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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목우유마(木牛流馬)

리딩 그룹과 팔로워 그룹의 차이

역사를 보면 국가 집권 세력의 힘에 균열이 생기면 기회를 엿보던 잠룡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세력 간의 이합집산이 생긴다. 이합집산의 형체가 뚜렷해지고 통치 체제가 형성되면 그것이 또 다른 부족 또는 국가로 탈바꿈한다. 우리나라 고대사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한반도 쟁패를 놓고 다투다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였다. 통일 신라 말기에는 힘의 균열이 생기면서 후삼국시대가 열리고 고려가 재통일을 하였다. 중국의 역사도 이와 유사한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秦)이 뜻밖에 곧바로 힘의 공백을 초래하면서 초(楚)와 한(漢)이 우열을 다투지만 한이 재통일을 하게 된다. 400년 역사의 한의 통치력에 균열이 생기면서 위, 촉, 오의 삼국이 천하 쟁패를 놓고 우열을 가리게 된다. 삼국지는 후한 시대 위, 촉, 오의 군웅들이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펼치는 대하 역사 드라마이다. 


삼국지에는 하늘의 별처럼이나 많은 왕, 제후, 장수, 지략가, 병법가, 달변가, 열사, 지사, 협객, 배신자, 간신 등 주연과 조연들이 등장하여 놀라운 재능과 현란한 무예를 펼치지만, 진즉 독자의 시선은 제갈량(字 공명)과 사마의(字 중달)의 지략 대결에 쏠리지 않을까 싶다. 불세출의 두 지략가가 펼치는 대결 중에서도 전쟁 수행의 관건인 군량 확보를 위한 머릿싸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현대전이나 고대전이나 전쟁 수행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병참, 이 중에 군량의 확보다. 현대전에서는 병사들이 먹는 음식을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진공 포장이나 캔 등을 이용한 다양한 군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고대전에서 군량은 곧 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쌀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전쟁의 수행과 승패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중국은 광활한 평야 지대도 많지만 고산준령도 많다. 특히 촉이 위치한 지형은 산악 지대다. 고대전에서는 우마차를 이용하여 군량을 보급해야 하는데, 산악 지대를 통과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 우기에 산사태나 홍수가 나면 이 험한 길마저도 끊기게 된다. 


삼국 전쟁은 대략 1800년 전의 이야기이다. 위 조조와 촉 유비가 죽고, 위 대도독 사마의와 촉 승상 제갈량이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치면서 먹고 먹히느냐의 절체절명의 때다. 자신들이 모시던 주군을 대신하여 벌인 대리전이다. 촉은 국가 수립 때 설정한 '위 정벌 한 부흥'이라는 원대한 국가 목표를 향해 국력을 총결집한다. 그 중심에 제갈량이 있다. 촉 병사들은 위를 정벌하기 위해 수천 km를 행군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 동선이 길었다. 긴 동선은 많은 문제를 내포한다. 주둔지가 고산준령에 있을 때는 군량미를 운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까지 했다. 소와 말이 끄는 수레에 군량미를 싣고 이동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어깨에 메고 옮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바로 옆은 천 길 낭떠러지이다. 


산사태로 군량미를 우마차로 옮길 수 없다는 보고를 접한 제갈량을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오늘날 용어로 '외바퀴 수레'를 만들었다. 중국말로 목우유마(木牛流馬)이고, 영어로는 'a single-wheeled cart with two handles(wheelbarrow)'이다. 이 수레에 대한 구조와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글자 그대로 두 유형의 수레다. 앞에서 끄는 소 모양의 수레와 뒤에서 미는 말 모양의 수레다. 병사들은 목우유마에 쌀을 싣고 좁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동할 수 있었다. 수레에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은 병사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이고, 하루에 수십 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적군이 수레를 탈취해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브레이크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필요는 발명의 원동력이고 최고의 아이디어 인큐베이터다. 에디슨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 먼 옛날에도 필요에 따라 발명은 이루어졌다. 


당시 전황은 촉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갈량이 위를 상대로 신들린 병법과 계략들이 적중하면서 연전연승을 하였다. 이런 기세로 나가면 한조 부흥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문제는 군량미가 바닥이었다. 촉의 수도 성도에서 군량미를 보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기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위 정벌을 포기하고 회군해야 하는 기로다. 마침내 도착한 군량관의 보고로는 산사태로 길이 막혀 우마차를 포기하고 병사들이 어깨에 메고 겨우 몇 천석만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이 상황에 맞는 지략을 내놓는다. 역시 공명이다. 목공들에게 도면대로 목우유마를 만들도록 지시한다. 목우유마가 외바퀴 수레의 프로토타입이 된 배경이다.


위군은 목우유마로 쌀을 운반하는 촉군을 기습하여 이 수레들을 탈취한다. 수레의 효용성을 알아본 위군도 몇 천대의 목우유마를 제작하여 수도 장안에서 조달된 쌀을 주둔지로 옮긴다. 상황은 위에 유리하게 돌아간 듯했다. 제갈량은 기술뿐 아니라 후속 전략도 준비되어 있었다. 부하 장수와 병사들을 위군으로 변장시켜 군량미 검사를 핑계로 수레를 만지면서 목우의 혀를 반대쪽으로 돌려놓는다. 검사관이 돌아간 뒤 위군이 수레를 끌고 가려하는데 꼼짝하지 않는다. 촉군의 발명품을 모방하여 만든 위군은 수레의 작동 원리를 몰랐다. 밀고 끄는 원리만 알았지 멈춤 장치를 간과했다. 공명은 위군의 쌀 30만 석을 탈취하여 군량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삼국지에서는 공명의 지략을 중달보다 한 수 위로 표현한다.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의 혼을 빼놓었다."


현대는 지식정보사회이다. 국가 또는 기업의 미래는 고부가가치의 지식과 기술을 창출, 활용하느냐에 그 명운이 달려있다. 중국 삼국 시대 제갈량이 발명한 목우유마는 군량미 운반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전쟁의 승패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고부가가치의 지식과 기술이었다. 제갈량은 병사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하면서 군과 국가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여줬다.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leading 그룹과 follower 그룹의 차이다. 선도적으로 수레를 고안하고 적용한 촉의 전략과 기술을 뒤쫓게 된 위는 모방을 통해 수레를 만들 수는 있는 인재와 기술을 갖추었지만, 그 핵심적인 작동 원리를 몰라 촉에게 식량을 뺏긴다. 오늘날 기업의 원천 기술의 중요성에 비유할 수 있다. 기업이던 국가던 독창적인 원천 지식과 기술 없이 모방 단계에 머물러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공명의 목우유마는 팔로워 단계를 벗어나 리딩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다.  


삼국지

Woods, Mary B. & Woods, M. (2011).  Ancient transportation technology: From oars to elephants. Twenty-First Century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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