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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5. 2020

노블레스 오블리주 ①

유래와 현대적 의미

벨기에 왕위 계승 서열 1위 공주가 군사훈련을 받는 사진과 뉴스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벨기에 왕실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왕자도 아닌 공주가 훈련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란다. 공주는 특별대우를 받지 않고 다른 훈련병과 똑같이 진흙탕을 기며 훈련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논란과 시비가 일고 있는 사회 지도자의 특혜와 반칙을 생각하면 부러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여 도덕적 책무를 실천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고 한다. 이 연원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1337~145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도버 해협에 인접한 칼레를 포위하고 1년 가까이 공격을 퍼부었다. 난공불락의 칼레도 식량이 바닥나 마침내 항복을 선언했다. 1347년 칼레 시민군은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항복 사절단을 보낸다. 영국 왕은 시민들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도시 대표 6명에 대해 교수형을 요구한다. 솔직히 영국 왕은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에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시민들을 몰살시키고 싶었지만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항복 조건은 칼레의 대표 6명이 맨발에 속옷만 걸치고 목에 밧줄을 감은 채 성 밖으로 걸어 나와 성문 열쇠를 바치는 조건이었다. 


누가 나설 것인가? 칼레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진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먼저 나섰다. 뒤이어 시장, 법관 등 6명이 동참하겠다고 자원했다. 칼레시에서 가장 높은 지위와 신분을 지닌 노블레스가 솔선수범으로 나선 것이다. 정확히 537년의 시간이 지난 1884년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은 칼레시로부터 6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로댕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칼레 시청 앞에 설치된 작품은 시장통에서 떠나는 6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조각상을 보면 항복한다는 굴욕감과 비통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느낄 수 있지만 자신들은 처형되지만 시민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안도감 내지는 자긍심도 엿볼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탄생한 순간이다. 사회 지도자의 용기와 헌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지도자를 많이 본다. 케네디(J. F. Kennedy) 전 대통령은 1961년 1월 20일 취임 연설에서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은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Much is given, much is required.)” 이해하기 쉽다. 개인이 뛰어난 재능과 능력으로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공동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본 철학은 사회에서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에 대한 정의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남보다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자리다." 대통령이란 국가 최고의 지위에 지위에 올라 온갖 특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열악한 환경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멋진 대통령들의 멋진 철학이다. 지위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남들이 존경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경은 남들보다 솔선수범하고 헌신할 때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활성화되면 사회 구성원들의 통합이 잘 되고 부의 되물림이니 사회경제적 지위(SES)의 재생산이니 하는 말이 줄어들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의 말이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능하지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고귀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벨기에 엘리자베스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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