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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18. 2023

아카시 vs 아카시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1972년  발표된 '과수원길'의 가사를 적어본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짙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 과수원에 가는 길 옆에 활짝 핀 아카시아꽃에서 이파리가 날리고 꽃향기가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며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으면 그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온다. 가사가 정감이 넘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적인 동요 가사에 잘못된 표기가 두 군데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아카시아꽃의 정확한 표기는 아카시꽃이다. 해태껌 '아카시아'도 아카시를 아카시아로 부르게 만든 공신이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무언가요 아~아~ 아카시아 껌.' 껌의 함유성분에는 아카시아꿀 0.2%가 함유되어 있다고 적혀있다.


한반도에는 진짜 아카시아나무는 자랄 수 없다. 어떻게 아카시나무는 아카시아나무로 잘못 알려진 것일까. 아카시나무의 학명은 pseudoacacia, 즉 가짜아카시아다. 아카시나무를 학명대로 옮기다 보니 아카시아나무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아카시와 아카시아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카시의 꽃은 하얀색이고 아카시아의 꽃은 노란색이다. 아카시나무와 아카시아나무는 같은 콩과에 속하지만 아카시아는 미모사아과이고 아까시나무는 콩아과이다. 진짜 아카시아의 잎은 미모사를 닮아 작은 잎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이다. 


저자 역시 아카시나무를 아카시아나무로 알았고 그렇게 불렀다. 솔직히 저자에게 아카시나무는 두 가지 점에서 배척과 타도의 대상이다. 아카시나무에 대해 적개심과 분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첫째,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아카시나무를 의도적으로 우리 땅에 심었다는 말을 듣고부터다(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정설은 1890년 인천에서 무역업을 하던 일본인 사가키가 중국 상해에서 묘목을 구입하여 인천공원에 심은 이후로 전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 정부가 한국전쟁 후에 땔감나무 벌목 등으로 황폐해진 민둥산을 녹화하기 위해 전국에 식수된 나무라고 한다. 둘째, 아카시나무가 선산에 모신 부모 묘소에 똬리 틀고 있으니 눈밖에 났을 수밖에 없다. 적응성과 번식력을 보면 두 손 두 발을 들고 만다. 뿌리를 죽이는 제초제(근사미)를 뿌려도 다시 새순이 나온다. 누구도 이 나무를 정원수로 집안에 심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편견을 먹고 차별을 이겨내며 그렇게 묵묵히 버틴다.  


오뉴월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길목, 아카시나무가 보란 듯이 치렁치렁 달린 우윳빛의 꽃과 함께 향기를 내뿜는다. 구박받고 자란 아이가 풀 죽어 고개를 땅바닥에 떨구듯 아카시나무의 꽃들도 같은 모양새이다. 보란 듯이 산천을 진동하는 강렬한 향기는 편견과 차별과 냉대를 이겨낸 환희의 표현이다. 


저자는 그동안 아카시나무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하고 있었다. 첫째, 저자는 아카시나무가 번식력과 적응력이 뛰어나 다른 나무들을 죽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아카시나무는 빛이 많은 곳에서 사는 특성 때문에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는 침범하지 못한다. 또 콩과 식물로 땅을 비옥하게 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아카시나무가 콩과 식물인 것도 놀랍다. 콩과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시켜 특별히 비료를 주지 않아도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토양을 비옥하는 하는 능력 때문에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아카시나무는 대체로 수령 20~30년이 지나면 서서히 주위의 토종 나무에게 자리를 내준다). 둘째, 우리나라 산에 아카시나무가 많은 것을 보면서 아카시나무가 다른 좋은 나무들을 잠식하는가 싶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목재로써도 유용한 가치가 있다. 최고의 재질(材質)로 치는 느티나무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아카시나무는 무습기에 강해 온천의 천정재라든지 건축재, 농기구재 등으로 사용한다. 내구성이 뛰어나 마차바퀴로 쓰일 정도다. 셋째, 저자가 아카시나무를 미워하고 배척한 사적인 악감정이다. 부모 묘소 침범죄다. 그러나 묘지에는 다른 나무가 없어 햇볕을 좋아하는 아카시나무에게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한다. 아카시나무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채 나무만을 탓한 꼴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의술에 서투른 사람이 치료해 준다고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는 뜻이다. 영어식 표현은 "A little knowledge is a dangerous thing." 저자가 알고 있던 아카시나무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카시나무를 보면 분노하고 배척하였다. 아카시나무를 보면 에누리없이 베어버렸고 낫질이나 톱질을 하는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얄팍한 앎을 경계하지 않고 감정을 앞세운 탓이다. 아카시나무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를 한 내 자신을 성찰하며 그의 용서를 바란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과수원길을 부르며 눈송이 닮은 이파리의 향기를 마음껏 즐겨볼 일이다.


무엇보다 아카시나무는 대표적인 밀원수(蜜源樹)가 아니겠는가. 꿀을 채집하는 사람들은 아까시나무가 꽃 피는 시기를 쫓아 제주도에서 휴전선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꿀 총생산량의 70%는 아카시나무에서 딸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로도 아카시나무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아카시나무에 대한 거짓의 베일을 걷어버리고 진실을 알고나서 보는 산의 모습은 예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박상진. (2022). 우리 나무의 세계. 파주: 김영사.

김우선. (2023). 이로운 넷.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아카시아 나무? 아까시 나무!. 7월 2일.

박용준. (2022). 쿠키뉴스. 아카시아? 아까시나무!.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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