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버킷리스트에는 우리나라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강, 바다에 모두 가보는 것이다. 우선 호남인으로서 호남을 둘러싼 국립공원 산에 갈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부터 가본 다음 타 지역에 있는 국립공원 산에 갈 계획이다. 무등산, 내장산, 덕유산의 정상까지 갔다 왔지만 지리산과 월출산은 아직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에 가는 것은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다. 국립공원 산에 가는 것은 지리적으로도 접근이 쉽지 않고 시간도 최소 하루 혹은 이틀이 걸린다.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마을에서 의형제를 맺은 형들과 지리산 노고단에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형들은 일찍이 성삼재 휴게소를 건설하는 토목공사에 참여한 적이 있어 노고단에 가는 길과 주변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왜 지리산에 가는 데 노고단에 간다는 말을 붙여야 할까? 지리산(智里山)은 높고 험준하고 수많은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 즉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두류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종착지에 해당한다. 높은 산과 험한 고개가 많은 고산준령(高山峻嶺)이다. 이 산을 갈 때는 특정 봉우리를 말해야 한다. 천왕봉을 다녀오려면 최소 1박 2일의 품이 필요하다.
지리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군 · 함양군 · 하동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우리나라 산들 중에서도 3개 도와 1개 시, 4개 군에 걸쳐 있는 산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지리산의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 리(320여 km)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다. 총면적이 440.4㎢이며, 전라남도에 87.9㎢, 전라북도에 107.7㎢, 경상남도에 244.7㎢ 분포한다. 면적으로만 치면 경상남도에 가장 많이 치우쳐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중심으로 중봉(1,875m), 하봉(1,781m), 반야봉(般若峰, 1,732m), 싸리봉(1,640m), 칠선봉(七仙峰, 1,576m), 덕평봉(德坪峰, 1,522m), 명선봉(明善峰, 1,586m), 토끼봉(1,534m), 노고단(老姑壇, 1,507m) 등 1,500m 이상되는 높은 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1950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지만 내륙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저자는 노고단에 오르는 길목인 성삼재까지는 자동차로 몇 번 가보았다. 갈 때마다 노고단에 가봐야 하는데 하는 계획만 세웠다. 그런 노고단에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회가 새롭겠는가. 노고단의 지명 유래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노고단 입구에는 그 유래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老姑)를 모시는 곳(단-壇)이라 하여 노고단이라는 이름을 붙었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심신 수련장으로 이용하였고 1920년대에는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고 한다.
좀 더 유래를 좇아가보니 노고단의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했다. ‘할미’는 도교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할미당의 소재지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천왕봉 기슭에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현재의 노고단에 모셨다. 조선시대에는 노고단에서 서쪽 2㎞ 지점에 있는 종석대(鐘石臺, 1,361m)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높은 산에서 신령한 기운을 받고자 하는 민간풍속이 전해져 온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지리산은 최적격의 산일 것이다.
지역마다 영험한 기(氣)를 내리는 산이 있기 마련이다. 지리산처럼 고산준령은 아니다. 신령스러운 산의 기준은 산의 높낮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산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소통하고 의지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
저자가 살고 있는 나주의 금성산은 높이가 451m에 불과해도 고려 왕실과 관련이 깊은 신령스러운 산이다. 고려조정은 전국에 있는 10개의 신령스러운 산에서 매년 제사를 올렸는데, 충렬왕은 금성산에 정녕공(定寧公)이라는 작호를 내려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후 금성산은 전국 8대 명산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 되었다.
금성산과 나주에 대해서는 여백을 더 할애할 필요가 있다. 나주는 전주와 함께 전라도(全羅道)를 상징하는 지역이 아닌가. 나주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고 나주의 진산이 금성산(錦城山)이다. 금성산은 사방이 높고 가운데에 고을을 이룬 포곡식(包谷式)이다. 글자 그대로 '계곡을 품어 안은 형세'를 띠고 있다. 금성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을 배경으로 후백제의 견훤을 견제하였던 난공불락의 산성이었다. 특히 나주는 태조 왕건의 왕위를 이어받은 혜종의 외가로 고려왕실의 어향(御鄕)으로 불린다. 태조 왕건은 나주를 특별하게 여겨 개경 중앙정부와 별도 기구인 ‘나주도대행대(羅州道大行臺)'를 설치하였다. 고려 역대 왕들은 다른 지역보다 나주를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지금은 인구 10만 명의 도시에 불과하지만, 먼 옛날에는 오늘날의 특별시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건과 나주 오 씨와의 러브스토리도 흥미롭다. 911년,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싸우기 위해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가(浣紗泉)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에게 급히 물을 청했다. 처녀는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어 물을 주었다. 처녀의 총명함과 미모에 반한 왕건은 처녀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청혼했다. 이 처녀가 태조 왕건의 뒤를 이은 혜종의 어머니 되는 장화왕후이다.
왕건과 버드나무 처녀의 사랑으로 태어난 혜종과 관련해서는 엽기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왕건이 버드나무잎을 띄워 바친 처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지만 처녀의 가문이 미천한 탓에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돗자리에 사정하였다. 처녀는 즉시 이를 자신의 몸에 집어넣어 마침내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혜종(912~945)이다. 혜종은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주름살 임금’이라 불렀다. 혜종의 출생 비밀에 대해서는 태조 왕건과 그의 왕비가 된 장화황후만이 알 것이다.
산은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산이 위치한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노고단으로 돌아가자. 노고단은 지리산의 다른 봉우리를 가기 위한 맛보기 성격이 강했다. 노고단 등산은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뚫린 평지를 이용하여 돌아서 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몇 군데에 가파른 지름길을 만들어 올라가게 했다.
해발 1500 고지를 생애 처음 발을 디딘 소감은 한마디로 환희와 놀라움이었다. 고지대에서 바라본 초가을의 하늘은 눈이 부셨고 구름은 마치 면화솜을 가지런히 펴놓은 듯했다.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하고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고치기 위해 하필 왜 이 멀고 높은 이곳을 찾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노고단에는 둥글게 쌓아 놓은 돌탑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를 모신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노고단에서 바라본 천왕봉과 반야봉은 어서 오라는 손짓을 한다. 저자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최고봉우리에 올라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산 시냇가 정자의 기둥에 쓴 시[題德山溪亭柱]'로 남겼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501∼1572)을 생각해 본다.
보게나! 천 석(石)들이 종을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
어찌하면 저 지리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게 될까?
남명의 시는 지리산의 면적만큼이나 묵직한 울림으로 소용돌이친다. 남명이 지리산을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보여주는 시다. 남명에게 지리산은 자신이 일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의(義)와 경(敬)의 실천을 위한 거울이었다.
사실 저자가 지리산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남명 선생 때문이다. 남명은 지리산 숭배자이면서 지리산을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다. 그는 말년에 아예 천왕봉이 바라다보이는 지리산 기슭에 산천재(山天齋)라는 이름의 거처를 마련하고 후학들을 양성했다. 남명 선생을 존경하는 저자이기에 지리산을 열두 차례나 올랐던 남명을 생각하면 발분의식이 생긴다. 어쩌면 노고단은 저자 자신을 강렬하게 성찰하고 도전 의식을 새롭게 하는 또 하나의 단(壇)이다.
등산로는 인문(人文)의 풍부한 소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문이 추구하는 본질이 인간이 남긴 흔적이요 인간이 그린 무늬라고 한다면,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등산로야 말로 글자그대로 인문의 발길이다. 저자는 노고단에 오르고 내려오면서 마치 돌을 쌓아 단을 만들었듯 쉼없이 인문의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인문의 단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인문의 단을 통해 삶의 의미는 더 충만해질 것이며 인문의 향은 더 멀리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금성산 고성(錦城山 古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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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2006). 중앙일보. <지리산 천왕봉과 남명 조식>. 10월 16일.
송기동, 서충열. (2018). 광주일보. <[전라도 1000年 인물열전] ② 고려 2대 왕 혜종>.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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