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은 '문화재 지킴이의 날'이다. 임진왜란 당시 안의와 손홍록 등이 조선왕조실록을 전주사고에서 내장산으로 이안(移安)한 날이다. 문화재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문화재는 형태를 갖춘 유형의 문화재에 국한하지 않는다. 무형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여러 가지 예술활동과 인류학적인 유산, 민족, 법, 습관, 생활양식 등 민족적 또는 국민적인 체질의 본질을 표현하는 모든 것까지 포괄한다(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우리나라의 <국가유산기본법>에서는 문화재를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ㆍ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으로 구분한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문화재로 구분한다. 문화재는 우리 삶의 근원을 알게 하는 뿌리이자 창의성의 원천이며 인류 모두의 자산임이라는 점에서 후세에게 원형을 보존, 유지하여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곧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문화재 중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재는 얼마나 될까? 세계유산은 해인사 장경판전, 창덕궁, 산사(山寺), 갯벌 등 16건이다. 인류무형유산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강술래 등 22건이다.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등 18건이다. 세계기록유산에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인권과 보편적 인류애를 고취시킨 생생한 기록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는 비장미와 숭고미가 배어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선이 1592년 일본의 침략을 당했을 때, 안의와 손홍록 등은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내장산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옮기고 그곳에서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며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다. 안의와 손홍록과 같은 문화재 지킴이 덕에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고 후세들이 조선 왕조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중에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기고 지켜낸 감동에 대해서는 <인문의 시리즈 3>에서 다루었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비장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내던졌던 몇 사람의 모뉴먼츠 맨(monuments man)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뉴먼츠 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측에서 예술품을 지키는 전담부대 '모뉴먼츠 맨'을 결성하였는데, 저자도 우리나라 문화재 지킴이를 모뉴먼츠 맨으로 부르기로 한다. 전시에 목숨을 걸고 활약했던 모뉴먼츠 맨들의 참여 동기는 "집을 모두 불태워버리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인류가 남긴 업적과 역사가 파괴된다면 존재한 근거조차 없어지고 만다"라는 평범한 서사다. 인류 문화는 곧 인류의 존재 방식을 말한다. 결국 우리나라 문화재는 곧 선조들의 삶과 존재 방식을 대변하기에 소중하고 후세에 물러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선 떠오르는 대표적인 모뉴먼츠 맨은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다. 일제강점시대, 간송은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는 것이 곧 민족정신을 회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간송은 사재를 털어 중요 문화재를 구입하면서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막았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은 간송의 노력으로 발굴되고 지켜지고 세상에 알려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훈민정음 해례본은 33장 1책의 목판본으로 문자를 새로 만든 목적과 원리 그리고 글꼴을 결합하여 표기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밝힌 책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 사용 설명서이다. <세종실록> 병인년(1446년) 9월 29일 자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집현전 학자들에게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도록 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예조판서 정인지(鄭麟趾, 1396~1478)가 작성한 서문의 일부를 옮겨본다.
...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자세히 듣고 판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 모든 해석과 범례(凡例)를 지어 그 줄거리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한글 창제의 원리를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키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혁신적인 기계를 발명하고서도 매뉴얼이 없어 기계를 운영하지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 창제 덕분에 한민족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존속할 수 있었다고 본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인간은 언어라는 장소에 거주한다. 언어가 바뀌면 사고체계도 생활양식도 바뀌게 된다. 결국 인간은 언어적 동물이며, 때문에 인간은 언어로 모든 상호작용을 한다. 언어는 문화의 기반이자 척추와도 같다(샤, 2022). 우리 몸이 척추를 중심으로 팔다리와 몸통이 붙어있는 것처럼 한민족의 문화는 한글과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생성, 존속, 계승된다.
간송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하여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비밀을 유지했다. 일제가 한글 사용을 금하고 한글을 탄압하는 엄중한 시국에 한글의 시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당시 구입 가격은 1만 원이었는데 기와집 수십 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간송이 문화재를 수집한 것은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민족정신의 올바른 계승을 위해서였다.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기만 한다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문예부흥의 근거를 마련해 둘 수 있으니, 일시 국권을 상실하고 강압으로 문화전통이 단절된다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1938년 건립된 간송미술관은 전형필의 호를 땄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은 국보 10여 점을 비롯해 고려청자, 불상, 부도, 석탑 등 다수의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 간송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에게는 절대 개방하지 않았다. 간송이 문화재를 지키는 것은 그만의 독립투쟁의 방식이었다.
간송이 소유한 논은 800만 평(4만 마지기)이 넘었다. 200평에서 80kg 쌀 한 가마니가 나온다고 하면 한 해 쌀 수확이 4만 가마니(2만 석)였다. 당시 논 한 마지기가 50원이었다고 하니 4만 마지기면 200만 원이다. 기와집 2천 채 값에 해당한다. 간송은 하늘이 내린 막대한 재산을 우리 문화재를 구입하고 보관하는 데 사용했다. 간송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확신하고 빼앗겼거나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아 구입하는 데 재산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세계적으로 간송 같은 모뉴먼츠 맨도 드물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간송본 또는 안동본이라고 하는 데 이는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데, 간송본은 문화재 지킴이 전형필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오늘날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온전하게 보관된 데에는 비사(秘史)가 전해진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18일, 당시 북한 인민군 패잔병 900여 명은 퇴로가 막히자 가야산에 숨어들었고, 가야산 해인사를 은거지로 삼아 활동하고 있었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 소속 4기 편대장 김영환 장군(당시 대령, 1921∼1954)은 “해인사와 그 인근 공비 소굴을 폭격하여 지상군을 밀접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 명령을 거부했다. 전투기는 네이팜탄을 장착하고 있었고, 공격 표적은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이었다. 만약 작전 명령을 수행했다면 네이팜탄 한 발로도 사찰 전체는 물론 팔만대장경판은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전투기들은 편대장이 내린 수정 명령으로 해인사 경내를 폭격하는 대신 주변의 북한군에게 기관총으로 공격하였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이 명령불복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것이다.
해인사 폭격 명령을 불복하고 해인사 인근에 폭탄을 퍼붓은 후 복귀한 김 대령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미군 고문관이 주재한 군법회의에 불려 나간 김 대령은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공비보다는 사찰이 더 중요하다. 공비는 일정한 전선도 없이 물러났다 침입하기를 반복하는 유동물(流動物)에 불과한데 사찰을 공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반문하였다. 김 대령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독일군에 순순히 항복한 사실과 영국인들이 인도를 잃더라도 셰익스피어와는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예를 들면서 “태평양 전쟁 때 미군이 일본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것은 교토가 일본 문화의 상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도 파리와 인도하고도 바꿀 수 없는 세계적 보물인 팔만대장경을 가지고 있다. 수백 명의 공비를 소탕하기 위하여 소중한 문화재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김영환 장군 덕분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해인사와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이 지켜졌다. 매년 가야산 해인사 대적광전에서는 특별한 추모제가 열린다. 김영환 장군을 기리는 행사이다. 스님들과 공군 장병들이 나란히 법당에 앉아 있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김영환 장군으로 인해 맺어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공군 사이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2023년 10월, 해인사는 공군이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기 위해 해인사에 흉상을 조성, 봉안하기로 한 것에 동의했다. 사찰에 세속적인 인물의 흉상이 들어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해인사에서는 김영환 장군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켰을 뿐 아니라 국민의 존경을 받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덕수궁도 6.25 전쟁으로 파괴당할 뻔했다. 1950년 9월 2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 시가전에 돌입했다. 당시 미육군 포병 중위 제임스 해밀턴 딜은 덕수궁에 북한군 수백 명이 집결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덕수궁에 포격을 하면 수백 명의 적군을 한 순간에 괴멸시킬 수 있었지만 그는 끝내 포격을 명령하지 않았다. 그의 회고담을 인용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 국가의 유물인데 나의 ‘포격개시’란 말 한마디로 불과 몇 분 안에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를 그대로 처리하여 포격을 하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나는 동료인 앤더슨 대위와 상의했다. 그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그와 나는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비슷한 경우의 몬테카시노성의 파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해인사를 지킨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이다.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나라 사람이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덕수궁을 지킨 사람이 외국 군인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을 하게 된다. 자기 나라의 문화재가 소중하면 다른 나라의 문화재도 소중하다는 보편적인 인류애이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는 취지 역시 국경과 국적을 초월하여 인류가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리생연(火裏生蓮). '불길 속에서 연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폭력과 야만이 난무하던 시대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보호를 우선시했던 조선시대 안의와 손흥록, 일제강점기의 전형필, 6.25 전쟁 중의 김영환과 제임스 해밀턴 딜은 우리 문화재를 지킨 대표적인 모뉴먼츠 맨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들은 불길 속에서 연꽃을 피운 위대한 인간성의 소유자로 국적을 초월하여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들뿐이겠는가. 인류의 찬란한 문화는 무명의 모뉴먼츠 맨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기에 지켜져 왔고 앞으로도 지켜질 것이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문화재를 형성하는 것보다 문화재를 보존ㆍ관리하며 원형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샤, 비카스, (2022).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임경은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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