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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06. 2023

달린다는 것

나를 지키는 생명줄

한 여름이 지나고 선선해진 새벽에 인왕산 아래 도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 방향으로 달린다. 산바람과 초가을의 풀내음이 정신을 맑게 하고 자연의 기운이 몸에 전달되는 느낌이다. 달리기 연륜이 쌓이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터득하였다. 어느 지점에서 힘이 빠져 지칠 때는 도로에 표기된 노란색이나 하얀색 줄을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달한다. 그렇게 줄을 따라 달리면서 문득 우리네 인생도 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인간이 처음 만나는 '줄(선)'은 탯줄이다. 탯줄은 곧 생명줄이다. 인간의 생명은 어머니의 자궁에 연결된 탯줄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탯줄이 잘리는 순간 독립적인 개체로서 호흡하기 시작하고 자신만의 생명줄을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생명을 다하는 날은 그 (생)명줄이 끊어졌다고 한다.


인간의 생명선이 탯줄이라면 줄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창조의 밑거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베틀에 앉아 삼베옷을 짜는 어머니의 모습에 경외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베틀은 직조기계다. 어머니는 그 왜소한 몸으로 방안을 가득채운 거대한 구조물인 베틀을 자유자재로 다루셨다. 어머니는 두 발은 상하로 움직여 동력을 만들고 두 손으로는 좌우로 북을 번갈아 움직이며 씨줄과 날줄을 교차시키며 옷감을 짜냈다. 한 겨울 베틀이 차지한 공간은 생명이 꿈틀거리는 열기로 후끈하다. 북이 자궁이라면 거기에서 나오는 실은 탯줄이다. 북이 밤새 움직인 채 동이 트면 아이들 입힐 삼베옷이며 의식에 입을 모시옷의 옷감이 마련된다. 어머니는 능수능란한 직녀셨다.


전통적인 농촌에서 겨울철의 창조가 베틀에서 이루어진다면, 여름철엔 안방을 차지한 누에가 그 주인공이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사각사각' 소리,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질서정연하게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회색빛이 도는 누에가 뽕잎을 먹으면 몸색깔도 초록의 뽕잎 색깔로 바뀌게 된다. 트랜스포머다. 그 누에가 성장하여 몸에서 줄을 뽑아내 고치를 만든다. 약 60시간에 걸쳐 2.5g 정도의 고치를 만든다. 한 개의 고치에서 풀려나오는 실의 길이는 1,200∼1,500m가 된다. 고치를 짓고 나서 약 70시간이 지나면 고치 속에서 번데기가 되며, 그 뒤 12∼16일이 지나면 나방이 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직물이 견직물, 즉 비단, 명주다. 견직물은 우아한 광택과 부드러운 촉감이 있으며, 화려하기 때문에 고급 옷감, 스카프, 넥타이, 실내 장식품 등을 만들 때 사용한다. 누에가 실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저자는 언젠가 비단 한복을 입었을 때 한복에서 누에의 아삭아삭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인간은 줄에서 태어나 줄과 함께 살아간다. 현대인은 세로가로로 연결된 관계의 줄을 네트워크라고 한다. 거미줄의 그물처럼 얽혀있는 연결망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줄을 서거나 줄을 대다와 같은 말에서 줄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지만, 네트워크라는 말을 사용하면 뭔가 긍정적인 연상을 하게 된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새로운 어감으로 다가온다.     


줄은 점(點)에서 비롯된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면이 된다. 그림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림은 한 점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용을 그리면서 맨 마지막에 눈동자(睛)를 그려넣는다는 뜻이지만, 의역으로 풀이하면 무슨 일을 할 때 최후의 순간에 결정타, 용의 눈에 점을 찍으면서 작품을 멋지게 완성한다는 뜻이다. 달리기처럼 점이 선으로 이어지는 운동도 드물 것이다. 앞으로 내딛는 한발 한 발은 점이 되고, 이 점들이 모여 42.195km가 된다. 언젠가 만보계가 유행했다. 하루에 걷는 걸음수를 총량화하는 기계이다. 만보계를 허리춤에 차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시간이 모여 그의 명줄을 단단하게 만든다. 오늘도 발로 점을 찍는다. 이 점이 모여 긴 줄이 되고, 이 줄이 고래심줄 같은 나의 명줄인 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을 마라톤으로 비유한다. 각자 정한 거리와 코스가 있을 것이다. 제는 어떻게 완주하느냐이다. 그리고 어떻게 완주할 것이냐는 어떻게 살 것이냐로 수렴된다. 아침에 내딛는 한 걸음이 나의 삶을 약동시키는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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