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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ul 03. 2023

정원(庭園)

결핍이 있는 곳에 생명력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구경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소식이다. 정원(garden)은 히브리어의 gan과 oden 또는 eden의 합성어로 gan은 울타리 또는 둘러싸는 공간이나 둘러싸는 행위를 의미하며, oden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울타리로 둘러싼 공간, 즉 정원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순천시는 순천만정원을 찾는 관광객이 최대 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순천시 인구를 많이 잡아 28만 명 정도라고 하면 거주 인구의 수십 배가 넘는 국내외 관광객이 정원에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순천을 찾는다고 봐야 한다.


인류에게 초창기 정원은 먹거리를 위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생존에 필요한 과일, 채소, 의약품에 필요한 허브류 등을 재배했다. 이어 물을 끌어오는 물레방아 등의 관개(灌漑) 설비를 만들고 동물의 칩입으로부터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차단벽과 울타리를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정원에서 얻는 일용한 양식에 만족하지 않고 정원에 심미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했다(홉하우스, 에드워즈, 2021). 인간이 정원에 제각각의 심미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정원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정원의 규모가 작든 크든 도시에 있든 농촌에 있든 마당이든 아파트의 베란다든 인간은 정원을 통해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현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마음이 심란하고 머리가 맑지 않을 때는 담양 소쇄원(瀟灑園)에 가보자. 그곳에 가면 옛사람들이 자연을 배경 삼아 어떻게 자신만의 이상적인 심미적 요소를 가미하여 정원을 조성했는지를  수 있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정원으로 스승 조광조(趙光祖, 1482~1520)가 기묘사화로 유배를 당하여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號)인 소쇄옹(蘇灑翁)에서 비롯되었지만, 실제 ‘소쇄’라는 이름은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 소쇄원은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세속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정원이다.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인다. 자연미와 인공적인 조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소쇄원에 예닐곱은 가보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멋과 맛을 느낀다. 지난여름에는 자미탄(紫薇灘), 즉 배롱나무 개울물이 폭포수가 되고 그 위에 놓은 다리를 건널 때 마치 피안(彼岸)의 세계로 건너가는 듯했다.


저자는 정원이 '결핍된 공간에 생명력을 선사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궁궐, 사찰 등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집이나 고층빌딩에 조성된 정원은 뭔가 결핍된 공간을 생명력으로 활기차게 만든다. 그렇게 조성된 정원에서는 시간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화초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원의 시계는 생명체들의 발아, 개화, 낙화 시간에 맞춰져 있다. 정원을 시간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오경아, 2022).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조종사를 보면서 하는 말이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겨놓았기 때문이다(What makes the desert beautiful that somewhere it hides a well.)" 사막을 정원으로 우물을 생명으로 비유하자면, 정원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서 생명들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학 전공자인 저자는 세상의 이치를 교육의 이치로 비유하는 습관이 있다. 저자는 학교를 '학습정원'이라고 불렀다. 정원이 결핍된 곳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듯 학교는 배움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학습정원에 다름 아니다. 학습정원의 교사와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다. 정원사에겐 나무와 화초를 관리하고 돌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의 손놀림에 따라 정원의 모습은 달라진다. 정원의 정원사가 하는 일과 학습정원의 교사가 하는 일은 일맥상통하다.


시인 요시노 히로시(1926~2014)는 <생명은>에서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듯하다./ 꽃도/ 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져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곤충이나 바람이 찾아와/ 암술과 수술을 중매한다./ 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다른 존재로부터 채워받는다."라고 읊고 있다. "생명의 본질이란 결핍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결핍된 부분은 다른 존재로부터 채워받는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천성적으로 결핍의 존재라는 인정하는 순간, 개인의 존엄성이 부각되고 겸허함과 배려심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인간 공동체는 곧 결핍공동체에 다름아닌 것이다. 학교공동체에서 교사는 아이들의 채워 반듯한 인격체로 키워내고, 정원사는 정원의 결핍을 채워 생명력이 넘치게 만든다.  


정원사는 식물의 타고난 품성과 본성을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생김이 다르고 키도 다르고 피는 꽃과 잎도 제작각인데 같은 기준으로 똑같이 자라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식물은 햇볕을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그늘진 응달을 좋아하고 어떤 식물은 물기 없는 흙을 좋아하지만 어떤 식물은 거의 물속에 담그고 있어야 한다. 제각각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야 행복하다(오경아, 2022: 134 재인용).


정원사가 식물을 대하는 것과 학습정원의 정원사가 아이를 대하는 것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아이의 타고난 품성과 본성을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다른 데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하며 똑같이 자라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어떤 아이는 학교의 교과목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운동을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는 언제 가장 행복할까? 아이가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정원의 가지치기도 교사와 아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선사한다. 가지치기는 식물의 생가지를 잘라내는 일이다. 식물에겐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식물에게도 마취제를 놓고 생가지를 쳐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왼손 검지 손가락을 다쳤을 때 여섯 바늘을 꿔 맸는데 국소 마취를 한 뒤라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식물의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다음 해에 신선하고 튼튼한 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식물이 더 튼튼한 가지를 뻗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생가지를 잘라낸다. 식물의 가지치기는 자라나는 아이의 성품을 바로 잡기 위해 적당한 시기에 조언을 하거나 훈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식물을 대하는 것과 사람을 대하는 결이 사뭇 다르다. 식물에 대해서는 모질게 생가지를 쳐내지만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자라나는 아이에 대한 적당한 개입과 훈계가 그 아이를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대신 사람은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스스로 뒤돌아보고 습관이나 행동을 스스로의 힘으로 또는 누군가의 힘을 빌려 가지치기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때가 있다. 정원에 심어진 나무와 화초의 생가지를 쳐내며 사람에겐 연약하면서 식물에겐 단호한 인간의 이중성을 보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이다.


정원이 결핍된 곳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사람에게 큰 위로와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정원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원의 생태계에 대해 공부를 하고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정원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정원을 돌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정원에서 피워내는 꽃들에 환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꽃이 핀 이후의 정원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사후관리에 더 신경을 쓸 일이다.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생각한다.


류시화. (2012).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서울: 오래된 미래.

오경아. (2022). 소박한 정원. 궁리.

페넬로페 홉하우스, 앰브라 에드워즈. (2021). 가드닝: 정원의 역사. 박원순 옮김. 시공사.

정원(庭園).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쇄원.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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