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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Dec 07. 2023

민주주의의 꽃, 패자의 승복 연설

미국 대선 패자의 승복 연설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리를 실천에 옮기는 일은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다. 기본 상식만으로도 결론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안조차도 굳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민주주의란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그 존재 기반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절차의 번거로움과 그에 수반되는 비용이 들더라도 이것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가히 민주주의는 절차의 예술이다.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에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경우에는 차기 행정부의 수반이면서 국가 원수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선거 과정은 물론 선거 결과를 놓고도 유권자들의 태도와 반응은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국민축제라고 말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냉혹한 승자독식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란 묘해서 1등과 2등 사이에 득표율이 박빙일 경우가 많다. 아예 1등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2등을 누르고 당선되면 패자로부터 이의제기를 받을 일도 없지만 그런 대선은 흔치 않다. 


민주주의의 꽃은 패자의 승복 연설에서 핀다고 말할 수 있다. 승복 연설은 영어로 'concession speech'라고 한다. concession은 인정 또는 승인이라는 의미다. 승복 연설은 '패배 연설(defeat speech)'이 아니다. 승복 연설에서는 패자가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을 위로하면서 차기 행정부의 출범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는다면 최상의 그림이 될 것이다. 그래서 패자의 승복 연설을 보면 후보 개인의 숨어있던 인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트럼프의 불복 연설처럼 분노를 폭발시키는 뇌관이 되기도 한다. 

 

미국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패자의 승복과 승자의 화해와 포용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디 모든 후보들이 깨끗하게 승복하겠는가 싶다. 패배의 쓰라린 고통과 억울함을 승복의 미덕으로 승화시키기 어려운 후보도 많다. 제6대 대통령이었던 존 퀸시 애덤스(재임: 1825~1829)는 1828년 대선에서 앤드루 잭슨 후보(재임: 1829~1837)에게 패배한 뒤 곧바로 보따리를 싸들고 한밤중에 백악관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백악관에서 승자를 맞이한다는 것에 굴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보자의 좁은 그릇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48년 해리 트루먼(재임: 1945–1953)에게 패배한 토머스 듀이(전 뉴욕주지사)는 “손에 흰 백합을 쥔 채 관 속에 누워 있는 기분”이라며 패배를 죽음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선거에서는 모든 언론이 듀이의 대승을 예상할 정도로 듀이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할 정도였다고 한다. 트루먼이 소속한 민주당 자체 조사에서도 트루먼의 참패를 예상했다. 여론조사기관에서는 트루먼과 듀이의 표차가 더블스코어로 벌어지자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듀이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 유권자의 표심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결과에 깨끗이 인정하는 패자의 승복 연설은 아름다운 것이다. 패자의 승복 연설은 국민의 심금을 파고들고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한다. 선거 후에 패자의 승복 연설은 승자를 지지했던 국민이건 패자를 지지했던 국민이건 모든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파급력을 가진다. 심금을 울린 패자의 연설은 선거가 국민을 통합하는 촉진제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관중이 감동은 없고 승패만 있는 경기를 외면하듯이,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이쪽 편과 저쪽 편으로 갈린 상태로 남는다면 그것은 후보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것이다.   


현대에 들어 미국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던 때가 두 번 있었다고 생각한다. 둘 중 하나는 비극으로 끝났고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다. 하나는 2000년 대선 결과를 놓고 연방대법원까지 갔던 조지 W. 부시(공화당)와 앨 고어(민주당)와의 한판 승부였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의 고어 후보는 득표율에서는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부시 후보에게 패배했다. 고어 후보는 “우리와 뜻을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차기 대통령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할 것을 촉구합니다. 도전할 때는 맹렬히 싸우지만 결과가 나오면 단결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입니다”라고 승복 연설을 했다. 고어 후보는 법원의 판결에 따랐다고 하지만, 그의 승복연설은 그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는 맹렬히 싸웠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국민의 단결과 화합을 주문했다. 해피 엔딩이다.


두 번째 시험대는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재임: 2017~2021)와 조 바이든 후보와의 경쟁이었다. 선거 결과는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판정 났지만, 트럼프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불복 연설로 그의 열렬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도록 선동했다. 선량한 시민이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폭도가 되었다. 트럼프는 "우리는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이겼습니다. 우리가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더는 나라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도둑질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대선 결과를 선거조작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지지자들에게 저항하도록 부추기고 선동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조지아 주지사에게 선거결과를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로마 광장에서 시민들을 선동하는 데마고그(demagogue)를 보는 듯하다. 이날은 미국 민주주의의 사망을 알리는 날이었다. 더 이상 미국이란 나라는 제3세계에 민주주의를 보급, 전파하는 선진국이 아니었다. 트럼프 자신이 트럼피즘의 숙주가 되어 그 세력을 점점 넓혀 가게 되면서 이제는 세계가 미국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트럼프의 불복 연설과는 다르게, 2013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와 맞붙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패배 후에 깨끗이 승복했다. "우리는 결과에 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트럼프에게 미국을 이끌 기회를 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 대선 후보로서 힐러리는 여성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남겼다. “모든 여성, 특히 자신들의 믿음을 제게 보여줬던 젊은 여성들에게 전합니다. 당신들의 지지만큼이나 나를 자랑스럽게 한 건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깰 것입니다. 희망컨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멋진가. 힐러리는 깨끗하게 승복하면서 자신의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했다. 이게 정치의 매력이고 정치인의 소명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했을 때에 패배한 후보로부터 승복 연설을 받았으면서도 자신이 패배했을 때는 불복 연설을 했다. 내로남불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존 매케인(1936~2018)을 미국을 대표하는 큰 정치인으로 존경한다. 존 매케인. 그는 1967년 10월 베트남 전쟁에서 해군 조종사로 활약 중 북 베트남군이 발사한 미사일에 격추돼 중상을 입은 채 탈출에는 성공하였지만 전쟁 포로가 되었다. 1968년 7월 그의 아버지 잭 매케인 제독이 태평양 사령관이 되었을 때 북 베트남은 외부 선전 목적으로 조기 석방을 제안하였으나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라는 군인 수칙을 따르길 원했다. 매케인은 본인보다 먼저 포로가 된 동료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석방될 수 없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북 베트남은 아들 매케인을 석방하게 되면 미군의 사기에 적잖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이용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 매케인은 아버지 찬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매케인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5년 반이라는 긴 포로 생활을 했다. 매케인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며 강제로 자백서를 쓰고 낭독하기도 했다. 그는 일부러 문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는 등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석방 이후에 이런 사실을 솔직히 인정했다. 


베트남전 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존 매케인은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매케인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와 대결에서 패배했다. 매케인 후보는 지지자들 앞에서 승복 연설을 했다. 매케인은 “민주당이 역사적 승리를 함으로써 위대한 일을 해냈습니다. 당파 차이는 제쳐 두고 미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합칩시다. 실망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실패는 여러분의 것이 아닌 저의 것입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이 전적으로 매케인 자신에게 있다면서 지지자를 다독이고 위로했다. 그리고 매케인은 오바마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매케인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열심히 싸워 줬습니다. 앞으로 국정 운영에서 매케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일하게 되길 원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이렇게 해야 승자도 패자도 하나가 되고 민주주의의 꽃은 만개하는 것이다. 선거 후유증은 최소화되고 국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승복 연설을 하고 덕담을 주고받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선거 후 광경이다. 메케인의 위대성은 그가 승복 연설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 후보의 장점을 부각하여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대선 결과가 나온 뒤에 승복 연설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상대 당선자를 칭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매케인은 오바마 당선자에게 “그의 성공 자체만으로 존경을 받을 만하다. 게다가 많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영감을 주면서 성공했다는 점은 깊이 감탄하는 바이다(His success alone commands my respect, but that he managed to do so by inspiring the hopes of many Americans is something I deeply admire)"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더 나아가 매케인은 자신보다 25살이나 어린 오바마 후보에 대해 “선거에서 승리한 것만도 칭찬받아 마땅한 데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됐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승리한 것은 더욱 존경받아 마땅합니다”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매케인 후보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를 생각하면 중립적인 단어를 선정하여 승복 연설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치적 수사법이지만 매케인은 달랐다. 그래서인지 언론에서는 매케인의 승복 연설을 '가장 품격 있는 패배 연설(the most gracious concession speech)'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전 영웅이 대통령 선거에서도 영웅적인 품격과 톨레랑스를 보여주었다. 매캐인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품격, 즉 인격이다'라는 그의 철학과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미국 언론이 매캐인을 왜 미국의 양심이라고 치겨세웠는지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매케인의 승복 연설이 미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보여주었다면, 200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에게 패배했던 존 케리의 승복 연설은 정치인의 품격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케리 후보는 개표 결과가 박빙으로 나타나고 2000년 대선의 재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깨끗하게 승복했다. 케리 후보는 "선거 결과는 유권자들에 의해 결정돼야지 지루한 법적 소송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선거 결과를 법정까지 끌고 가지 않았다. 과거의 선거 혼란과 국민 분열에서 얻은 교훈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케리 후보의 단호한 의지였다. 케리 후보는 "이제는 분열을 치유할 시간입니다. 미국 선거에서 패자는 없습니다. 당선과 낙선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는 다음날 아침이면 미국인으로 눈을 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럽고 괄목할 만한 재산입니다”라고 승복했다.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을 읽는 듯 심금을 울렸다.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선거 후에 이리저리 찢기고 갈라진 틈새를 다시 메꾸고 당파와 정파를 넘어 하나의 국민으로 되돌아가도록 촉진시켜야 하는 사람이다. 진정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은 통합의 촉진자여야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대표적인 다문화국가인 미국을 하나로 묶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당파와 정파를 뛰어넘는 국가의 정치 리더(statesman)에서 비롯된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선거에서 뽑히는 순간 자신에게 투표한 지지자들만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분열을 치유하고 하나로 통합하는 데 솔선수범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 언제, 어떻게 변형될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분위기로 보면 공화당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가 대단하다. 차기 대선의 관점 포인트는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대선 결과에 대한 승복 여부를 놓고 미국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놓이게 될지 걱정되는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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