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하유미



개를 무서워하게 된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어릴 때 살았던 동네 골목 입구에 개를 기르는 집이 있었다. 우리 집이 골목 안에 있어서 그 집을 지나치지 않고 다닐 방도가 없었다. 그 집 대문은 보통 닫혀있어서 개를 직접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앙칼지고 끈질기게 들려오던 개소리(?)만은 아직도 기억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겁쟁이였던 나는 개 짖는 소리만 들어도 꼭 개가 달려 나와 나를 물 것 같은 상상이 돼 겁을 잔뜩 먹었다. 혼자 하교할 때에는 항상 길가에서 돌멩이를 하나 주워 들고 그 집 앞을 살금살금 지나갔다. 돌멩이는 나를 지키는 유일한 무기였다. 작은 돌멩이는 내게 토르의 망치가 되기도 어떨땐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되기도 했다.

개는 겁먹은 내 발걸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당장이라도 목줄을 끊고 달려들 듯이 짖어댔는데 내가 던진 돌멩이가 철 대문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면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 틈을 타 온 힘을 다해 집으로 내달렸다. 등 뒤로는 약이 올라 더 미친 듯이 날뛰는 개소리가 들렸다.

팽팽한 신경전이 날마다 이어지던 어느 날, 그날도 골목 입구에서 돌멩이 하나를 암팡지게 손에 움켜쥐고 적진을 지나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담 너머로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사나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먼 옛날 돌팔매질 한번에 자신의 운명을 내걸었던 다윗의 심정으로 온 정신을 집중해서 힘껏 철문을 향해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숨을 죽이며 개소리가 멎기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도 소리가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크고 가까이 들려왔다. 두려움에 발바닥이 얼어붙었다. 몇 달간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정전 협정이 막 깨지려는 순간이었다. 개는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후의 일은 끊어진 필름처럼 몇몇 장면만 기억난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때마다 옆에서 같이 뛰던 친구들의 등을 모두 구경한 뒤에야 결승선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 뜀박질 수준으로 그날 개한테 붙잡히지 않았던 건 지금 생각해봐도 경이로운 일이다. 집까지 내가 뛴 거리가 불과 십여 미터에 불과한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만화에서 달릴 때 세차게 회전하는 발 모양을 그려 넣는 것을 그때 이해했다. 내 다리는 순서대로 움직이며 뛰는 동작을 완성하지 않았다. 발이 땅에 닿는 걸 느끼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날아간 셈이다.

가까스로 집안으로 피하자 개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밖에서 기를 쓰고 짖어댔다. 그동안 제 집 대문에 날아들었던 돌팔매에 대한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이.

내 고함소리를 듣고 쫓아 나온 엄마 얼굴을 기억한다. 그 뒤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중에 엄마에게 듣기로 내가 경기를 일으켜 손발을 주무르고 참기름을 먹이는 희한한 민간요법까지 써가며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엄마가 그 집 아주머니와 한바탕 언쟁을 했는데 개를 잘 묶어 놓으라는 엄마의 일침에 개 주인은 매일 돌팔매질을 해대니 개로서도 앙심을 품지 않겠냐고 응수해 엄마의 항의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런 내막을 아는 건지 승리를 맛 본 개는 사기가 올라 그 뒤로 더욱 사납게 짖어댔다. 얼마 후 우리가 이사를 가 개와의 싸움은 한 번 반전의 기회도 없이 나의 영원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 뒤로 개를 더욱 무서워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리 작아도 아무리 귀염을 떨어도 개는 개였다. 세상에 모든 짖는 개들은 전부 나의 적이었다.

그렇게 개를 적대시하던 내가 요즘 강아지를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얼마 전부터는 한 술 더 떠서 은퇴하고 나면 시골에 주택 짓고 개 한 마리 기르며 살자는 얘기를 남편과 진지하게 나누는 지경에 이르렀다.

옛이야기를 길게 꺼내 든 것은 안타깝게도 내가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산책길에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남편과 둘이서 가볍게 걸으려고 공원에 갔다. 우리 저만치 앞에서 주인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요즘은 개 에티켓이 일반화돼 목줄을 매지 않은 개를 산책길에 만날 일이 잘 없는데 도심 외곽에 위치한 이 동네에서는 간간히 이런 경우를 목격한다.

이제는 공포심을 이길 정도의 나이 값은 하는 터라 ‘목줄을 좀 매지’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비켜가려고 했는데 맞은편에서 또 다른 목줄을 매지 않은 개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개 두 마리는 순식간에 서로의 꽁무니를 향해 달려들었다. 노는 건지 싸우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맹렬히 으르렁거렸데 개 주인들은 멀찍이서 팔짱을 끼고 '개들은 저러면서 크는 거지.'라는 눈빛으로 자기 새끼들의 사회활동을 은근히 방치하며 구경 중이었다. 남편은 앞서 개를 피해 그 구간을 통과해 가버렸고 나는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옛날 개에게 쫓겼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어린 나를 지켜주던 돌멩이는 지금 내 손에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라도 스스로를 어떻게든 보호해야 했다. 나는 힘껏 말 팔매질을 했다.

“개 목줄을 좀 매 주세요!”

개 주인들은 그제야 각자 개를 떼어 놓으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개 줄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기 새끼들의 자유분방한 사회활동이 방해받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귀여운 강아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덩치를 고려하면 내가 생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기억 회로는 ‘짖는 개’를 입력하면 ‘물린다’가 결과 값으로 나오게 프로그래밍돼있다. 개든 강아지든 예외가 없다.

오랜만에 개에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곳을 벗어났다. 돌멩이보다 쓸모없는 남편과 함께.

아이가 어렸을 적에 공공장소에서 행여 폐를 끼칠까 봐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봐가며 키웠었다. 그것이 아이가 사회를 배우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회에서 내 새끼의 사회성은 주인이 길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내 새끼가 남의 집 귀한 새끼를 무는 큰일을 당하고 난 뒤 후회하기 싫다면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혼만 길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