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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ul 14. 2023

비굴했던 권세가 1

고려 이자겸과 영광 굴비

영광은 예부터 돈이 많았다. 법성포 앞 칠산바다에서 잡힌 조기 때문이다. 전라도지방의 뱃노래에 “돈 실로 가자. 돈 실로 가자. 칠산 바다로 돈 실로 가자”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였으니 영광, 그것도 법성포에는 돈이 넘치는 지역이었던가 보다. 영광은 조기와 같은 물산뿐 아니라 정신문화도 넘쳤다. 영광(靈光)은 '신령스러운 빛'이라는 이름값을 하는지 우리나라 4대 종교 유적지로 알려졌다. 백제 때 불교 최초 도래지이며 원불교 발상지인 영산성지와 천주교, 기독교 순교지 등 종교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법성포(法聖浦)는 불법(佛法)을 전파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聖人)가 도착한 포구라는 의미다. 영광에 원자력발전소(한빛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것도 '빛'을 품은 지역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한빛원자력발전소는 유일하게 황해안 소재이자 전라도 소재이다.


조선 <중종실록>에는 “영광은 불갑산과 모악산이 둘러싼 넓은 들판을 가진 풍요로운 고장이다. 서해의 칠산바다로 열려 있어서 바닷가의 물고기와 소금이 많이 나는 고을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은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 즉 영광에는 가구 수와 인구가 많은 풍요로운 고장이라고 불렀다. 특히 쌀, 소금, 목화, 눈이 많아 사백(四白)의 고장으로도 알려졌다.


굴비 이야기를 하려면 조기(助氣)에 대해 알아야 한다. 조기는 민어과로 몸길이가 30cm 정도이고 꼬리자루는 가늘고 길며 몸빛은 회색을 띤 황금색이다. 입술은 불그스름하다. 봄에 알을 낳으며, 산란기에는 몸 빛깔이 선명해지고 무리를 지어 수면 가까이 올라와 큰 울음소리를 낸다. 성수기에는 조기 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말을 할 정도다. 조기는 참조기, 보구치(백조기), 수조기, 부세, 흑조기 등으로 나뉜다. 조기는 머리에 돌이 있어 우리말로 석수어(石首魚)라고 하는데 한자어로는 조기 종(鯼) 자를 써 종어(鯼魚)라고 쓴다. 중국어의 종어라는 음이 급하게 발음되면서 ‘조기’로 변하였다고 한다. 굴비는 참조기를 소금으로 절여서 법성포의 바닷바람에 말린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기가 굴비가 된 일화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호기심을 끄는 것은 고려 예종, 인종 때의 외척이자 세도가였던 이자겸과 굴비와의 관계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 시기 나라를 자기 손 안에서 쥐락펴락한 할 정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국왕 이상의 부귀와 권세를 누렸다.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쳤던지 외손자 인종에게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내는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 겸 장인이었다. 이런 경우는 세계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자기 생일을 인수절(仁壽節)로 정하고 국가적인 경축행사로 치렀다. 고려에 이자겸이 있다면 조선에는 한명회가 있다. 한명회는 조선 초기 세조, 예종, 세종 시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한명회도 딸들을 예종과 성종에게 시집보내 국왕의 장인으로서 권세를 누렸다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누리던 이자겸은 십팔자(十八子), 즉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임금이 된다는 참위설(讖緯說)을 믿어 왕위 찬탈까지 시도하다 실패하는 등 전횡을 휘두르다 결국 외손자 겸 사위인 인종에 의해 영광으로 유배형에 처해진다. 


이자겸은 영광 유배지에서 조기 맛에 반했나 보다. 그는 인종에게 조기를 진상하면서 손자에게 조기를 진상하지만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굴비(屈非)’라고 적어 보냈다. 아무리 귀양살이하는 처지이지만 외손자이면서 사위에게 조기꾸러미를 보내면서 '너에게 잘 보이려고 선물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리나라 유배역사를 볼 때 유배지에서 지역특산물을 국왕에게 진상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이자겸의 위상을 실감한다. 


조기가 굴비가 된 다른 이야기도 전해온다. 조기를 염장하고 짚으로 묶어 말리면 조기의 몸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지는데 이 모습을 보고 구부러진 조기라는 의미로 ‘구비(仇非)’라고 했던 것이 굴비로 변했다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구비의 표준어는 굽이굽이다. 굴비가 ‘굴비(屈非)’에서 유래했든 구부러진 모양의 '구비(仇非)'에서 시작되었든 조기는 '기운을 내게 도와주는 생선'임에 틀림없다. 밥도둑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나 싶다. 전주에 사는 누이는 조기를 먹어야 힘이 나고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한다. 조기의 본래 뜻대로 누이와는 음식궁합이 잘 맞는다.


시인 정호승은 <굴비에게>에서 부조리한 현대 사회를 해학적으로 은유하는 데 굴비를 동원하고 있다. 굴비와 비굴의 대조법을 사용하여 비굴한 인생을 살지 말자고 한다.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영광 칠산바다의 어민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고 한다. 회유 어종인 참조기는 항상 정확한 시기에 돌아왔다. 조기 떼는 제주도 남서쪽에서 겨울을 나고 2월이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3월경 칠산바다에 이르러 산란을 시작, 양력 4월 20일 곡우(穀雨)가 되면 어김없이 칠산 앞바다에 나타났다(전통문화포털). 조기는 약속을 잘 지켜 어부들이 존경하는 고기라고 한다. 굴비에는 유배지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자 했던 이자겸의 비굴한 탐욕이 스며들어 있지만, 굴비를 먹을 때 조기처럼 약속을 지키며 비굴하게 살지 않기를 다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정성희. (2000). 인물로 읽는 고려사. 서울: 청아출판사.

영광신문. (2021). <영광 사람도 모를 영광 이야기, 여기 다 있다>.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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