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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Post-Corona 전략

연암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으로 유명한 연암(燕巖) 박지원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요 베스트셀러 작가다. 당시 조선의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교조화, 권력화 된 성리학의 폐쇄주의와 보수주의의 한계에 맞서 진보적인 학문과 실용적인 지식을 추구했다. 그들은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며 국제적인 시야를 넓히고,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조정과 위선적인 위정자를 고발하는 <허생전>과 <양반전>을 읽으면 사이다와 같은 후련함을 느꼈을 것이다. 


연암은 법고창신론(法古創新論)을 주창했다. 법고창신의 원문은 법고이지변, 창신이능전(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입니다. 풀이하면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내되 법도가 있게 한다’라는 의미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옛것을 미루어 새것을 안다’라는 정적인 행위라면 법고창신은 옛것을 본보기로 하되 형편과 상황을 재해석, 재정의하여 새것을 만드는 보다 능동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어는 ‘변통’과 ‘법도’인데, 변통은 형편과 상황에 맞게 바꾸는 재창조하는 것이고, 법도란 전통을 고려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끈이 이어지는 것이다.


연암이 역사에서 꼽은 법고창신의 사례 중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한나라 장군 한신은 3만 병력으로 20만의 조나라의 군사를 물리쳤다. 배수진(背水陣) 전법. 당시에는 산을 등지고 강을 앞에 한 채 진을 치는 일은 있어도 강을 등지고 진을 치는 전술은 없었다. 한신의 배수진 전술에 휘하 장수들이 병법의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죽을 땅에 들어간 다음에야 살아날 수 있다”라는 말로 대꾸하였다. 한신은 기존의 병법을 기계적으로 따르지 않고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 배수진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창조했다. 옛것에 정통하면서도 옛것에 갇히지 않는 태도로 옛것을 적절히 잘 활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


반면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탄금대를 배수진으로 왜군과 맞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는데 다시금 법고창신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만든다. 신립 장군은 매복전을 펼치기 안성맞춤인 조령(鳥嶺)을 놔두고 하필 평지에서 왜군의 조총부대와 정면대결의 전술을 택했고 맥없이 무너졌다. 신립은 법고창신으로 배수진이 아니라 산을 등지는 배산진(背山陳) 전략을 구사했으면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지 않을까 싶다.

 

둘째는 후한(後漢)의 우후(虞詡) 장군은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하는 중에 군사들이 밥을 해 먹은 아궁이 수를 실제보다 더 많이 만든 다음 이동함으로써 구원병이 온 것처럼 속임수 전술을 구사해서 위기를 벗어났다. 이 전술은 전국시대 손빈(孫臏)이 병력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도록 아궁이 수를 줄이며 이동하여 적을 방심하게 만든 뒤 대승을 거둔 전술을 역이용한 것이다. 이 역시 옛것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전술을 창안해낸 법고창신의 멋진 사례이다.


법고창신은 최근 <코로나 19> 대응에서 그 진가를 확인시켜주었다. 바로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검사법이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인플루엔자 pandemic에 대비해 드라이브 스루로 진단과 백신을 배포하는 모델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있다면 스탠퍼드대학의 논문은 치료 백신이 있는 경우였고, 코로나 19는 백신이 없는 고위험 병원체를 진단하는 것이다. 전자가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면 한국은 현실에 적용하였다. 옛것을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활용하여 방역에 효과적인 시스템을 새롭게 창안해낸 것이다. 이제 K-방역과 의료 체계는 세계가 부러워한다.


역사는 법고해서 창신할 사례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학자 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법고를 과거로 창신을 현재로 설정하고 법고와 창신이 서로 긴밀히 연결하고 소통하면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것이다. 연암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경세 철학으로, 글쓰기 전략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의 보고로 삼았던 법고창신을 우리들의 삶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싶다. <코로나 19> 대응 전략도 '법고해서 창신'하면 해결책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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