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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r 14. 2024

나는 형들의 '노가다'가 자랑스럽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

'노가다'는 일본말로 土(どかた)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이 공사장 주변의 작은 토방(方)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가다의 뉘앙스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을 말하지만, 우리말로는 '잡일' 또는 '막노동'으로 표현하고 있다(여기서는 '노가다'로 사용한다). 가끔 젊은이들 사이에 오가는 말 중 "  없으면 노가다나 뛰지 뭐"라는 식의 자조적인 말을 듣곤 한다. 누군가 직면한 상황을 돌파할 뚜렷한 희망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아 느끼는 좌절감을 표현한 자조적인 말이지만, 노가다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는 농사를 지어보면 금세 아는 이치와 같다.  


의형제를 맺은 쌍둥이 형이 있다. 형들의 진실되고 다정다감한 인간성에 매력을 느껴 결연식까지 맺었다. 한 번에 두 명의 형을 얻은 셈이다. 쌍둥이 형은 장사로 불릴 만큼 힘이 좋고 체격도 우람하다. 형들의 직업은 이른바 '노가다'다. 노가다도 급수가 다르다. 형들은 중장비와 각종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한다. 주로 포클레인(굴삭기)으로 일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다양한 기계를 조작하면서 일을 한다. 형들은 전국구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을 했고 그런 과정에서 체득한 경험과 지식으로 지금은 현장 책임자로 일한다. 수십 장에 이르는 공사 설계도면을 분석, 종합, 적용해 가며 현장을 지휘한다. 형들에게는 노가다 현장이 곧 삶이었고 학교였다. 지금은 형들의 평판과 실력이 여러 지역에 널리 알려져 굵직한 공사를 의뢰받는 경우가 많아 일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정도다.


얼마 전 일요일에 비가 오는 데 형들은 현장에서 일을 했다. 전화로 안부를 묻는 가운데 "일요일에는 좀 쉬면서 하시지..."라고 말했더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하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들려왔다. 이 세상에 가장 풀리지 않은 한(恨)은 '못 배운 것에 대한 한'이라는 것을 잘 안다. 형들이 말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십 대부터 노가다를 하면서 은연중 받은 무시와 괄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형들의 부친도 생전에 형들에게 '모지리'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면서 좀처럼 칭찬을 하지 않았나 보다. 작년 여름의 일이 떠오른다. 저수지에서 큰 형이 개발한 대형튜브를 가지고 물놀이를 했다. 튜브 아래 공간을 방수천으로 막아 네다섯 명이 탈 수 있는 튜브로 변경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대단하네요"라고 말했더니,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한데 항상 '모지리'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했(바보 혹은 모자란듯한 사람을 뜻하는 사투리이다. 표준어는 '머저리'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내뱉었던 말이 형에게는 평생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른은 아이에게 말을 할 때 언어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자칫 언어폭력을 넘어 인격살인이 될 수 있음이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며 세상 밖으로 나온 새싹을 짓밟는 행위다.


내가 형들을 보았을 때는 건축과 토목 분야에서의 작업역량은 물론 일상생활에서의 지식과 지혜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리고 인간성이야 더 이상 말로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런 형들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작은 형하고 전화 안부를 물으면서, "나는 형들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더니 "노가다 하면서 자랑스럽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직업에 대해서는 귀천이나 상하가 없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하는 일의 성격이 다를 뿐인 것이다.


공사 현장에서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일을 진행할 수 없다. 노가다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사용하거나 자기의 어려운 상황을 체념하는 듯이 말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노가다는 3D 업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즉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노가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슷개 말로 이제 '노가다는 [No 가다(어깨, 肩)]'이다. 어깨 힘이 좋다고 할 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노가다는 다양한 기계를 조작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현장의 다양한 작업 특성에 필요한 맞춤형 지식과 경험이 필수역량이 되었다.


노가다를 하는 형들은 가방끈이 긴 동생을 둔 것에 대해 흐뭇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가방끈만 길었지 가방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별개 없다. 특히 농촌에서 생활하는데 긴 끈은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 긴 끈(책에서 읽었지만 현실에는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이 발목에 걸쳐 넘어지는 수가 있다. 자승자박이다. 형들은 가방끈은 짧지만 그들의 가방 안에는 실용적인 경험과 지혜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형들과 그런 경험을 듣고 지혜를 공유할 때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삶의 의미가 더 풍성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형들은 새벽부터 집에서 먼 곳에 위치한 현장에 출근하여 저수지 수로 공사를 한다. 작은 형은 포클레인으로 지반공사를 하고, 큰 형은 현장을 감독하면서 설계도면에 맞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나는 형들이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서 성취감을 더 크게 느꼈으면 한다. 형들이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노가다로 다리를 놓고 길을 뚫고 건물을 지으면서 유머스럽고 훈훈한 인간미를 잃지 않은 형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형들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고 위험한 노가다를 하면서도 훈훈하고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로 사람들을 편하게 만든다. 내가 그동안의 성취와 희생에 대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채 자존감이 꺾인 형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형! 사랑합니다. 형들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뿐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인재들이다. 


형들이 얼마나 사회변화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형들은 노가다에 이골이 났다. 즉 사전적 의미처럼 '아주 길이 들어서 몸에 푹 밴 버릇'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공사수주가 많거나 농사철이 되면 몸이 둘이어도 제때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주수입원은 토목과 건축 공사에서 비롯되지만, 태생적 배경은 농촌이라는 점에서 작업이나 공사를 맡지 않을 경우에는 평범한 농부가 된다. 주전공은 토목건축학이고 부전공이 농경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에서 꼭 필요로 하는 농촌친화적인 융합형 인재들이다. 최근 형들은 스마트폰 활용법을 배웠다. 과거처럼 없는 시간을 쪼개 읍이나 시내로 이동하여 작업에 필요한 기계공구를 구입하는 데 발품을 팔거나, 은행에 종이통장을 가지고 통장정리를 하고 송금하던 관행에서 웬만한 대외 업무는 모바일로 처리한다. 형들은 정보사회가 인간에게 얼마나 편리함을 제공하는가를 경험하면서 목마른 사슴이 되었다. 그들은 부단히 새로운 변화를 배우려고 하고 또 그 배움을 실천하려고 반복학습을 하고 있다. 내일모레면 칠십에 가까운 쌍둥이 형의 이런 모습이 나에겐 슬픈 아름다움이다. 누군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변화를 알려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그들의 일상생활이나 작업환경에 적용하게 했다면 그들의 삶의 모습도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형들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 활동하는 무대를 정보사회로 확장시키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님이 주창했던 '디지로그형(Digilog)' 노가다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노가다로 성공한 사람은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일 것이다. 정 회장의 학력이야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한학과 소학교(초등학교)에 불과했지만, 그는 해보지 않은 노가다가 없을 정도로 현장을 누볐다. 정 회장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또 물으면서 일의 이치를 확실하게 이해했고, 그렇게 축적된 경험과 지혜는 일류기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 회장이 시련이 닦쳤을 때마다 보여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공법은 그의 현장 경험이 뒷받침이 되었다. 그는 기업인이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정주영 회장은 청년 시절 고려대 본관 건물 신축 공사에서 노가다로 일을 했다. 그리고 그는 학교에서 노가다로 일했던 인연을 살려 그의 호를 딴 아산(峨山) 이학관을 지어 기증했다. 돈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노가다는 혹독한 시련과 역경의 현장이지만, 어떤 생각과 포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토방(土方)에 머물 수도 있고 대방(大房)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사람이 항상 노가다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가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속하다 보면 몸에 무리가 따르고 망가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노가다 방식의 일과 절연하고 자기만의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형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나 역시 노가다를 하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형들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노가다 현장을 감독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이어령. (2008). 디지로그. 서울: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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