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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mi OH Aug 10. 2024

가능성의 들장미

배움의 에피소드 1 

배우는 나도 처음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가르치는 것이 처음이셨다.

당신은 도가 통한 전문가였지만, 잘하기까지의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익혀야 하는 가를 헤매고 있던 나는 그가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지를 헤매고 있을 거라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를 어떻게든 요리해 달라. 


하고 무턱대로 자신을 맡겨놓은 딸이자 제자는 무겁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버지의 무게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그 때는 그저 내가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는 아버지가 답답했다. 당면한 관계에 대한 이해는 항상 늦고, 그래서 우리는 실수를 하고, 마음이 상한다.


처음 몇 달은 서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림을 먼저 그려보라 하셨지만, 그릴 수 있었을 리 만무하다.

아버지의 도안을 따라 그리며 시간을 보냈고, 나름의 보람은 있었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것이 었고, 진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고민스러웠다.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셨던 것 같다.


따라 그리는 것과 나의 패턴을 만들어 내는 것의 차이를 뼛속 깊이 경험하셨던 아버지셨다. 선생님의 문하에서 선생님이 그려주신 가이드에 따라 도안을 수정하는 작업만 해오다가 독립하고 처음 도안을 하며 느꼈던 막막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주어진 선을 수정하는 건 선수였지만, 새로운 선을 만들어 내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림을 만들어 내서 내일의 작업을 진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꼬물거리는 딸 둘과 알뜰살뜰 살림을 꾸리는 아내를 보며 느꼈을 가장으로서의 고통이 스물 몇 살의 그를 밤을 새고 또 새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낸 자신만의 필터를 그는 가지고 있다. 어떠한 사물을 도안화 해도, 자신만의 색이 물씬 묻어나고, 이름이 붙지 않아도 그의 작업은 누구의 것이라는 걸 말한다.


그렇게 무의미한 듯 유의미한 우리 둘의 시간은 어설피 흘러갔다.


하루는 여느 날과 같이 담배를 피우러 앞으로 나갔던 아버지가 들장미 한 가지를 꺾어 오셨다.

그리고 툭 던져놓고, 한번 그려봐라 하셨다.

지금 생각 해보면, 지나치게 복잡한 소재를 준비해 주신 게 아닌가 싶다. 그 복잡한 꽃송이라니.

한 두시간 쯤 흘렀을까, 다 그린 스케치북을 가지고 아버지께 내밀었다.

아주 거친 그림 이지만 그럴싸하게 장미의 외형은 묘사하고 있었다.

오돌토돌 장미 줄기, 날카롭게 뾰족 솟은 가시, 가시의 볼록한 라인, 꽃잎의 겹침 등 장미의 모양은 갖추고 있었다.


재능은 쥐똥 만큼 있다. 라고 항상 말씀 하시는데, 아마 그 그림을 그려낸 것에 대한 잔상이 있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만나면 아직도 그때 얘기를 한다.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림을 가르친 적도 없는데 신기하다 한마디씩 덧붙이신다.



조금의 가능성을 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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