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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13. 2020

미처 몰랐습니다 ①

다독왕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글을 여러 번 계속해서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구서불염백회독 숙독심사자자지(舊書不厭百回讀 熟讀深思子自知) 묵은 글을 싫증 내지 않고 일백 번을 읽은 후,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알게 된다. 공통점은 다독이다. 글을 많이 읽으면 스스로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김득신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 10살이 돼서야 글공부를 시작했다. 후유증으로 아둔했다. 지적 장애인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조기교육이 일반적이었다. 양반집 자녀는 5살쯤 되면 사서삼경에 입문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득신의 아버지는 김치(金緻)다. 김치의 아버지는 임진왜란에서 진주대첩의 신화를 쓴 김시민 장군이다. 김득신은 김시민의 손자다. 조선 후기 화가 김득신(金得臣 1754-1822)과는 동명이인이다.


아버지 김치는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학문의 성취가 늦어도 성공할 수 있다. 읽고 또 읽으면 

대문장가가 될 수 있다." 김득신은 이해가 느린 약점을 다독으로 극복했다. 58세에 급제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독수기(讀數記)를 남겼다. 고문을 읽은 횟수의 기록. 만 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싣지 않았고, 그 이상 읽은 것만 기록했다. 공전절후(空前絶後) 전무후무(前無後無). 정약용은 백곡의 다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글자가 생겨난 이후로 상하 수천 년과 종횡 3만 리를 통틀어 독서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이로는 당연히 백곡을 제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가 남긴 <독수기>를 보자. <백이전>은 1억 1만 3천 번, <노자전> <분왕> <벽력금> <주책> <능허대기> <의금장> <보망장>은 2만 번, <제책> <귀신장> <목가산기> <제구양문> <중용서>는 1만 8천 번... <장자> <사기> <대학> <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 만약 훗날 자손들이 나의 <독수기>를 보게 되면, 내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독수기에 등재되기 위한 기본 조건은 만 번 독서를 하는 것이다. 만편독수(萬遍讀數). 그의 서재 이름도 억만재(億萬齋)다.


백곡의 독서 방법은 초독(抄讀)이다. 전편이 아닌 일부를 발췌하여 집중적으로 읽었다. 문장을 선별하고 요약하여 만 번 이상을 읽었다. "대저 배우는 사람은 책이 많아도 반드시 훌륭한 곳과 요점에 대하여 그 중요한 뜻을 요약해야, 바야흐로 아름다운 맛을 느껴 생각이 심원해지고,... 그렇게 하지 않고 한갓 전편, 대작에만 내달리면 층층의 봉우리와 겹친 산 같아 응접에 틈이 없고, 많기도 많아 그 한계가 다 함이 없을 것이다..." 그의 돌아가신 스승 강주(姜籒)의 독서법을 따랐다. 충북 증평군에서는 '독서왕 김득신 문학관'을 건립하여 그의 초인적인 노력을 기리고 있다. 백곡은 위대한 평생학습자요 대기만성의 본보기다. 미처 몰랐다. 


신범식 옮김(2014). 백곡 김득신의 산문. 조율. 



<書算> 책 읽은 횟수를 기록하는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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