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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거중조정',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허상

혹자는 19세기 후반 조선이 처한 형국을 구약(열왕기상 21장)에 등장하는 나봇의 포도원(Naboth's Vineyard)으로 비유했다. '사마리아 왕 아합은 왕궁 옆에 포도밭을 소유한 나봇에게 땅을 팔라고 압박한다. 나봇이 거부하자 탐욕에 눈이 먼 왕은 그를 죽이고 땅을 차지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포도밭을 뺏길 지경에 이른 조선의 위태로운 지경을 비유하고 있다. 조선은 주변 열강의 침탈과 야욕으로부터 국가의 운명을 함께 할 파트너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한미수호통상항해조약(Treaty of Peace, Amity, Commerce and Navigation, United States–Korea Treaty)을 맺게 된 데에는 열강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어 원문을 보면 평화, 우의, 통상, 항해에 관한 조약이다. 


누구보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중매에 나섰다. 중국은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싶지만 힘의 역학 관계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을 끌어들여 균형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친청연미(親淸聯美) 전략이다. '조선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독립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친하게 지내고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 조선, 중국,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중국 외교관 황준헌도 <조선책략>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조선의 입장에서도 미국과의 파트너십이 싫지 만은 안 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때였고 국가 이미지도 신선했다. 대국답게 약소국의 고통을 이해하고 정의에 편에서 도움을 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조선은 제1조의 '거중조정(good offices)'에 가장 큰 관심을 두었다. 거중조정이란 '국제기구, 국가, 개인 제삼자가 국제 분쟁을 일으킨 당사국 사이에 끼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일'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국 미국이니까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제1조 원문이다. If other powers deal unjustly or oppressively with either Government, the other will exert their good offices on being informed of the case to bring about an amicable arrangement, thus showing their friendly feelings.


국가 간의 조약문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흥미롭다. 한미 조약을 중재한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조선은 청국의 속방(屬邦)이다’라는 내용을 조약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찬성할 리 없다. 미국도 자주국과 조약을 맺고자 하지 중국의 속방으로서 조선과 조약을 맺을 이유가 없다. 하나를 양보하면 다른 하나를 들어주는 것이 외교다. 중국은 '조선은 청국의 속방이다'라는 조문을 빼는 대신 '거중조정(居中調整)' 조문을 명문화했다. 미국을 통해 러시아와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꿩 먹고 알까지 먹으려는 속셈이다. 조약 체결 과정을 보면 약소국의 아픔이 느껴진다. 한미 조약의 당사국인 조선과 미국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이 협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중매쟁이가 결혼 날짜 잡고 주례까지 모두 본 격이다. 


중국의 중매로 한미는 결혼에 골인한다. 신랑과 신부는 동상이몽이었다. 조선은 대국에 기대 열강의 야욕에서 벗어나려 했고 미국은 조선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했다. 애당초 미국은 거중조정과 같은 조항에는 관심이 없었다. 레토릭이다. 미국식 외교다. 점잖은 척하면서 뒤로 이익을 챙긴다. 거중조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조선이 당시 국제정세에 대해 얼마나 어두운가를 보여준다. 순박한 것보다 무지몽매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은 미국의 거중조정 역할을 믿고 미국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다. 미국이 거중조정 역할만 해준다면 요구하는 것은 뭐든 다 해줄 마음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이권의 특혜도 주었다. 경인철도 부설권, 전기발전소 부설권, 서울시 전차 부설권, 수도 부설권, 금광 채굴권. 거중조정,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 찍었다. 미국은 관심도 없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신기루와 같은 미신에 불과했다. 실제 미국은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거,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등 한반도의 명운을 결정하는 사건에서 거중조정의 역할을 거부했다. 표면상 이유는 아시아 중립외교 또는 불간섭 원칙이다. 거중조정은커녕 오히려 조선의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894년 영국이 미국에 일본 세력을 억제하고 조선 독립을 보장해주자는 제의를 거부하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미국의 제국주의 탐욕과 이중성은 드러났지만 오래전부터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맹주로 기정사실로 했다. 미국은 대국의 품위도 지키지 않았고 정의롭지도 않았다.  


태프트-카스라 밀약(Taft–Katsura Memorandum). 조선이 절대적으로 기대했던 미국의 거중조정 역할이 얼마나 잘못된 믿음이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조약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탐욕과 국제 관계에서 약육강식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 전쟁부장관 태프트와 일본 총리 카스라는 1905년 러일 전쟁 후의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했다. 이행각서의 핵심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가지며, 미국은 필리핀을 통치한다.' 이 밀약은 기밀 외교문서도 아니었는데, 1924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거중조정, 얼마나 허깨비와 같은 표현인가. 국제 관계에서 국익에 관한 한 상대방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반증이다. 


1882년 5월 22일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이 구미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이 조약의 탄생 배경을 보면 처음부터 잘못 끼우진 조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권국 조선이 배제된 채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이 조문 내용에  적극 개입했고, 조선은 신기루로 드러난 미국의 거중조정 역할을 신봉했다. 서로 속셈이 다르면 계약이 성사되더라도 이행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미국이 국제 외교의 초보자인 조선을 이용했다. 오늘날 한미 관계는 정치, 경제, 외교, 통상, 문화, 군사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적으로 가장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서로의 국익을 위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국제 관계 역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언제든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작동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김원모(1999). 한미수교사: 조선보빙사의 미국사행편(1883). 철학과 현실사.

김원모(2002). 한미 외교 관계 100년사. 철학과 현실사.

한미수호통상조약(1882)

https://en.wikipedia.org/wiki/Joseon%E2%80%93United_States_Treaty_of_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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