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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y 06. 2023

다문화사회의 성공요건 3

타자에 대한 편견 혹은 고정관념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광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다문화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결혼이민자, 이주노동자, 북한이탈주민, 외국 유학생, 재외동포 등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소수집단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적 배경색을 다채롭게 꾸며주고 있다. 오천 년 장구한 역사적 뿌리를 가진 한민족은 그동안 '단일민족'이라는 혈통이데올로기를 통해 숱한 국난(國難)을 극복했고,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시기에는 민족의 독립 투쟁을 위한 구심점으로서 단결과 응집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동과 교류가 일상화되고 개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글로벌 세계에서는 단일 또는 순수 혈통이라는 주장은 자칫 폐쇄성과 배타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지구상의 약 80억 인구 중에 순수혈통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한국인의 몸에 흐르는 피의 성분을 현대의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분석하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동아시아인, 아메리칸 인디언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하지 않는가.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인구수 대비로 보면 국제기준(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의 비율이 5%)에 맞는 다문화사회로 이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급격한 다문화사회로의 이행 현상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제,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고용문제 등 국내외적인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자연스러운 사회변화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된 다문화사회를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맞대어야할 때이다. 성공적인 다문화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요건들은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요소들이 산재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개인이나 사회가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실과 바늘처럼 병렬적으로 사용되기 일쑤지만, 두 개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고정관념(stereotype)이란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전형적인 특성에 대한 기대나 신념을 가리킨다. 예컨대, 흑인은 '폭력적'이라거나 '게으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주로 인지적인 측면의 기대나 신념에 관한 것이다. 편견(prejudice)은 특정 대상에 대한 편향된 정보 수집이나 처리, 회상 등 인지적 측면뿐만 아니라 '좋다' 또는 '싫다' 등의 가치 판단이 포함된 주로 부정적인 정서적 측면을 동반한다. 고정관념은 성고정관념, 인종고정관념, 직업고정관념 등 대부분의 경우 뚜렷한 근거가 없고 감정적인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반면, 편견은 특정 집단에 대해 편향된 사고 또는 부정적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견의 유형은 명시적인 편견(공공연한 편견), 잠재적인 편견, 자동적인 편견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명시적인 편견은 특정 집단이나 대상에 대해  그들의 피부색, 언어, 종교, 문화 등을 폄하하거나 차별하는 말이나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잠재적(암묵적)인 편견은 겉으로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숨기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예컨대 직장에서 승진을 위한 인사고과, 은행에서 대출심사 등에서 소수집단을 차별하는 것이다. 자동적인 편견은 뇌와 지각의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편견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경찰들은 흑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동적인 편견으로 흑인이 갖고 있는 물건을 총으로 오지각하여 총을 쏘는 경우가 허다한 경우를 보게 된다. 


저자는 인류역사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이야말로 개인 혹은 국가를 대립과 분열로 내몰고 급기야는 전쟁 발발의 원인까지 제공하는 파괴력이 엄청난 핵폭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홀로코스트의 악명을 떨친 것도 인종적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주목한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 초중등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소수집단에 대한 '우리 집단의식'에 대한 우선순위를 조사했다. '우리 집단의식(group consciousness)'이란 다문화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우리는 동일집단의 성원’이라는 의식이다. (한국인의 '우리 의식'은 유달리 강하다. 나의 가족은 '우리 가족'이고 나의 남편까지 우리 남편이라고 말할 정도다. 역사적으로  우리 의식은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국과 주변 강대민족의 침략과 압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결을 강력한 힘이 되었지만, 우리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배타적이 된다.) 순위 결과에 놀라지 마시라. 전체 순위는 국제결혼가정자녀, 결혼이주자, 탈북자, 조선족, 중국인, 백인, 동남아시아인, 일본인, 몽골인, 흑인이었다. 우리 집단의식은 한국인과 피로 맺어진 소수집단(국제결혼가정자녀, 결혼이주자, 탈북자, 조선족)을 순서의 앞에 두었다. 일본인과 몽골인이 후순위가 된 것은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을 침략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른 국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은 왜 흑인이 마지막 순위를 차지하고 있느냐이다.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학생, 고등학생, 학부모, 교사는 모두 흑인을 우리 집단의식에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초중등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은 흑인에 대해 점수를 박하게 주는 것일까?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흑인으로 인해 국난의 위기를 당했거나 국익의 손해를 당했던 기억은 없다.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흑인은 검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일하게 초등학생들은 흑인, 일본인, 몽골인 순서로 꼽았다. 한국인들은 피부가 하얀(?) 백인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피부색에 따라 특정 인종에 대해 부정적으로 낙인을 찍은 결과일 것이다. 낙인효과(labeling effect)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없다. 일종의 심리적 저주에 가깝다. 부정적으로 낙인찍히면 실제로 그 대상이 점점 더 나쁜 행태를 보이고, 또한 대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지속되는 현상이다. 린아이를 보고 주위에서 '바보'라고 낙인찍다 보면 이 아이는 갈수록 의기소침해지면서 자신이 진짜 바보인 줄 의심하게 되어 결국은 진짜 바보가 될 수도 있다. 흑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의 책임은 백인들의 탓이 크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강제로 데려와 그들을 짐승만도 못한 노예로 부렸다. 다분히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역사적 소산이라고 해도 억지 주장은 아닐 것이다.


특정대상이나 특정집단에 대해 한 줌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이면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정관념 혹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문제는 영향력이 큰 리더가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일반화하여 마치 사실인양 호도하면서 대중을 선동하여 특정집단이나 특정대상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대표적인 다문화국가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이 특정인종에 대해 혐오를 부추기거나 차별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한 결과 미국 사회는 과거보다 더 인종차별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접종하면 면역력이 생기지만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특정대상이나 집단을 낙인찍는 것은 백신조차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편견이나 고정관념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다른 타자와 접촉을 통해 서로가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다문화구성원과 직접 접촉할 기회를 쉽게 갖지 못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방법은 다문화교육에 참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성인보다 다문화수용성지수가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청소년이 성인보다 다문화교육에 참여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도권 교육에서 다문화교육을 공식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지역사회에서 평생교육기관 등을 통해 다문화교육을 활성화하게 된다면 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다문화사회의 도래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염철현. (2023). 인문의 마음으로 세상을 읽다. 서울: 박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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