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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03. 2023

이목(耳目)

나를 깨우는 양심

이목(耳目)의 사전적 의미는 주의나 관심을 뜻한다. '이목을 끌다'라고 하면 눈에 띄거나 주의를 끌어 집중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목과 체면은 그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우리의 문화 특성 중 하나로 '체면문화'를 꼽는데, 이목은 체면의 하위요소라고 할 수 있다. 체면이 나무라면 이목은 나무를 이루는 큰 가지라고나 할까.


저자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성장환경 탓인지 몰라도 남의 이목에 민감하다. 어릴 적 부모님은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이목 때문에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제사음식만 해도 그렇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맞춰 준비하면 될 제사음식을 이목을 생각해서 무리를 해서 준비한다. 어디 저자의 부모님뿐이겠는가. 나이가 지긋한 한국인이라면 이목의 딜레마에서 쉽게 벗어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근 이목을 실감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농촌에 살다 보면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안다. 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농촌에서 땅이 없으면 근거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요즘엔 농촌에 집만 있고 땅 없이도 전원생활을 하면서 도시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지만 말이다.


저자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밭의 두 고랑을 빌려 콩이며 대파며 고추 등을 심었다. 솔직히 어릴 적에 어깨너머로 본 농사짓는 방식만으로는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마음씨 좋은 이모뻘 땅주인의 강권으로 시험 삼아 밭 두 줄에 콩을 심었다. 콩을 심어놓고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 걱정도 했는데 "콩 심은 데 콩이 났다." 야생동물이 문지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악조건에서 콩이 새순을 터트리고 뿌리를 내렸다. 걱정과 호기심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서 콩밭에는 수북하게 잡초가 자랐다. 잡초를 며칠 방치했더니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거름 삼아 콩보다 키가 더 컸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적절하다.


저자의 콩밭 옆에는 주인이 심은 콩밭이 있는데 그 콩밭은 잡초가 제거된 채 깨끗했다. 하필 콩밭은 마을 사람들이 통행하면서 이용하는 길 바로 옆이라 잡초가 무성한 저자의 콩밭과 깨끗하게 정돈된 주인의 콩밭이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이목이 두려웠다. 동네 사람들이 콩밭을 덮어버린 잡초를 보고 '게으르거나 무심하다'라고 말할게 뻔했다. 그리고 콩밭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주인에게도 불똥이 튀어 본의 아니게 나쁜 평판을 듣게 될지 모른다.


이른 새벽 장갑이며 모자를 챙기고 장화를 신고 잡초를 뽑았다. 부지런한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수고가 많다고 격려하면서 여름철엔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도 보탠다. 저자가 과민하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동네분들이 말씀하신 행간의 의미를 풀어보자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잡초를 뽑아내버리니 시원하요'라는 말이 아닐까. 이목에 신경 쓰여 잡초를 제거했지만, 사실 잡초와 콩은 공생할 수 없다. 콩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그 녀석이 모두 가져가 버리니 풍성한 열매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콩밭의 잡초를 제거한 후에 밭을 지나면 유달리 우리 밭이 돋보이고 오랫동안 관찰하게 된다. 인과(因果) 관계.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튼실한 열매를 맺는 땅은 그 원인이 있다. 좋은 원인을 제공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쁜 원인을 제공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고약한 심보다. 연습 삼아 심은 콩으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세상 일이 인과응보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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