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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Jan 13. 2024

우선 전원부터 켜게 해 주세요.

우리는 누구나 충전기가 필요하다. 


"운동 습관을 들이려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냥 헬스장을 가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복부터 입고 그냥 나가면 운동은 하게 되어 있어요"



한동안 꾸준한 운동습관을 가져보려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하면 운동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혹은 운동과 관련된 영상이나 습관과 관련된 자기계발서를 보면 저런 말들이 종종 등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생각이 많을 수록 행동은 더뎌지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헬스장에 가는 것도, 운동복을 입는 것도,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이전 과정에 대해서는 다들 "그냥 하라"고만 한다. 

"다들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라고들 한다. 


'정말 모두 그런가?'

'나만 아닌건가?'

굉장히 혼란스러웠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만 하는 작은 행동들이 힘들게 느껴져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 같았다. 



남들과 같이 잘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신을 미워했었다.

자신을 사랑하라고들 하는데, 도무지 그 방법을 몰라 심란하고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해야할 일을 제외하고 혼자만의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다행히 일이 많았기에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면 자책도 실망도 더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의 성취에서 오는 기쁨과 보람이 그 감정들을 대신해 주었으니까.


그렇다고 심란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

불쑥불쑥 혼자 있을 때마다 멍하니 있을 때마다 이 마음들은 다시금 나를 덮쳐왔다. 

그렇게 내게 우울감과 번아웃이 찾아왔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을 하거나 약속이 있어 나갔다 오면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정리가 되지 않은 집안 모습이 꼭 내 마음같아서 집에 있는 시간은 대부분 잠을 자는 데 써버렸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여력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운동복을 꺼내기 위해 팔을 뻗거나 집을 나서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힘겹다. 

사실 잠에서 깨기 위해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것조차도 힘겨운 시기였다. 

이 시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 시간이 계속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한 없이 슬픈 시기였다. 

그걸 그 때는 몰랐었다. 

그래서 더 스스로에게 화가 났었는지도 모르겠다. 




.

.

.




그러던 어느 날, 

그냥 정말 갑자기 문득이었다.

강의 자료를 찾기 위해 찾아간 서점에서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고, 

그 책을 그냥 집어들었으며, 그냥 읽었을 뿐이었다.  

(이상하게 하루만에 다 읽혀버렸다)

그냥 보이는 영상을 시청했고, 주변 사람들을 따라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정말 어느날 갑자기 문득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것저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도와 성공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하나가 시작되니 더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어졌다. 

미뤄뒀던 집안 정리를 하고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책임감도, 거부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하게 되었다. 



왜?

갑자기?

어째서?

이런 의문들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애쓸 때는 안되던 것들이 갑자기 되게 된 이유가 뭘까.




내가 찾은 답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애써도 되지 않던 그 때 난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 했었다. 

온전한 내 공간, 안전공간인 집에서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휴대폰을 무음으로 던져 놓은 채 잠만 잤다.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하루 20시간 가까이 그렇게 잠만 잤었다. 

아무리 바빠도 한달에 하루는 꼭 그렇게 세상과 단절한 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지금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넌 그래도 돼. 그럴자격이 있어. 미안해하지도 말고, 자책하지도 말고 지금은 그냥 이렇게 있자. 괜찮아 정말 괜찮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다시 밀려드는 자책과 실망감에 지금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저 본능이었다고 생가한다.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내 무의식이 작동한 거라고 말이다. 



물론 그 시간으로 인해 누군가는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답답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고, 그 사이 내 몫이 될뻔 했던 일정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한달에 하루 정도는 내가 없다고 당장 문제가 되는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미안해지는 상황은 생길 수 있지만...

그럴 때는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용서받으면 된다. 

참 감사하게도, 이것도 생각보다 사람들은 잘 이해해주었고, 용서해 주었기에 

'아, 세상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관대하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자고 있어난 이부자리를 정돈하는 것

끼니에 맞춰 식사를 챙겨 먹는 것

먹고 난 뒤 바로 설거지를 하는 것

외출 후 옷을 잘 정돈해 두는 것

버릴 것들은 분류해서 버릴 곳에 제때 버리는 것

하루에 2리터 정도의 물을 마시거나 영양제를 챙겨먹는 것

10분이라도 걷거나 뛰는 것

한달에 책을 1권이상 읽는 것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또 누군가에게는 정말 쉬운 행동들이라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안한다고? 못한다고?"

라며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안 될수도 있다. 

못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럴 때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은 고사하고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것조차도 버거운 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한달에 1권은 커녕 하루 한 줄도 읽기 어려울 수도 있고, 하루 10분은 커녕 현관문을 나서기 위해 신발을 신는 것도 버거울 수 있으며, 물 한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 상황을 마주하는 때였으니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런 때를 만나게 되면 알려주고 싶다.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

.

.




방전된 휴대전화를 부여잡고 왜 작동하지 않느냐고 타박해 봐야 소용없다.

화만 나고 짜증만 더해질 뿐이다. 

그럴 때는 충전기에 꽂아두고 단 1%라도 충전이 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답이 없다. 

단 1%라도 충전이 되어야 전원이 켜지고, 그래야 비로소 하나씩 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원이 켜졌다고 방심하면 안된다. 

100%가 되기 전까지는 아니, 적어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양이 충전되기 전까지는 충전기를 꽂아 두어야 한다. 


처음 1% 충전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어쩔 수 없는 내 상태를 인정하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서 내 충전기는 내 상태 인정과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괜찮다"라는 말이었다. 



아직 내 배터리는 100%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충전기를 꽂고 있다. 

잠시 나를 사용하고 나서 충전기를 찾아 꽂아 둔다. 

지금 나의 충전기는 책과 글, 그리고 사람이다. 

이들과 함께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 더 정확히는 더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나의 충전기이다. 이걸 너무 늦게 찾은 것 같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20대 혹은 30대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라고 물어본다면 

"너에게는 충전기가 필요해! 너만의 충전기를 찾아!"

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충전기가 필요하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한다. 





당신만의 충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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