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 일에 대해 대가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 대가의 단위가 돈이든 현물이든 아니면 승진이든 간에 사람은 그 대가에 따라 자신의 존재감이나 자존감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말에 '그냥'이라는 단어다. '그냥'이란 아무런 대가나 조건, 그리고 의미 따위가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아래에서 친구 간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자.
A: "왜, 그 일을 했어?"
B: "그냥"
A: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까?"
B: "아니야. 그냥 했어. 괜찮아."
위의 친구 간의 대화에서 처럼 '그냥'은 일을 한 사람이 아무런 대가나 조건을 바라지 않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물론 '그냥'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다르다. '그냥 그렇다'라고 하면, '대수롭거나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냥 해본 소리'라고 말하면, '별 뜻이 없이 한 말'이 되거나, '자신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뜻이 된다. 그냥은 이유가 아니라 여유다(정철, 2022). 언어의 다의성(多義性)이다.
그냥에서 '그'을 떼어 내면 조선시대 화폐의 단위로 사용된 냥(兩)이 된다. 한 냥, 두 냥, 세 냥 등으로 사용했다. 신분계급사회에서 차별과 냉대를 받았던 무지렁이 백성들은 냥(兩)을 사용하여 수준 높은 골계를 만들었다. "개를 팔아 두 냥 받았으니 양반(兩班)은 한 냥 반으로 개 한 마리 값만도 못하다." 양반(兩班)을 양반(兩半), 즉 한 냥에 닷 돈을 더한 금액인 한 냥 반이라는 의미의 한자어로 고쳐 못난 양반을 놀림조로 표현한 말이다.
저자가 '그냥'이라는 단어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다. '그냥'은 쌍방이 교환이나 거래를 하는 화폐 단위는 아니지만, 수백, 수천, 수만 냥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그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간에 사용하는 '그냥'이란 단어는 가장 진정성이 밴 상대에 대한 최고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개인 간에 또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그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상황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 한 냥, 두 냥... 값으로 평가하는 이 세상에 '그냥'이라는 가치 중심의 말이 얼마나 소중한가. 카피라이터 정철(2022)은 '그냥'에 대한 가치 부여를 이렇게 한다. "사람이 만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어난 절묘한 말이 그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