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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12. 2020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나라

소프트 파워의 원천

조선 왕조는 철두철미한 유교 국가였다. 국가 통치의 이데올로기로 뿌리를 내린 유교는 어떤 환경의 변화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고종은 1895년 교육개혁을 단행한다.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교육에 관한 조칙을 발표하는 데 이를 '교육조서' 또는 '교육입국조서'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법령이다. 이때 소학교, 중학교, 대학 교육체계를 갖추려고 했다. 소학교와 중학교 정도에서 개혁은 멈췄다. 성균관은 그대로 두었다. 유림이 강하게 반대해서다. 


1392년 개국 후 5백여 년만에 중국 중심의 교육체계에서 서양 중심의 교육을 도입하려고 했다. 유림이 반대하면 어찌해볼 수가 없다. 정통 유학자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림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소중화(小中華)를 자임하며 유교 통치의 모범국가를 자부해 온 '조선'은 제국주의의 먹잇감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해방, 전쟁의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의 대첩을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기본 골격은 유교 철학이다. 빨리빨리의 DNA를 물려받은 한민족이 옛것의 흔적을 지우는데도 민첩하지만 유교 정신의 보존에 관한 한 마음이 통한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나라다.


서울 4대문은 동대문(보물 1호), 서대문, 남대문(국보 1호), 북대문이다. 이 대문들의 현판은 평범하지 않다. 국보 1호와 보물 1호는 한 나라 문화의 가치 기준이 된다. 사대문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시대의 변천과 상관없이 유교의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염원이 새겨져 있다. 유교 철학의 핵심에 해당하는 오상(五常)으로서 인의예지신은 4대문과 보신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상(五常)은 인간 세계에서 변하지 않은 다섯 가지 진리다.  자연의 질서와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동대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의(義)를 돈독히 하는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은 지(智)를 넓히는 홍지문(弘智門)이라 이름 지었다. 신(信)은 보신각(普信閣)에 있다.


유교의 시조 공자의 이론을 보다 현실적으로 발전시킨 제자는 맹자다. 사숙(私淑)이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공자보다 180년 후에 태어났다. 맹자는 공자의 학설을 이어받아 4단설(四端設)을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의 마음을 인의예지로 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惻隱之心 仁之端也(측은지심 인지단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羞惡之心 義之端也(수오지심 의지단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辭讓之心 禮之端也(사양지심 예지단야)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是非之心 智之端也(시비지심 지지단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인의예지신의 구체적인 실천 계획은 4대문 안 궁궐 정문(남문) 현판에 새겼다. 정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공통적으로 '화(化)'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 걸었다. 백성을 교화(敎化)하여 감화(感化)한다는 의미다. 교화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가르치고 이끌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거친 심성을 부단한 교육으로 순화시켜야 한다는 유교적 교육관이다. 한민족의 교육열(educational fever)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복궁의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의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의 흥화문(興化門), 덕수궁의 인화문(仁化門). 덕수궁의 현재 정문은 대한문이지만 원래 이름은 인화문이었다. 고종, 순종 시대를 거치면서 인화문이 대안문과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유교가 지향하는 기본 철학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하나의 가치관으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생활화되었다. 가훈, 급훈, 사훈으로 인의예지신 중 한 가지 덕목을 삼은 곳도 많다. 21세기 한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다. 인터넷 보급률이 가장 높고 세계 첨단 제품이 한국 시장에서 통했을 때 성공 가능성이 있을 정도다. 변화를 빨아들이고 내뱉는 리트머스요 거대한 용광로다. 전통과 현대의 교묘한 조화를 이룬 나라다. 이 조화 속에서 한류가 세계를 열광케 하고 첨단 제품이 지구촌을 호령하는 소프트 파워가 나오지 않나 싶다. 이 용광로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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