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국을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비틀즈(The Beatles)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비틀즈를 우리나라의 방탄소년단(BTS)에 비유하면 팔이 안으로 굽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비틀즈는 저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0년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된 록 밴드로 그 멤버인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숱한 화제를 낳았다. 비틀즈가 부른 <예스터데이(Yesterday)>는 BBC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위를 차지하곤 한다.
최근 폴 매카트니가 <예스터데이> 가사에 담긴 배경과 의미를 설명해서 주목을 끌었다. 가사 중 “내가 뭔가 말을 잘못했나 봐요. 이제 나는 지난날이 몹시도 그리워요(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에 얽힌 사연을 설명했다. 언뜻 가사를 들으면 연인 사이에 오해가 생겨 둘이 이별을 한 상황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폴과 자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있었던 일화라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한 말을 두고 무안하게 쏘아붙였던 것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가사다.
폴의 어머니 매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간호사였는데 상류층 영어를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감수성이 민감한 청소년기였던 폴은 어머니가 상류층을 따라 하는 말투를 쓴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쏘아붙였다. 이를 떼면 폴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폴, 그에게 갈 건지 물어봐줄래?(Paul, will you ask him if he’s going?)"와 같은 말을 했다. 이때 폴은 어머니가 '애스크(ask)'를 '아스크(arsk)'로 발음하며 영국 상류층 특유의 말투를 따라 했다고 느꼈다. 폴은 “엄마, 그건 애스크라고 해야 해요(It’s ask mum)”라고 쏘아붙였다.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폴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 <예스터데이> 가사를 썼다. 불후의 명곡은 인간의 아픔과 성찰을 동반한다. <예스터데이>의 우리말 가사를 음미해 보자.
지난날
나의 모든 고통이란 멀리 있는 듯하였지
그러나 이제 그 어려움들이 내 곁에 찾아와 언제고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아 ,
오, 지난날이 좋았었는데...
갑자기
나는 옛날의 반도 못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어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길게 뒤덮어 버렸지
아, 행복했던 어제의 일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야
왜 그녀는 가야만 했을까, 난 알 수가 없어
그녀는 좀처럼 말하려 하지 않았지
나는 무언가 말을 잘못했던 거야
이제 나는 지난날이 그리울 뿐
지난날
사랑은 그렇게 쉬운 놀이였건만
이제 나는 몸을 숨길 곳이 필요해
아, 지난날은 좋았었는데...
폴은 어렸을 적 어머니의 말투가 거슬려 '욱'하여 어머니를 몰아붙였던 일을 평생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다. 저자도 동병상련이다. 그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니까 말이다. 저자에게도 세상이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옳고 그름을 칼로 무 자르듯 하려고 했던 때다. 저자에겐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이 그런 시절이었다. 중학교까지는 밀물과 썰물처럼 이리저리 따라다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세상을 나의 가치관에 맞춰 재단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가족들과의 대화에서도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거나 배려하기보단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생각을 토해내듯이 말하고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나와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아픔과 후회로 남아있는 설화(舌禍)가 많다. 사람이란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생각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인지구조를 생각하면, 지금 기억에 남는 설화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폴과 같은 나이의 철없던 시절에 얼마나 부모와 형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많이 했을까 싶다.
저자 역시 폴과 같이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어머니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번 한 것 같다. 대학생일 때 농촌에서 생활하시는 어머니가 세상 변화에 대해 잘 모르시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실 때 저자는 "그것은 어머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에요.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요..." 도싯물 좀 먹었다고 뽐내는 듯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어찌 세상을 몰라서 그렇겠는가? 단지 사회가 변화하면서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지고 과거보다 기술이 좋아졌을 뿐인데 말이다. 폴은 저자보다 한참 어렸을 적에 어머니에게 대들었던 일화를 떠올리며 어머니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지었다고 하는데, 저자는 폴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시기에 어머니를 몰아붙였다. 생전 어머니에게 따뜻한 사과를 드리지 못해 늘 송구한 마음뿐이다. 어머니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식을 키우면서 느낀 것은 어머니라고 해서 모든 것이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은 '욱'하는 성질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욱 본능', 즉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욱하는 성질은 저자의 아킬레스건이다.
저자는 살면서 늘 경계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나 자신과 약속한 10가지 계명(誡命)이 있다. '첫 번째, 부모의 은덕을 기억하라. 두 번째, 나를 대하듯 형제에게 하라. 세 번째, 형제나 친구와 돈 거래하지 말라. 네 번째, 지금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 다섯 번째, 욱하지 말라. 여섯 번째, 책은 사서 보라. 일곱 번째, 세상을 향해 질문하라. 여덟 번째, 종교나 정치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말라. 아홉 번째, 이웃을 정답게 대하라. 열 번째, 자식을 충분히 가르쳐라. 성경의 십계명의 다섯 번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저자는 10 계명 중에 다섯 번째를 '욱하지 말라'로 정하고 젊은 시절에 어머니를 몰아붙였던 때를 뒤돌아보며 평생 경계하면서 살고자 한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들으면 가수 이선희가 부른 <아! 옛날이여>(1985년)의 가사와 그 맥락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꿈처럼 아름다웠던 시절을 아쉬워 하지만, 그 시절이 다시 재현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잊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그러나 어디 그 시절이 쉽게 잊어질 수 있을까.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아름다운 사연들 구름 속에 묻으리/ 모두 다 꿈이라고"
누구나 후회할 말을 하게 된다. 아니, 후회할 줄 알면서도 꼭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릴 때가 있다. 말이 흉기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지 말아야 한다. 폭력 중에서도 언어폭력이 가장 무섭다. "욕은 말로 하는 살인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한자 품(品)은 물건이 가지런히 질서 있게 쌓아있는 모양에서 비롯되어 인품(人品)이나 품격(品格)을 나타내는 한자어로 쓰인다. 품(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구(口) 세 개를 포함한다. 인간이 맑고 향기로운 인품을 갖추고 높은 수준의 품격을 갖기 위해서는 입에서 가지런한 말이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말로 상처를 주었을 때는 가능한 빨리 사과하자. 사과는 가장 용기있는 행위다.
김가연. (2024). 조선일보. 매카트니가 밝힌 ‘예스터데이’ 가사 …“어머니에 상처 준 후회”.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