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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축객령(逐客令) vs 낭트칙령

다양성의 힘

지구촌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될수록 사회는 점점 다양화, 다원화, 이질화되어 가는 속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회를 다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라고 부른다. 단일문화가 아닌 하나 이상의 복수 문화와 공존하는 사회다. 역사적 사건으로 비춰보면 인류는 다양한 문화와 공존 공생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진(秦) 나라의 축객령의 취소(BC 3C)와 프랑스 루이 14세의 낭트칙령 폐지(17C)는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진나라의 축객령은 진나라 밖 출신의 빈객들을 추방시키라는 왕명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이사(李斯)>편에 등장하는데, 한나라 출신 정국(鄭國)이란 사람이 진나라 관리로 진출하여 운하 건설을 강력히 건의한다. 이는 운하 건설에 인력과 비용을 소모시켜 진나라의 한나라 침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계략이 탄로 나면서 진나라 신하들은 외국에서 온 모든 빈객들을 추방시키도록 건의하게 되고 진왕(진시황 이전의 명칭)도 이에 동의하여 축객령을 공포한다. 이때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악명 높은 승상 이사가 이렇게 상소를 올린다. “축객령은 도적에게 군사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식량을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진나라에서 나지 않은 물건 가운데 보배로운 것이 많으며,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재 가운데 충성스러운 인물이 많습니다.” 진왕은 축객령을 거둬들이고 외국에서 온 인재들은 진이 통일제국을 이루는데 기여한다.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본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이 발원지이지만 교세를 확장시키고 기독교 문화를 발전시킨 곳은 유럽이다. 특히 가톨릭은 종교개혁 이전 만해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교황을 태양에, 황제는 달에 비유할 정도로 가톨릭의 위세는 강력했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은 가톨릭(구교)과 개신교와의 긴장과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유럽에서 발생한 전쟁 중 상당 부분은 종교적 갈등이 원인이 되었다. 각 나라마다 종교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랐지만, 프랑스의 사례는 특별하다. 1598년 프랑스 낭트에서 앙리 4세는 개신교(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를 ‘위그노’로 부름)의 ‘특정한 권리’를 인정하는 칙령을 선포한다. 여기서 특정 권리란, 파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개신교도가 모여 예배를 볼 수 있으며, 위그노의 보호에 필요한 군대와 비용을 국왕이 지불하는 것이다. 위그노를 밀고한 자에게는 몰수한 재산의 4분의 1을 수여하는 개신교 탄압 법률도 폐지되었다. 드디어 낭트칙령으로 위그노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게 되었다. ‘태양’은 ‘달’의 낭트칙령에 분노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것”이라며 비난했다.


진나라의 축객령 취소와 낭트칙령 반포는 국가가 다문화적 요소를 수용하는 모습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1685년 낭트칙령을 폐지한다. 그는 가톨릭만을 국교로 인정함으로써 절대 왕정에 대한 교황청의 지원을 받고자 할 의도였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위그노들은 해외로 탈출한다. 그 숫자가 20~30만 명에 달했다. 위그노들은 제조업, 상공업, 금융업 등 현대에 비유하면 경제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들이 이웃 네덜란드, 벨기에, 프로이센(독일), 영국, 스위스 심지어 미국으로까지 탈출했다. 위그노들은 국가의 종교 탄압으로 난민 신세가 되어 세계 각지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프랑스 경제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경제의 주요 주체들이 빠져나가자 경제는 휘청거렸을 것이 뻔하다. 프랑스의 결정을 이웃 국가들은 쌍수를 들어 반겼다. 독일은 위그노들을 수용하기 위해 별도의 통관절차를 마련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거처와 작업 환경까지 제공했다. 오늘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영국의 런던이 금융허브로서 위상을 갖고, 스위스의 광학 기술과 독일의 제조업이 일류 경쟁력을 갖게 된 데에는 위그노들의 활약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진나라 승상 이사의 말은 반향을 일으킨다. 프랑스는 위그노를 내치면서 그들은 프랑스의 소중한 양식을 싸가지고 이웃나라로 탈출 러시를 이루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인간의 욕심과 아집에서 배태됩니다. 역사는 좌도 우도 아닌 디폴트 값이지만 인간의 변덕이 역사의 아니러니를 만든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인기 애플리케이션 틱톡(TikTok)과 위챗(微信 중국판 카카오톡)의 퇴출령을 내렸다. 지식기술혁명시대에는 사람 대신 Technology가 퇴출의 대상이다. 과거와 현대의 다문화의 개념과 양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고금의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 공동체는 부족한 것을 채우고 넉넉한 것을 나누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초연결 시대는 다문화사회로 귀결되고 그 다문화사회는 다양성(diversity)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의 초석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다문화사회 현상도 장기적, 거시적으로 보면 도전이면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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