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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27. 2020

양심적 병역 복무

신념과 병역의 조화

2020년 10월 26일은 우리나라 인권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종교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교도소 대체복무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대체복무자들은 현역병 훈련소 입대 모습과 모든 면에서 달랐다.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사람도 눈에 띄었다. 입교식에서는 국민의례와 충성 경례와 구호도 생략됐다. 훈련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진풍경이다. 이들은 3주 교육(군사훈련이 아님)을 마치고 교정시설에서 급식, 물품, 보건위생, 시설 관리 등 보조업무를 하게 된다. 복무 기간은 36개월. 


대체복무의 단초는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체 복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 처벌한 것은 위헌이라고 볼 수 없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들이 대체복무를 통해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관련 조치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병역복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개정된 병역법에 따르면, 병역 유형은 5가지(현역, 예비역, 보충역, 병역준비역, 전시근로역)에서 대체역이 늘어나 6가지가 되었다. 헌재는 "기존 5가지 유형의 병역은 모두 군사훈련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심적 병역의무자에게 기존 병역을 부과할 경우 그들의 양심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들을 처벌한다고 해도 교도소에 수감할 수 있을 뿐 병역자원으로 활용할 수 없으므로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병역자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도 현실적인 판단을 하였다.  

교육 현장과 종교적 신념을 관련지어보자. 1973년 9월 학교에서 종교상의 교리를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사건이 있었다. 김해여자고등학교의 교련 훈련에서 22명의 학생들이 종교상의 교리를 이유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 16명은 학교 측의 설득으로 학교의 지도에 따르기로 하였지만, 나머지 6명은 제적 처분을 받았다. 학부모들은 학교장을 상대로 제적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 이 사건은 대법원(1976. 4. 27)에서 최종 판결했다. 사건명이 길기도 하다. "국기의 존엄성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여자고등학교 학생에 대한 징계처분(제적처분)의 적부" 판결 요지에 따르면, "원고들이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존엄성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그 경례를 거부한 것은 국기 예절에 관한 위 학교의 교육방침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보아 퇴학 처분한 징계처분은 적법하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기에 대한 예절 문제로서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군사정권에서 종교 및 양심의 자유를 보호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매일 정시에 길을 가다가도 애국가에 맞춰 경례를 하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42년이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가 병역 유형으로 대체복무를 도입하도록 판결하였다. 격세지감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양심의 자유(19조)와 종교의 자유(20조)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병역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호받을 길이 열렸다.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다양성(diversity)과 공정성(fairness)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하면 결실을 맺게 된다. 헌법에서 명시한 정교분리(separation of state and church)의 원칙을 견지해나가는 것은 민주주의 첩경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살펴보기로 하자. 배우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트니스>(1985년)는 아미쉬(Amish) 교도의 공동체 생활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개신교의 보수적 성향의 교파로서 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위스콘신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거주한다. 자동차, 전화, 컴퓨터 등 현대 문명을 거부하면서 외부세계와 격리한 채 생활한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공적연금을 수령하지 않는 등 정부로부터 어떤 종류의 도움도 받지 않으려 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 간섭이 따르고 제도에 종속된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대다수 교인은 전통 방식의 농축산업에 종사한다. 


아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할까? 뚜렷한 철학과 원칙이 있다. 아이들은 공동체에서 세운 마을 내 학교에서 교육시키며 과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읽기, 쓰기, 계산하는 법 등 생활에 필요한 기본 지식만 가르친다. 대부분 학생은 중학교까지 다닌다. 단지 소수의 우수한 학생, 가정형편이 매우 좋은 학생만 중학교를 마치고서 고등학교·대학교로 진학한다.


위스콘신주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자녀들을 8학년(중학교)까지만 보내고 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을 거부했다. 고등학교 과정의 이수를 의무교육법으로 명시한 위스콘신 주법에 위배되어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 사건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의무교육을 거부할 권리가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가 하는 문제가 최초로 제기되었다. 197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랫동안 종교적 신념 아래 진실하고 경건하게 살아온 그들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존중하고, 전문가의 증언을 토대로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아미시 촌락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 아미시 부모들에게 자식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내도록 강요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하였다(Wisconsin v. Yoder, 406 U.S. 205).


자신의 신념을 국가 권력과 제도에 따르느냐의 여부는 민감한 사안이다. 가끔 목숨보다 중하다. 정치적, 종교적 신념은 더욱 그렇다. 정치적, 종교적 박해와 탄압을 피해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난민이 생기는 이유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권력을 생성하는 데에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바꾸는 능력은 부족하다"라고 꼬집고 있다. 인류가 시행착오를 겪은 수많은 제도 중에 민주주의만 한 제도가 없을 듯하다. 혹자는 민주주의는 낭비가 심하다고 한다. 뻔한 결과를 알면서도 절차와 과정을 더 중시하니 생긴 말일 것이다.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에서도 미란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개개인의 신념과 지향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민주주의의 가치가 압도적 우위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다양성, 포용성, 지속성의 관점에서 진화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와 위정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어떻게 하면 국민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 시행되는 대체 복무제는 그동안 대다수의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헌법 정신의 구현이다. 첫 대체복무자들이 본보기가 되어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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