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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우리는 누군가의 페이스 메이커다!

마라토너 남승룡과 서윤복 이야기

마라토너 남승룡 선수를 기억하나요? 우리나라에서 마라톤 선수하면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 등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대선수들을 기억한다. 기록 경기에 관한 한, 아니 경쟁이 있는 곳에서 1위가 아니면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기 어려운 일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남승룡 선수는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와 함께 출전하여 동메달을 딴 마라톤의 실력자다. 매년  순천에서는 그를 기리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손 선수의 명성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 선수의 또 다른 면에 눈이 번쩍 띈다.


 때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했지만 정부 수립을 채 하지 못하고 미군정하에 있던 1947년 4월의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다.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는 서윤복 선수(당시 24세)가 출전하였는데, 그때 감독은 손기정이었고 코치 겸 선수는 남승룡이었다.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들이 감독과 코치와 선수로 출전한 것도 울림을 주지만, 진즉 감동적인 장면은 따로 있다.


남승룡 선수(당시 36세)는 후배 서윤복 선수를 위해 페이스 메이커로 달렸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젊은 후배의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남 선수는 어떤 마음으로 출전했을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달렸던 베를린의 한(恨)을 풀고 싶었을 것이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시상식을 보면 1위와 3위를 한 손기정과 남승룡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손기정은 꽃다발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고, 남승룡은 일장기를 가리기 위해 바지를 위로 바짝 댕기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기쁨을 기쁨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망국의 한과 비통함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조국의 대표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달릴 수밖에 없었던 비애를 간직하고 있었다.   


주권국의 한 사람으로서 남승룡은 떳떳하게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후배 서윤복이 우승을 하는 데 밀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서윤복 선수는 기량이 뛰어난 우승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남승룡 선수와 같은 페이스 메이커가 아니었다면 우승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서윤복 선수가 달리는데 도로변에서 갑자기 개가 나타나 놀라고 운동화 끈이 풀어져 선두 자리를 놓치기도 했다. 돌발사고다. 보스턴 대회는 그 명성에 걸맞게 쟁쟁한 세계기록 보유자들이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페이스 메이커가 된다는 것, 아름답고 멋진 교학상장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19>로 초연결이 오히려 거대한 장벽이 되어 버린 작금에 여러분 삶의 페이스 메이커는 안녕한지,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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