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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세렝게티 법칙

강한 자만이 핵심은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더 그리울 때가 있다. 나이테가 한 겹 늘어날수록 생전의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비례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늦게 철이 들어 무덤에 가서 눈물 짜는 전형적인 불효자의 모습이다. 이번 기일 부모님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려본 애절하지만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어느 날 나 자신도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너무나 열심히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아버지의 얼굴과 겹쳤다. 아버지도 특별한 일이 겹치지 않는 한 매일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이 프로그램은 69년 시작되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동물의 왕국>의 주무대는 아프리카의 밀림이나 초원이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있는 세계에서 대표적인 동물보호 공원이다. 이 공원에도 생태계의 원리가 작동한다. 세렝게티 법칙이다. 세렝게티 법칙 6가지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제1의 법칙이다. "핵심종: 모든 동물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다. 어떤 종은 개체 수나 생물량이 불균형한 군집의 안정과 다양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핵심종의 중요성은 먹이사슬에서의 위치가 아니라 그들이 다른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수준으로 판단된다." 

    

먹이사슬이 엄존하는 밀림의 생태계에서 어떤 동물이 핵심종(keystone species)의 자격이 있을까요?  호랑이, 사자 등의 최상위 포식자, 하이에나, 치타 등의 중간 포식자, 지젤이나 영양과 같은 초식동물, 덩치가 어마어마한 코끼리, 하마 등 세렁게티에는 수백 종의 생명들이 공존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핵심종은 백수의 제왕 사자도 덩치 큰 코끼리도 아니다. 핵심종은 검은꼬리누다. <동물의 왕국>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검은꼬리누가 무리를 지어 강을 건너 이동할 때 악어의 먹이가 되는 장면을... 기대 밖으로 초식동물 검은꼬리누가 핵심종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무가 없는 평원에서 검은꼬리누는 화재를 예방하는 차원 외에도 식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검은꼬리누의 수가 늘어나기 전에 동쪽 평원에 있는 초본은 대개 50-70cm 높이까지 자랐지만 검은꼬리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이후로 풀들은 10cm를 넘지 못하게 되었다. 풀의 높이가 낮아지자 상대적으로 다른 식물이 빛과 영양분을 받을 기회가 많아졌다. 그래서 초본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식물의 종류가 많아지자 다양한 나비들이 모여들었다. 놀랍게도 실제로 풀은 보호받을 때보다 동물에 의해 뜯어 먹힐 때 더 많은 먹이를 제공하고 풍성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검은꼬리누는 매해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조밀한 풀밭의 형성을 양성적으로 조절한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검은꼬리누가 없다면, 세렁게티도 없을 것이다.” 검은꼬리누가 세렝게티에서 군집의 구조와 조절에 파격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종이다.


세렝게티의 제1법칙은 우리 인간 세계에도 적용되지 않나 싶다.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관계와 조직에서 핵심이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조직과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수준으로 그의 존재 가치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또 이 법칙은 COVID 19로 고통받는 오늘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많다. 생태학의 선구자인 로버트 페인(1933-2016)은 이렇게 경고한다. “인간은 확실히 생태계를 독점하는 핵심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생태계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생태계에 해를 가한다면 결국에는 최후의 패자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제 인간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은 인간 자신뿐이다. 생태학자들은 한결같이 20세기를 지배한 모토가 ‘의술을 통한 더 나은 삶’이었다면 21세기의 모토는 ‘생태학을 통한 더 나은 삶’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이용,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 자연을 억압, 착취해온 개발의 연대에는 실용적인 학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면 이제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환경학, 생태학 등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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