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하는 말이다. 만약 하늘의 무심함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세상에서 정의롭거나 유익한 일을 한 사람이라면 하늘에 대한 원망은 더 커진다. 무심한 하늘은 전쟁에도 적용된다. 화살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고대 전쟁에서 적군으로 불던 바람이 갑자기 아군 쪽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전쟁의 양상은 불리하게 될 수 있다. 바람이 적군 쪽으로 불면 화살은 바람의 탄력을 받아 목표물에 신속하게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아군 쪽으로 불면 화살은 바람의 저항을 받아 원하는 목표물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고도의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현대전에서도 하늘의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천기를 알면 전쟁에서 승리한다." 우리나라 국군도 기상단을 운영하며 기상을 전문적으로 관측한다. 항공기상관측, 위성관측, 지상관측, 레이더 관측 등 각종 데이터를 슈퍼컴퓨터에 입력해 기상 예보 자료를 축적한다. 군사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임무별로 맞춤형 관측자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항공임무에서는 구름의 높이와 양 그리고 가시거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포병임무에서는 고도별 바람의 속도가 중요하다.
날씨의 중요성을 가장 잘 드러낸 전쟁은 중국 최초의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적벽대전(赤壁大戰)일 것이다. 서기 208년 촉나라 유비와 오나라 손권의 10만 연합군은 조조의 80만 대군과 양자강 남안의 적벽(赤壁)에서 맞닥뜨린다. 절대적 수적 열세였던 연합군은 화공(火攻)으로 조조군을 궤멸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화공, 즉 적에게 불화살을 쏘려면 바람이 불어줘야 하는데, 연합군에 불리한 북서풍이 불었다. 유비의 책사 제갈량이 "동짓날(음력 11월 20일)부터 3일 동안 거센 남동풍을 빌려 오겠다”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약속한 날에 남동풍이 불어 조조군은 불화살에 궤멸했다. 하늘에서 바람을 빌린 제갈량의 능력이 기가 차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에는 허구로 가득 차 있지만, 제갈량이 신통력을 부려 하늘의 이치를 알고 바람의 방향을 바꿨다는 것도 허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청나라 역사학자 장학성은 <삼국지연의>는 칠실삼허(七實三虛), 즉 7할은 사실이고 3할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어떻게 바람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부경대 변희룡 교수에 따르면, “제갈량은 저기압이 온난전선을 동반하고 온난전선 앞면에 항상 남동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풀이했다. 이 해석이 맞는다면 제갈량의 능력은 북서풍을 남동풍으로 바꾸는 ‘신통력’이 아니라 온난전선이 지나갈 때를 미리 알고 그때 부는 바람을 이용한 지혜였던 셈이다. 또한 제갈량은 한 어부에게서 동짓날을 전후해 미꾸라지가 물 위로 부지런히 들락거리면 남동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국립수산과학원 이두석 연구관은 “저기압의 영향으로 대기 중 기압이 낮아지면 물에 녹아있는 산소량이 줄어든다. 기압에 민감한 미꾸라지가 호흡하기 위해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위성사진이나 레이더 영상이 없었던 시대에 구름 모양과 미꾸라지의 움직임으로 날씨를 예측한 제갈량은 ‘베테랑 예보관'으로 평가받을만하다(서금영, 2009 재인용).
무대를 고려시대로 옮겨보자. 강감찬의 귀주대첩(龜州大捷)을 기억할 것이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첩으로 꼽힌다. 1019년 강참찬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귀주에서 거란군과 대회전을 벌였다. 귀주에서도 날씨와 타이밍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되었다. 전투 초반에는 바람이 고려군 쪽으로 불어 고려군이 어려움에 처했다. 역풍을 맞으며 쏘는 고려군의 화살은 거란군을 효과적으로 타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천우신조(天佑神助)였는지, 시간이 가면서 바람의 방향이 거란군 쪽으로 불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고려의 기병이 거란군의 후미를 공격하면서 승패는 갈리게 됐다. 거란의 3차 고려 침략은 거란의 후미에서 고려 정예 기병이 출현함과 동시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거란의 참패로 끝났다. 고려의 운명을 건 거란과의 전투에서 하늘은 고려에 무심하지 않았다.
겨울철 매서운 추위를 가리킬 때 동장군(冬將軍)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어로 동장군을 'Frost General'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유래도 날씨와 관련된다. 1812년 6월 22일, 나폴레옹(1769~1821)은 러시아 원정을 강행했다. 유럽을 손아귀에 넣었던 나폴레옹은 무려 60만 대군을 거느리며 러시아를 침략했다. 대륙봉쇄령을 따르지 않은 러시아에 대한 응징이었다.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에 진격했을 때 도시는 텅 비어있었다. 러시아는 청야작전으로 도시를 불태웠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날씨는 영하 20~30도를 기록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매서운 추위 때문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영국 언론은 나폴레옹을 꺾은 러시아의 추위를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동장군은 일본이 제너럴 프로스트를 ‘후유쇼군(冬將軍)’으로 번역하여 사용하면서 차용하였다. 나폴레옹의 60만 대군 중 프랑스에 도착한 인원은 2천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자연의 위력에 인간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1941년 6월 22일,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은 소련을 침략했다.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일자와 일치한다. 히틀러의 소련 침략은 소련에서 공산주의자의 제거와 남부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와 돈 강 일대의 산업지대, 유전이 있는 카프카스 지역으로 진출해 경제적 자원을 확보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도 동장군 의 기승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해 겨울은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독일군은 속도전으로 소련을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군인들에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날씨는 영하 30도대를 기록했다. 후퇴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원정, 즉 동선이 긴 상황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발생한다. 인간은 보급품 수송 문제, 병력분산 등 눈에 보이는 변수들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지만 날씨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히틀러는 나폴레옹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했다.
전쟁은 대개 6월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럽에서 봄과 겨울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폭풍이 잦은 시기라는 점에서 6월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전쟁을 비롯하여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과 독일의 소련 침략,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6월에 일어났다. 중동전쟁도 6월에 시작되었다. 6월은 사막의 모래폭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시기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과 정보를 토대로 세운 전략이라도 날씨 변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날씨를 빌려오는 제갈량의 신통력이나 강감찬에게 찾아온 하늘의 유심이 없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일이다.
“훌륭한 장군은 전략을 배우고, 유능한 장군은 병참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날씨를 아는 장군이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말이다.
김민수. (2022). 뉴스 1. 날씨는 누구 편일까…복잡해지는 푸틴의 우크라 공격셈법. 2월 13일.
반기성. (2017). 동아사이언스. 나폴레옹이 6월에 전쟁을 떠난 이유. 6월 22일.
서금영. (2009). 동아일보. 삼국지 적벽대전 ‘제갈량 남동풍’의 비밀은. 9월 23일.
양낙규. (2017). 아시아경제. 전시상황 가장 무서운 敵은 ‘기상’.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