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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r 12. 2024

주연은 조연의 역할 잊지 말아야

감나무와 고욤나무

우리나라에서는 시/도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산림청장이 역사적, 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다. 보호수의 성격에 따라 지정 유형도 달라진다. 대략 10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노목(老木)은 생장 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늙은 나무이며, 거목(巨木)은 글자그대로 굵고 큰 나무이며, 희귀목(稀貴木)은 매우 드물고 귀한 나무, 명목(名木)은 어떤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 등의 유래가 있어 이름난 나무이거나 성현, 왕족, 위인들이 심은 것으로 알려진 훌륭한 나무, 보목(寶木)은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이 있는 보배로운 나무, 당산나무(堂山木)는 제를 지내는 성황당, 산신당, 산수당에 있는 나무, 정자목(亭子木)은 향교, 서당, 서원, 사정, 별장, 정자 등에 심은 나무, 호안목(護岸木)은 해안, 강안, 제방을 보호할 목적으로 심은 나무, 기형목(畸型木)은 나무의 모양이 정상이 아닌 기괴한 형상의 관상가치가 있는 나무 그리고 풍치, 방풍, 방호의 효과 및 명승고적의 정취 또는 경관유지에 필요한 풍치목(風致木) 등이다. 대부분의 보호수는 느티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비자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차지하는데, 1만 3천 여 보호수(2022년 기준) 중 느티나무(7,249그루)가 압도적으로 많고 소나무(1,752그루)가 그 뒤다.


저자는 감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은 처음 들었다. 2023년 12월, 경북 상주시에 있는 수령 750년 된 감나무가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이 '하늘 아래 첫 감나무'는 고욤나무에 접을 붙인 국내 최고령 접목으로 평가받는다. 감나무를 고욤나무에 접을 붙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감 씨를 심어 자란 감나무에서 열린 감은 볼품없는 땡감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 국민 과일에 해당하는 사과와 배, 복숭아 등을 생산하는 나무도 접을 붙인다.


우리말에 '감쪽같다'라는 말이 있다. '감쪽같다'는 '꾸미거나 고친 것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아니하다'라는 의미의 형용사이다. 이 형용사는 감나무의 접붙이기에서 나온 말이다. 대목(臺木, 접을 붙이는 나무), 즉 고욤나무의 줄기에 접붙이고자 하는 눈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붙이고 끈으로 칭칭 감아 두면 이듬해 봄에 줄기와 가지가 달라붙어서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접을 붙인 것처럼 흔적이 없는 상태를 '감접같다'라고 표현했다. '감접같다'가 '감쪽같다'라는 말로 변화한 것이다.


감나무의 대목으로서 고욤나무는 인간 세계에 비유하자면 대리모다. 우리말 이름 고욤은 작은 감(小柿)에서 파생된 ‘고’와 어미의 옛말인 ‘욤’의 합성어이다. 고욤의 꽃말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을 돌보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자애'를 나타낸다. 


고욤나무에서 열린 고욤의 형상을 보고 지은 이름 우내시(牛奶枾), 즉 '소젖꼭지 감’이란 말도 기가 막힌 비유다. 소의 젖꼭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금세 연상이 될 것이다. 고욤을 보면 영락없이 소젖꼭지를 닮았다. 암소의 분홍색 젖꼭지는 새끼들 이 젖을 먹으면서 흑갈색으로 변해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연급의 대리모 역할을 하는 고욤나무에서 열리는 고욤도 분홍색에서 나중에는 흑갈색으로 변한다. 암소가 새끼들을 헌신적으로 키우는 것처럼, 고욤나무의 희생으로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홍시가 달리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대목을 밑나무로 삼아 자란 감나무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오덕(五德)을 갖춘 나무로 추켜세웠다. 잎이 넓어 글씨 연습하기 좋으므로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쓰여 무(武)가 있으며, 열매의 겉과 속이 같이 붉으므로 충(忠)이 있고,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열매가 달려있어 절(節)이 있으며, 물렁한 홍시는 이가 없는 노인도 먹을 수 있어 효(孝)가 있다는 얘기다. 감나무의 특성을 인간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덕목과 연결시키는 옛사람의 관찰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감나무에 대한 예찬은 오덕에서 끝나지 않는다. 칠절(七絶)까지 갖추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첫째, 수령이 길고(一壽), 둘째, 그늘이 만들어 시원하고(二多陰), 셋째, 조류가 둥지를 틀지 않으며(三無鳥巢), 넷째, 벌레가 생기지 않고(四無蟲), 다섯째, 서리 맞은 잎이 보기 좋으며(五霜葉可玩), 여섯째, 맛있는 열매가 열리고(六嘉實), 일곱째, 넓은 낙엽은 훌륭한 거름이 된다(七落葉肥大)는 것이다.


저자는 감나무의 오덕에 대해서는 그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공감하는 편이지만, 칠절 중 두 가지는 실제와 다르다고 생각을 한다. 일부러 반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감나무에는 새가 둥지를 틀고, 벌레가 끼어 이파리를 갉아먹는다. 특히 감나무 쐐기벌레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붓고 시리다. 감나무 예찬을 오상칠절로 맞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덕칠절로 칭송받는 감나무에 대해 공부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제상을 모실 때 수많은 과일 중에 '감'을 제사상에 올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제사를 모실 때 올리는 과일을 일컬어 조율시이(棗栗枾梨), 즉 대추, 밤, 감, 배를 말한다. 조율시이는 차례상에 올리는 순서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고인이 좋아하는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지만, 차례의식을 따지는 집에서는 정해진 과일을 차례상에 올린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상들은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생산하는 나무를 주변에 심어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농촌의 집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집 안에서는 대추나무와 감나무를 흔히 볼 수 있고, 집 근처 언덕이나 밭둑에서는 밤나무와 배나무를 볼 수 있다. 후손들은 선대가 심어 놓은 과일나무에서 열린 열매로 제사를 지낸다고 생각하면 제사의 의미는 더 정감있게 다가온다.

 

감나무의 오덕은 유교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에 해당할 것이다. 감나무가 오덕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데 고욤나무라는 조연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튼실한 열매를 맺는 감나무로 자라기까지는 고욤나무 대목 줄기는 감나무 가지를 붙들고 상처가 아물기까지를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지 않는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조명을 받는 주연 뒤에는 말없이 희생하는 조연이 있는 법이다. 고염나무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다. 무엇보다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이용하여 감나무 본연의 성격을 제대로 구현하게 하는 선조들의 지혜에 머리가 숙여진다. 고욤나무와 감나무의 합체를 보면 자연의 섭리는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산술적 계산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초월하는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농촌에서 비닐로 단단하게 감아놓은 고욤나무와 감나무의 접목이 눈에 더 들어온다.


박상진. (2011).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우리 나무의 세계. 파주: 김영사.

아트만.  (2022). 매일경제. 보호수 그늘 아래 서면 ... 내 마음의 나무 한 그루. 8월 11일.

원종태. (2017). 중앙신문. [나무 이야기] 벼슬의 꿈을 이루어주는 감나무. 11월 28일.

이영일. (2019). 우리문화신문. 감의 대리엄마가 된 ‘고욤나무’. 12월 27일.

이종민. (2022). 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감나무의 일곱 가지 덕을 아시나요. 11월 11일.  

산림보호법 제13조(보호수의 지정·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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