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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래빗 Nov 22. 2018

도심 속 시간여행, 구 벨기에 영사관.

아름다움 뒤 잊혀진 동반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흥행으로 개화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아니, 그 시절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많았다. 독도에 대한 끊이지 않는 분쟁이 그렇고, 스포츠 경기 중 한일전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그러하다. 그러한 일제강점기의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던 건물이 있다.


 번화하고 혼잡한 사당역 유흥 지구 옆, 화려한 네온사인들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서양 건축물.


 붉은 벽돌과 푸른 지붕은 마치 서양 어딘가의 주택을 떠올리게 하고, 가을을 맞아 곱게 단풍이 든 나무들은 그 분위기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외딴섬처럼 서있는, 고풍스러운 서양 건축물이 바로 사적 254호인 구 벨기에 영사관이다.  미세먼지로 흐린 하늘, 오래되고 이국적인 건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마치 시간여행을 하러 가는 것만 같았다. 




 현재는 서울시림 미술관 남서울 분관인 구 벨기에 영사관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가진 수많은 문화재 중 하 나이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은 우리나라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세계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립국을 선택했다. 그리고 중립국으로 가는 길에 동반자로 삼은 나라가 벨기에였다. 벨기에 영사관이 탄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중립국 정책은 일본에 의해 무력으로 짓밟혔고,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로 중립국화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벨기에의 존재는 우리의 근대사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구 벨기에 영사관은 1905년 준공되었다가 1918년 폐쇄되었으며, 그 이후 요코하마 생명보험과 기생 조합인 본권 번을 거쳐 1944년 일본 해군무관부 건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해군 군악 학교, 공군본부, 해군 헌병 감 실을 거쳐 1968년 구 한국 상업은행의 방계기업인 대창흥업에 불하되었으나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방치되었다가 1977년 사적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준공 당시에는 중구 회현동에 세워졌으나 1982년에 현재 위치인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전되어 복원되었다.


넓지 않은 정원이지만 구석구석 가을의 정취를 담뿍 담고있다.


구 벨기에 영사관은 희소한 근대문화유산이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여전히 역사 뒤에 가려진 존재였다. 이에 서울시립미술관은 2015년, SeMA 근현대사 프로젝트로 <미술관이 된 구 벨기에 영사관> 전과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 구 벨기에 영사관의 가치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결과로 기존 전시를 재구성하여 2018년 현재까지 상설전시를 진행 중이다. 




전시는 구 벨기에 영사관의 역사와 남서울미술관의 건축에 관한 사진과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목재 모형이 어쩐지 색이 바랜 옛 사진에서 튀어나온 느낌이다.


사진으로는 찍지 못했지만, 옆쪽에는 벽난로도 재현이 되어 있다.

이축되긴 했지만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티가 많이 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석고 기둥 일부와 타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축 공사 이후 미술관에 남겨져 있던 건축자재라고.


기둥 아래 타일이 미술관에 남겨져 있던 타일.


사실은 건물이 예뻐서 오게 되었는데, 구 벨기에 영사관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납득이 간다. 


나무 계단과 샹들리에. 


창밖으로 보이는 단풍이 새삼 예쁘다.

날은 흐리고 쌀쌀했지만 어쩐지 이 안은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건물 내부에서는 구 벨기에 영사관에 대한 전시와 더불어 예술가 길드의 전시도 진행 중이었다.

크지 않은 건물의 각각의 전시실에는 각각의 주제가 담겨있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특히나 더 재밌었을 듯하다 :)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었던 도자기 작품.


구 벨기에 영사관을 떠나며


 1977년, 한국은행, 서울역 등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 우리 근대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근대유산이라는 이유로 일제 식민지배의 증거물과 함께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무지로 구 벨기에 영사관은 한강 이남 멀리, 남현동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벨기에 영사관의 가치는 아름다운 외관보다도, '중립국화'를 매개로 한 대한제국과 벨기에의 외교적 연대에 있다. 대한제국 선포 120년을 맞이하는 올해,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제국의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고 역사적 진실 또한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구 벨기에 영사관도 그중 하나다.


 '우리가 잊고 사는, 기억과 역사의 뒤편으로 멀어져 버린 또 다른 역사는 없을까?'


 나는 구 벨기에 영사관을 뒤로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삶 하나하나가 역사일 텐데, 무심코 잊고 지나가는 것은 없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미래에 다녀온 사람처럼.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구 벨기에 영사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 (남현동)

입장료 무료


https://iplay-sto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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