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 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먹는 야생 식물을 구황식물(救荒植物) 또는 비황식물(備荒植物)이라고 한다. 한자 '황(荒)'은 풀초(艹)와 망할 망(亡) 그리고 냇물 천(川)의 결합어다.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조차 먹을 수 없는 거친 황무지를 뜻한다. 구황식물은 보릿고개를 연상시킨다.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매년 5월과 6월이 문제였다. 일년 중 두세 달은 식량이 떨어진 집들이 많았다. 5, 6월은 지난 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보리는 아직 여물지도 않았다. 보릿고개를 춘궁기(春窮期) 혹은 맥령기(麥嶺期)라고 부르는 이유다.
저자 역시 보릿고개를 경험했다.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물든 5, 6월이면 '밥을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프다'는 10대에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여물지 않은 보리를 불에 살짝 익혀 손으로 비벼 먹고 나면 입 주변이 시꺼맣게 되었다. 물천어와 개구리 뒷다리는 최고의 단백질 보충원이었다. 사실 60, 70년대 농촌에서는 시사철이 보릿고개였다고 생각한다. 여름에는 감자와 옥수수를 달고 살았다.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는 7, 8월에는 아직 푸르스름하여 익을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는 땡감을 소금물에 담가 떫은맛이 가시게 한 뒤 간식으로 먹었다. 가을에는 산에서 주운 도토리를 갈아 가루로 보관하고 산밤을 많이도 주웠다. 겨울에는 사랑방에 자리를 차지한 고구마와 서늘한 고방에 저장된 호박이 주식 대용으로 사랑받았다(학교를 갔다 집에 오면 먼저 들리는 곳이 부엌의 고구마를 찐 솥이었다. 고구마는 밥그릇을 가운데 놓고 적당량의 물을 부은 뒤 찐다). 또 산에서 칡뿌리를 캐 껌처럼 씹던가 즙을 내 마셨다. 소나무 껍질을 낫으로 벗겨 내고 부드러운 속살을 씹으면 단맛이 났다.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여러 구황식물로 허기를 달래곤 했다. 그래도 저자는 형편이 좀 나았던 시기였지만, 형들과 누나들은 더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구황식물 중 도토리를 줍는 것은 쉬웠다. 많을 때는 몇 포대씩을 지게에 지고 산에서 내려왔다. 도토리로 묵을 만들거나 전병을 만드는 공정 과정은 손이 많이 갔다. 말리는 과정에서도 벌레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허다했다(당시는 지금처럼 도토리를 주식으로 하는 다람쥐와 청설모가 참나무과 나무들의 군락을 이루는데 일등공신인 줄 잘 몰랐다). 이번 기회에 도토리와 다람쥐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해보자.
도토리는 참나무과 나무에 열리는 열매를 뜻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참나무과 나무에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가시나무 등 일곱 종류가 있다. 이들 나무를 통칭하여 도토리나무라고도 부른다. 이들 나무 이름 중 상수리나무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간 선조는 도토리묵의 맛을 알게 되었다. 선조는 환궁, 즉 한양으로 다시 돌아온 뒤에도 도토리묵을 찾았고 그러다 보니 수라상에 자주 올렸다고 한다. 수라상에 올린다는 뜻으로 '상수라'라고 했다가 상수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수라상에 올린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인데 유독 도토리묵의 재료가 되는 도토리를 상수리라고 했다는 것은 좀 어색한 것 같다. 또한 상수리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를 상실(橡實)이라고 하는데, 상실에 '이'가 붙어 '상실이'라고 부르다가 '상수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선조가 피난 중에 이름을 붙였다는 음식 이름을 보면 흥미진진하면서 변덕스러운 인간 감정의 기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도루묵'의 유래가 그렇다. 선조는 피난길에 '묵'이라는 물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하도 맛있게 먹어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할 정도였다. 전쟁이 끝나고 환궁하여 '묵' 고기를 먹었는데 옛날 맛이 아니었다. 선조는 "에이, 도로(다시) 묵이라 불러라"라고 했다고 한다. '도로묵'은 시간이 가면서 '도루묵'으로 변했고, 도루묵은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버리는 것을 칭하는 말이 되었다. 고기는 그대로인데 인간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이토록 다르다. 자연세계에서 벌어지는 사달에는 인간의 개입이 문제다.
늦가을에 산속을 가다 '툭' '툭'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토리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와 땅에 떨어진 낙엽이 접촉하면서 나는 소리다. '툭' 소리는 사람의 귀에도 들리지만 더 민감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동물은 다람쥐일 것이다. 다람쥐는 이때 도토리를 모으지 못하면 겨울을 나기 어렵다. 다람쥐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도토리를 모아 저장해야 한다. 도토리나무 한 그루에서 도토리가 적게는 300개에서 많게는 1만 개가 맺힌다고 하니 다람쥐가 부지런하게 도토리를 모으면 풍족한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도토리를 모으는 동물이 어디 다람쥐뿐이겠는가. 청설모, 멧돼지, 곰, 꽁 등의 동물도 도토리를 찾아 쟁탈전을 벌인다. 생존게임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다람쥐는 세 종류가 있다. 누런색과 몸에 줄을 가진 다람쥐는 흔히 볼 수 있고, 배를 제외한 몸전체가 검은색으로 일반 다람쥐보다 훨씬 크고 꼬리도 큰 청설모, 그리고 희귀한 날다람쥐가 있다. 여기서 청설모에 대한 오해를 잠시 풀고 가자. 저자도 숲에서 보는 청설모를 우리나라 토종 동물이 아닌 외래종으로 생각했다. 생태적으로는 다람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덩치가 크고 검은색 털을 가진 외모도 비호감이었다. 그러나 청설모도 엄연히 토종 동물이다. 우리 조상은 붓의 재료로 청설모의 꼬리털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청설모의 영어 이름은 '한국 다람쥐'라는 뜻의 'Korean squirrel'이다.
다람쥐와 청설모의 차이점도 흥미롭고 예상을 뒤엎는다. 다람쥐가 도토리가 많은 참나무 숲과 풀밭을 좋아하는 것과 달리 청설모는 솔방울이 많은 잣나무 숲을 좋아한다. 다람쥐는 굴을 파고 사는 것과 달리, 청설모는 나무 위에 나뭇가지를 모아 집을 짓거나 나무 구멍 안에서 산다. 또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와 다르게 청설모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무엇보다 다람쥐가 나무 열매는 물론이고 개구리나 작은 뱀을 잡아먹는 잡식성인 반면, 청설모는 나무 열매를 주식으로 하면서 간혹 벌레나 작은 새의 알을 먹기도 한다. 놀라운 점은 대부분 사람들은 다람쥐는 외모가 깜찍하고 귀여워 육식을 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뱀까지 잡아먹는 잡식성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다람쥐보다 덩치도 크고 외래종이라고 생각했던 청설모는 나무 열매를 주식으로 하고 우리나라 토종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검증이 필요할 때가 많다.
대개 다람쥐가 참나무과 나무들의 번식을 방해하는 동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생각은 오해다. 다람쥐는 도토리를 땅에 묻어 두기도 하는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 묻어 둔 도토리의 대부분을 찾지 못한다. 다람쥐가 묻어 두고 찾지 못한 도토리는 다음 해에 싹을 틔워 참나무로 자라게 된다. 다람쥐의 건망증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참나무, 아니 우리나라 산에는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를 일이다. 만약 다람쥐의 인지능력이 뛰어나 땅에 묻어둔 도토리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찾아내 먹어치운다면 참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도토리를 많이 매달아도 부지런하지만 건망증이 심한 다람쥐라는 운반책이 아니라면 어미나무 주변을 맴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람쥐의 건망증이야말로 우리 산을 푸르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물론 그 일등공신에는 청설모도 포함한다. 묵사발이라는 말이 있다. 묵의 부서지기 쉬운 특성을 비유하여 얻어맞거나 얼굴 따위가 형편없이 깨지고 뭉개진 상태를 말한다. 만약 숲속에 다람쥐가 없다면 도토리는 묵사발에 담긴 음식으로 그 수명을 다하고 말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인과응보다.
권오신. (2007). 경북매일. 다람쥐가 번식시키는 참나무. 11월 12일.
김영선. (2005). 광주드림.[광주풀꽃나무]나중에 먹으려고 파묻은 도토리.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