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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24. 2020

에이징 파워(Aging Power)

늦게 핀 꽃의 향이 더 멀리 오래간다.

우리나라에서 노인 연령은 65세다. 노인 연령 기준 65세는 독일의 비스마르크(1815-1898)로 거슬러 간다. 당시 프로이센은 프랑스와의 전쟁(普佛戰爭 1870-1871)에서 승리하고 통일 독일을 달성했다.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으로서 유럽의 중심 국가로 두각을 드러내게 된 순간이었다. 프로이센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동 시장에서 노인들을 퇴출하고 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연금 지급 대상 연령은 65세로 설정했다. 당시 65세는 오늘날의 수명과 비교하면 꽤 높은 연령에 해당할 것이다. 당시 65세가 되어 연금 혜택을 받은 대상자가 얼마나 됐을까 싶다. 1950년 유엔에서도 노인 기준을 65세로 잡았다.


세계 주요 선진국의 경우 노인 연령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본은 2004년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했고, 미국은 1986년에 정년 자체를 폐지했다. 미국의 대학 교수들은 종신교수로 일한다. 피터 드러커(1909-2005)는 거의 100세가 될 때까지 대학에서 강의했다. 노벨상 수상자도 7-80대가 많다. 영국도 2010년 기본 퇴직연령(65세)을 폐지했다.


우리나라는 2019년 2월 대법원 판결에서 육체노동 가능 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조정했다. 1989년 12월(평균수명 71.2세) 55세에서 60세로 상향한 뒤 30년 만에 5년이 늘어났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사회현상의 변화에 더디게 반응한다.  


2015년 유엔은 연령 구분을 파격적으로 제안했다. 노인 연령을 80세로 상향 조정했다. 유엔이 제시한 새로운 연령 구분에 따르면 18~65세는 '청년(Youth)', 66~79세는  '중년(Middle)', 80세 이상부터 '노인(Old)'이고,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Longlived elderly)'이다. 유엔이 제시한 대안을 보면 현실적으로 적절한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100세를 보편적인 현상으로 기정 사실화한 뒤에 설계한 구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에이징 파워는 정신의학자이자 뇌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이시형 박사의 저술 '에이징 파워(Aging Power 2007)'에서 유래했다. 말 그대로 에이징 파워는 나이가 들수록 발휘되는 파워다. 이 파워의 주요소는 원숙미, 경륜, 지혜 등이다. 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에이징 파워가 생길까? 아닐 것이다. 원숙미, 경륜, 지혜는 인간성이 만들 수 있는 지고지선의 가치가 아니던가. 나는 에이징 파워의 원천은 '부단한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을 곧 삭비(數飛)다. 삭비는 마치 새가 날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 것이다. 새조차도 태어날 때부터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 먹어서 하는 학습이 진짜 학습이다. 보통 돌아가신 고인을 모시는 제사 때 쓰는 위패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 적는다. "배우는 학생으로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신령이시여 나타나서 자리에 임하소서." 4000년 전에 시작된 유교 사유 방식이고 의식이지만 현대 사회의 지향점을 알려준다. 서양에서는 칸트(1742-1804)에 이르러 '인간은 학습 동물이다'라는 명제가 등장한다. 동서양 모두 인간은 평생 배우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정의 내리고 있다. 평생학습자(lifelong learner).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우는 학생이다. 학습자로서 나이가 들다 보면 에이징 파워가 형성된다. 학습과 연령은 비례 관계를 만든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의 인간을 영어로 'late bloomer'라고 한다. 늦게 피는 이다. 사계절 중 늦가을이나 겨울에 피는 꽃을 관찰하고 그 향을 음미해보라. 일찍 피고 지는 꽃보다 더 향이 짙고 멀리 퍼져 나간다. 100세 시대에는 대기만성형의 레이트 블루머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롱런(long-run)의 전제는 롱뤈(long-learn) 해야 한다. 그렇게 롱뤈으로 만들어진 에이징 파워야말로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소프트 파워에 다름 아니다. 


이시형(2007). 에이징 파워. 리더스 북.

매일경제. 노인 기준 65세 시초는 1889년 獨 비스마르크… 유엔은 "80세부터 노인". 2019년 2월 26일 자.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2/11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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