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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26. 2020

블랙리스트

악마의 손길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는 정치공학적 용어가 되었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 흔히 수사 기관 따위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마련한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야당 후보인 문재인이나 박원순을 지지한 예술인과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를 하거나 시국 선언을 한 문화예술인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끊거나 검열 및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비밀리에 리스트를 작성했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인사는 9,473명. 살생부에서 살(殺)부가 블랙리스트라면, 생(生)부는 화이트리스트다.


2016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블랙리스트가 사실이면 대통령 탄핵감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은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해 일제히 독재정부 시절의 정치 검열이라며 반발했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검열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처사이고, 박정희의 유신 시대로 회귀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당시 문재인은 “권력을 풍자하고 시대를 비판하는 중요한 사명을 가진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이 정부의 예술적 무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문책한 뒤 예술인에게 사죄하라”라고 촉구했다.


<트럼보>(2015년)는 우리나라 블랙리스트 사태를 데자뷔 하기 안성맞춤의 영화다. <트럼보>는 제임스 돌턴 트럼보(James Dalton Trumbo 1905~1976)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그의 진보적인 신념과 표현을 문제 삼아 국가에 위험인물로 낙인을 찍고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판 블랙리스의 역사를 쫓아가 보자. 1920년대 이후 경제공황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물가가 치솟고 실업자가 쏟아지면서 사회가 혼란해졌다.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세계사적으로 사회적 혼란은 파시즘, 나치즘과 같은 국가 일당독재의 이데올로기를 잉태시키는 영양분이 된다. 미국 공산당은 1919년 공식 창당했다. 공장 노동자, 흑인, 소작농의 지지를 받았다. 공산당은 경제대공황 시기 미국 사회운동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살기가 팍팍해지면 분배 구조와 평등 문제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를 꽃핀 나라로 평가받고 있지만 훨씬 이전에는 이념 대결, 좌우 대결, 진보와 보수 대결이 끊이질 않았다. 


트럼보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극작가다. 그가 각본, 각색한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고 최고의 몸값을 받았다. 영화계를 대표하는 잘 나가는 작가였다. <로마의 휴일> <스파르타쿠스> <영광의 탈출> <브레이브 원>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계기는 할리우드 영화종사자 노조의 입장에 찬성한 것에서 비롯된다. 당시 제작자, 작가, 배우를 제외한 스텝들은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았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스텝들은 찬밥 신세였다. 그들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합당한 요구를 해왔고 트럼보는 이를 지지했다. 합당한 요구에 합당한 지지였다. 분위기는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인사들을 공산주의로 몰고 갔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세계 강대국으로 진입한다. 종전 후 세계의 정치적 지형은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영국을 위시한 유럽 제국들의 입김이 약해지고 미국이 자유민주진영을 대표하게 되었다. 공산진영에서는 소련이 패권 국가로 등장하고 중국 대륙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소리 없는 전쟁이라는 하는 냉전(冷戰 cold war)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1950년 한국 전쟁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리전이었다. 


1947년 미국 의회는 공산당원 등 반국가적, 파괴적인 인사들의 음모를 밝히고 그들을 청산하기 위한 반미활동조사위원회(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를 조직했다. 상원에서는 1950년부터 매카시즘(McCarthyism) 광풍이 불어닥쳤다. 이념 검증에 적색 공포까지 설상가상이다. 위원회 활동은 1975년까지 이어졌다. 미국 사회도 4, 50년 동안 블랙리스트라는 유령이 사회 분위기를 짓눌렀다. 광풍을 맞으면 끝장이다. 위원회의 청문회에서 트럼보는 공산당원 활동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해 의회 모독죄(contempt)로 기소되어 감옥 생활을 한다. 주류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었다. 트럼보와 가족 흑역사의 시작이다. 찰리 채플린도 매카시즘으로 미국에서 추방됐다.


위원회는 특히 교사, 군인, 공무원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했다. 표적수사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당사자들은 실직, 파산, 이혼하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했다. 사회적 낙인은 개인과 가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갈가리 찢겨버렸다. 영화배우로서 유명한 존 웨인, 로날드 레이건(당시 영화배우협회 회장, 대통령 역임) 등은 화이트 리스트에 올라 승승장구한다. 반면 커크 더글라스(2020년 6월 103세로 타계)와 같은 영화제작자 겸 배우는 매카시 광풍에도 트럼보를 작가로 채용하고 외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국 사회의 흑역사에서 최대의 피해자, 희생자는 개인과 그 가족이지만, 트럼보를 비춰보면 개인이 신념을 어디에 두고 그것을 어떻게 지켜나가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블랙리스트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부하들이 실행했다. 정권 보호를 위해서라면 수천 명의 창작자의 작품 활동, 사회경제적 활동, 그들 가족의 생계와 안위는 안중에 없었다. 미국의 블랙리스트는 의회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만약 이것이 행정부 차원에서 발의되었다면 역시 탄압 감이었을 것이다. 


1970년 3월 트럼보는 전미 작가상을 받는다. 사실 <로마의 휴일>과 <브레이브 원>의 오스카 각본상은 그가 수상해야 맞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상적인 작가 활동을 하지 못한 탓에 엉뚱한 작가들이 대신 상 타곤 했다. 11개의 가명으로 작품을 썼다. 수상 소감에서 트럼보는 이렇게 일갈한다. "블랙리스트에는 악당도 영웅도 없다. 오직 희생자만 있을 뿐이다." 정치적으로 다른 신념을 가진 상대를 특정 세력으로 몰아 세상과 단절시키고 삶을 질식시키는 블랙리스트는 악마의 유혹이고 민주주주의 역행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국가 권력의 횡포다. 독일 기본법 제1조 1항을 떠올린다.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책무이다." 독일 헌법 첫 머리에 에 등장하는 '인간 존엄성'은  블랙리스트가 난무하는 세상일수록 커다란 울림을 준다.


영화 <트럼보>는 국가 권력 행사의 정당성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라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입맛대로 쓰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유념해야 할 점이다. 할리우드는 트럼보 사망 17년 후에 아카데미 각본상을 원래 임자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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