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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Mar 17. 2024

나와의 화해를 신청하다


'나와 화해해야 겠다.'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내가 산다.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싶은 나, 활기찬 나, 무기력한 나, 멈춰있고 싶은 나, 뛰고 싶은 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는 아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고자 할 때면 으레 방해하는 것들이 등장한다. 

내일 마감인데 하염없이 SNS만 하고 있거나 유튜브 영상만 보고 있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뭔가를 기대하거나 찾는 것도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초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보고만 있다. 그러다가 더는 미룰 수가 없을 때가 오면 마지못해 일어나 억지로 마감을 처리한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면서 '왜 나는 나를 방해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자신이 나를 방해한다라... 내가 나의 적이 된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더 잘살고 싶어한다.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더 풍요롭게, 더 여유롭게, 더 원만하게 살고 싶어한다. 소중한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고 싶어한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바란다. 하고 싶은 것을 사고 누릴 수 있을만큼 돈을 벌고 싶어하고, 하는 일에 인정받고 싶어한다. 나도 그러하다. 더 인정받고 싶고, 더 부자가 되고 싶고, 더 행복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다. 머리로는 말이다. 머리로 아는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려 하다보면 불쑥불쑥 방해하는 생각들이 찾아온다. 가끔은 행동으로도 찾아온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바라던 모습과 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부모님이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절충선을 제안해왔다. 종이에 물감이 번지는 것이 좋아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림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걱정을 듣고는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꿨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나를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초등학교 교사를 하라던 어머니 말씀에 그저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일을 선택했었다. 늘 마음에서 원하는 것과 조금은 비껴난 선택들을 해 왔다. 그렇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도대체 누구와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일까? 


적당한 타협을 해 오던 나의 절충안을 부모님은 "네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줬잖아"의 근거가 되었다. 나대로 그 말에 발끈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늘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 이 갈증은 부모님에게도 내게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강의를 시작하고 그 동안 접하지 못했떤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강의를 듣게 되었다. 점점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했지만 외면했다. 그 동안의 내 노력들이 모두 헛된 것이 되버릴테니까. 그렇게 또 몇년이 지나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하염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일을 미루는 때가 많아졌다. 일이 많은 것은 감사한 한편으론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왔다. 

'잘 해내야 해.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돼. 성과를 내야해'

이런 생각들이 점점 더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하고자 했으나 하지 않는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수년전 느꼈던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즈음 만난 이들의 영향으로 '잘못이 아닌 최선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었다. 명백한 잘못이 있으니까. 

나를 돌보지 않은 잘못

진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잘못

잘못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잘못

바꾸고 싶었으면서도 방법을 찾지 않았던 잘못

과거를 통째로 잘못된 삶이었고 시간이었다고 여길 필요는 없었다. 그때의 내가 아는 방법으로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다만, 더 나은 최선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제서야 내 안에 토라진 내가 보였다.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으니, 무시하고 외면하니 토라진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하고자 하는 일들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었다. 그런 나와 화해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와의 화해를 신청했고, 지금도 나는 아직 나와 화해하는 중이다. 여전히 한번씩 어깃장을 놓는 내가 있다. 그런 나를 타박하지도 거부하지도 않고 그대로 바라보기만 해도 잠잠해 진다. 그리고 그 어깃장 이면의 감정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때로는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감정들, 그 감정 기저에는 누구보다도 인정받고 잘 해내고 싶은 열망이 있음을 이제는 알아차릴 수 있다. 


외면했던 시간이 길었던만큼 하루아침에 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한번씩 불쑥불쑥 나를 방해하는 내가 있겠지. 그런 나도 나니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아직도 나는 나와 화해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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