를 강제적 인권유린으로 공식 비판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공감한 해외에서는 소녀상을 건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현지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메가톤급 효력을 입증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 위안부 할머니가 "I am sorry."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고 말하면서 가해자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저자는 어휘와 독해는 누구와 겨뤄도 지지 않을 정도로 어휘력과 독해력에는 자신 있다. 문제는 발음이다. 혀가 두껍고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발음이 혀로 감아지지 않으니 특히 연음 발음이 매끄럽지 못하다. 학창 시절에는 발음 문제로 한동안 영어에 위축된 적이 있지만 졸업 후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영어를 제2외국어(ESL)로 사용하는 사람이 완벽한 조건을 갖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직업인 말고 외국인이 외국인처럼 말하는 것도 봐줄만할 것이다. 외국인과 의사소통에 목적이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하면 만사형통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외국인과 이야기하면 영어 울렁증은 없다. '내 발음이 어색할 수 있으니 이해해 달라'라고 말하면 외국인들은 특유의 제스처로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치켜세운다. 저자가 겪은 서양인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하고서도 외국인만 보면 울렁증으로 주눅이 들고 말문이 막혀 고생한 것을 보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 클린턴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 벌어졌던 해프닝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져 내려온다. 정상 간의 의전은 초단위로 정확하게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YS가 클린턴 대통령을 만날 때 가볍게 "How are you?"로 인사를 하면, 클린턴이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고, 그러면 YS도 "Me too." 하는 인사의전이었다. YS도 영어 울렁증이 있었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만나는 클린턴이 반가웠는지, "How are you?" 대신에 "Who are you?"로 인사를 건넸다. 클린턴이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노련한 클린턴이 YS의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고 정중하게 "힐러리 남편입니다"(I'm husband of Hillary.)이라고 대답하자 YS가 '미투'라고 말했다고 한다. 졸지에 힐러리는 남편이 두 명이 된 셈이다. 나중에 비서가 “왜 그런 인사를 했느냐”라고 묻자 YS는 “경상도에서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이게 누꼬(Who are you)’라고 한데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YS다운 골계와 재치다. 한국인의 영어 울렁증과 관련하여 3S가 있다. 외국인이 영어를 하면 한마디도 않고 침묵을 지키다(slient) 어색하게 웃다(smile)가 존다고(sleep) 한다. 참 재미있는 비유지만 우리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외국어 교육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외국어 교실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죽은 교육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도 한국인들이 외국어 교육을 10년 이상을 받고서도 말한마디 하지 못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이 정도 외국어 교육을 받으면 2개 외국어 이상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다. 


발음에 자신이 없었던 저자는 말하는 영어보다는 문어체 영어로 방향을 돌렸다. 원서 한 권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 원서에 실린 어휘, 문장, 문화, 뉘앙스 등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웬만한 인내심으론 완역해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있는 단어도 문장과 맥락에 적합한 우리말을 찾아내야 한다. 한 권의 원서를 번역하는 시간에 우리말로 글을 쓰면 몇 권은 쓸 것이라는 이야기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출판사에서도 번역본은 출판 승인도 잘 내주지 않는다. 꼭 우리말로 옮기고 싶은 원서가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번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시장의 수요도 고려해야 하고 로열티도 별도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영어에 무한 감사하고 있다. 저자는 영어 때문에 직업도 갖게 되었고 영어권과 관련된 주제의 논문도 쓰고 번역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이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기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대학에서 영문비서를 했고, 대학 교수가 되어서는 주로 미국학에 대해 논문을 쓰고 영어원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영어는 지금까지 저자의 교육적, 경제적,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소중한 정보원이었고 매우 유용한 자산이었다. 영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보니 요즘엔 영어 단어를 쓰고도 맞게 썼는지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영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영어를 의인화하면 '네가 필요로 할 때는 그렇게 나를 사용하고 괴롭히더니 이제 와서 헌신짝 버리듯 한다'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외국어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의 법칙이 적용된다. 


오랫동안 영어공부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영어공부엔 왕도(王道)가 없다. 묵묵히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수도승의 모습을 닮았다고나 할 까. 다행하게도 저자는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영어동아리에서 동화책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동화책은 영어 감각을 유지하고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훌륭한 교재다. 외국어를 언제 어디에서 사용하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우리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외국어 공부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학습이다. 저자가 친구 창석이처럼 오래전에 영어를 듣고 말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외교관으로 세계를 누볐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예나 지금이나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잘하고 있는 것 중에 첫 번째로 꼽고 싶다. 고맙고 소중한 나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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