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Oct 26. 2020

미처 몰랐습니다 ③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洪在夏) 

역사의 묘지에 묻혀 잊힌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발굴하여 그들의 활약상을 되짚어보는 것은 참 기쁘고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들의 활동상을 들으면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 프랑스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홍재하 선생(1892-1960)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찾아낸 그의 활동상을 보면 나라를 잃은 백성의 기구한 운명과 나라를 되찾기 위한 그들 앞에서 숙연해진다. 


선생은 배재학당 재학 중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일제의 검거를 피해 191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갔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군에 입대하여 무르만스크의 철도공사 현장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마침 이 지역을 점령한 영국군을 따라 에든버러로 가게 되었다. '흘러들어 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일본은 동맹국이었다. 영국 정부는 일본의 요구에 따라 선생을 비롯한 30여 명의 한인들을 일제 치하의 한국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송환될 위기에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는 황기환 서기장을 영국에 급파했다. 황기환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에 지원하여 유럽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는 미군 복무 경력과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영국 정부를 설득시켜 홍재하 선생 등 한인 35명을 프랑스로 이주시켰다. 황 서기장은 프랑스와 영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여 임시정부 해외 요인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 황 서기장의 일대기는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Eugene Choi 이병헌 분)와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홍재하 선생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노력으로 프랑스에 정착한 뒤 최초 한인 단체 '재법한국민회'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2대 회장을 맡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선생을 비롯한 재불 한인들은 1차 대전 전후 복구 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을 갹출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쾌척하였다. 1919년 11월부터 1920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6천 프랑의 거액을 기부했다. 그들은 1차 대전의 최대 격전지 베르덩(Verdun)이 있는 마른(Marne) 지방의 벌판에서 전사자의 시신과 유골을 수습하고 묘지 조성 등의 험한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들이 타지에서 힘든 노역을 견뎌내고 악착같이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6.25 전쟁 중에도 전쟁 구호물자 조달에 기여했다. 오매불망 조국 생각뿐이었다. 


선생은 1926년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2남 장 자크 홍 푸안 씨가 부친의 유품을 한국에 기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했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아들 장 자크 씨는 "아버지의 공적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한국에 서운한 점도 많고 본인이 한국어도 할 줄 모르지만, 자신이 언제나 독립투사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해외 독립운동은 중국에서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와 미주에서 이승만,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을 떠올린다. 독립운동은 한인이 살아 숨 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펼쳐졌다. 어디 유럽 한인들 뿐이던가? 오대양 육대주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땀 흘려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보냈다. 한번 나라를 잃어버리면 되찾는 일은 더 힘들다. 물건 찾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사후 60년 만에 조국이 선생을 알아준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도 세계 곳곳에 묻혀 있는 잊힌 지사들이 많이 발굴되었으면 한다.  


나라를 되찾은 것은 대추가 붉어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에 붙었던 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2018년 10월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들 장 자크 씨가 말한 내용이다. "부친은 항상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셨고 고국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렇게 번 돈을 계속 어딘가로 보냈는데, 그게 독립운동 자금이었다. 누나들이 성인이 되고 취직하자 그 돈의 일부도 한국으로 보내졌다. 그래서 그런지 우린 항상 가난했다." 미처 몰랐다.



   <장 자크 홍푸안씨와 재불 한인>

작가의 이전글 블랙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