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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감자 대왕' 프리드리히 2세

정치의 첫 번째 덕목, 굶주리는 백성이 없어야 한다.

어릴 적 생감자를 먹고 혼이 난 적이 있다. 속에 가스가 차 고통스러웠다. 감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빚어진 일이다.  감자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성 성분이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감자 보급을 위해 감자 파티를 열었는데 요리사가 감자의 잎과 줄기까지 모두 요리해버리는 바람에 솔라닌에 중독돼 고생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감자는 16세기 초 남미 페루에서 유럽에 들여왔다. 초창기에는 거부감이 심했다. 유럽인들은 하나님이 ‘씨앗으로 번성하는 식물’을 창조했다는 성서의 기록에 따라 씨앗이 아닌 줄기로 자라는 감자를 불길하게 생각했다. 감자가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겉모습도 흉했다. 오늘날 감자는 개량종이다. 감자의 수난사다.  


감자가 진가를 발휘할 때가 왔다. 18세기 전만 해도 유럽은 빈곤, 전쟁, 전염병 등 온갖 재앙으로 인구가 줄었다. 프랑스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 루이 16세는 옷의 단추 구멍에 감자꽃을 꽂아 장식했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감자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거나 머리에 감자 꽃 장식을 달아 감자를 홍보했다. 감자 홍보대사다. 


유럽 각지로 감자가 보급되면서 사회를 변화시켰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감자가 돼지 사료로 쓰이며 육식 문화도 만들어냈다. 항해사들에도 감자는 매우 중요한 식량이 되었다. 비타민 C 결핍으로 생기는 괴혈병을 방지했다. 감자의 유용성은 증명되었지만, 감자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지식이 수용을 가로막았다. 굶어 죽더라도 개도 먹지 않은 감자를 사람이 먹을 수 없었다. 


계몽 군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의 감자 보급을 위한 아이디어와 노력은 신선했다. 그는 궁궐 정원에 감자를 심고 삼엄한 경비를 서도록 했다.  "감자는 왕과 귀족들만 먹는다"라는 소문이 돌게 했다. 실제 감자는 왕의 식단에 매일 올라왔다. 감자가 귀한 몸이 되었다. 왕이 솔선수범하여 감자를 먹기 시작하자 백성들도 더 이상 개도 안 먹는 감자라고 놀릴 수 없었다. 이만하면 사람들은 감자를 먹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부러 감자밭 경비를 느슨하게 하면서 감자를 가져가도록 했다. 


그렇게 독일 전체로 감자가 보급되었고, 오늘날 감자는 독일인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 사후 국민들은 감자 보급으로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국왕에게 '감자 대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무엇보다 영예로운 호칭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무덤에 꽃보다 감자가 더 어울리는 이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목민의 근원, 정치의 첫 번째 덕목은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해야 한다.  "군주는 국가의 제일의 종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어록이다.


주경철(2015).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5/20200625004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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