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날 남편과 둘이 갓바위에 올랐다.
“괜찮겠어?”
“어휴, 당연하지.”
몇 달 전 친구와 함께 갔다가 호되게 고생한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쳤다. 물론 또 그럴 줄 모르고 한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둘러보니 휴게소 앞에 등산로 입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보였다. 무료 셔틀버스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글자 아래 깨알만 한 글씨로 ‘카페에서 커피를 드신 분에 한해서 ‘라고 적혀있었다. 배낭에 집에서 타 온 커피가 들어 있는 관계로 우리는 셔틀버스를 포기하고 갓바위 초입까지 걷기로 했다.
차로 산 중턱까지 올라온 셈이니 첫걸음부터 오르막의 시작이었다. 도로가 잘 정비돼 있은들 오르막이 평지가 되는 요술이 일어날 리 만무하니 몇 걸음 걷지 않아 벌써 다리가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땀을 쏟기 시작한 남편 옆으로 어디까지나 무료인 셔틀버스가 약을 올리듯 쌩하니 지나갔다. 그나마 도로 옆으로 이어진 계곡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가 걷는 우리를 달래주었다.
선본사 일주문에 도착해 한숨 돌리고 본격적인 등반을(내 생각에) 시작했다.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절벽 같은 돌계단이 끝 모르고 이어져 있었다. 대구 방향에서 오르면 더 가파르고 계단 수도 많아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경산 쪽으로 우회를 했는데도 그렇다.
예전에 왔을 때 가뿐하게 올랐었다고 호언하던 남편도 그 예전이란 게 너무 오래되었던 모양인지 슬며시 입이 벌어졌다.
“이렇게 가팔랐었나?”
“여보 이제 시작이야.”
우리는 감탄과 응원을 서로 나누며, 해발 850m에 자리하고 있는 갓 쓴 부처를 만나려면 통과의례로 거쳐야 하는 840여 개의 계단에 첫발을 디뎠다.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영험하기로 유명해 특히 수능이 가까워지면 간절함을 품은 사람들로 발 디딜 데가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오늘 몸소 겪어보니 어쩌면 그 전설은 풍문이 아니라 사실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의 이유는 돌 판을 머리에 얹고 있는 신비로운 부처의 힘을 믿어서도 아니고 동전을 다닥다닥 붙인 채 위용을 뽐내고 있는 바위의 기운을 믿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사람의 의지, 근육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고통을 이겨내며 한 계단씩 올라 끝내 840개의 고행을 완성해내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에의 믿음이었다. (대구 방면 계단 수는 자그마치 1365개)
그러나 840번의 흔들림과 시험 속에서 의지를 끝까지 지켜내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기다시피 올라 마침내 마지막 계단을 밟고 부처의 온화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소원은 내 안에서 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의지로 무엇인들 못하랴.
의지의 고비는 끊임없이 찾아왔다. 계단을 절반쯤 오르자 요동치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 되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저번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와 더 이상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 뒤로는 육체와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갑작스러운 고강도 운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근육과의 싸움,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계속되는 어지러움과의 싸움, 부정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뛰는 심장과의 싸움이 계단마다 이어졌다.
몇 계단 오르고 주저앉기를 여러 번, 이제 고개만 들어도 바위가 보일 정도로 다다라 한 모퉁이만 더 돌면 되는데 몸 또한 한계에 다다랐다. 앉아 있어도 좀체 숨은 진정되지 않고 속은 메스껍다 못해 대장까지 자극을 받는지 위는 위대로 대장은 대장대로 내용물을 쏟을 형국에 이르렀다. 다행히 화장실이 코앞에 있었지만 불행인 것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일어나 걸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불상사가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남편도 안타깝게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화장실까지 갈 엄두가 안나 잔뜩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으니 정신이 까무룩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귓가에 목탁과 어우러진 독경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높은 산바람이 시원하게 목덜미를 쓸어주는 느낌도 들었다. 아득하던 정신이 차차 맑아지며 그제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당신 얼굴이 하얗게 질렸었어.”
“이제 좀 괜찮아졌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을 안심시키며 다시 일어섰지만 생각만치 몸은 회복되지 않았던지 한걸음 뗄 때마다 걸음마를 막 뗀 아이처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남편이 내민 손을 잡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아서 대신 난간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만일을 대비한 휴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한 발 한 발마다 내 몸속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온갖 분비물들과 도박을 하는 그 순간에, 오직 내 앞에 놓인 돌계단 말고는 경치고 산세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왜 그런 생각이 났을까.
그때 난데없이 니체가 떠올랐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라는 구절이.
‘인간의 위대함은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래. 지금 나는 이 계단을 통과해 초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야. 오를 수 있어. 주저앉지 않을 거야. 위버멘쉬이이!’
독경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손에 쥔 휴지를 더욱 쥐어짰다.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던 840번째 계단을 마침내 밟고 부처 앞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이 고행을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내 안에서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이 서로 어우러져 초인의 경지에 오르는 황홀경을 느꼈다.
니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생리현상을 이겨내는데 그를 써먹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배꼽을 잡기를 넘어 분노를 할지도 모르겠다.
또 갓바위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혀를 찰 것이다. 내가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며 끝끝내 초인에 도달하기 위해 오른 그 길이 불과 200m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테니 말이다.
왕복 30분이면 충분하다고 큰소리치는 이에게 보란 듯이 우리는 장장 한 시간 넘게 걸려서야 계단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무료인 셔틀버스 정류장 앞 휴게소에 어묵을 파는 집이 있었다. 도대체 거긴 언제 봐 두었는지 남편 손에 끌려가 남편이 쥐어주는 대로 어묵 꼬치를 한 개 집어 들었다. 지칠 대로 지쳐 입맛을 잃은 나와는 다르게 입에 한가득 어묵을 베어 문 남편은 뭐 좀 먹으니까 살 것 같다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을 뱉었다.
“근데 말이야, 꼭 커피를 사야 셔틀을 태워주나? 어묵으로는 안 되나?”
두 명이서 어묵을 몇 개를 먹으면 셔틀을 탈 수 있을까 하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르막과는 다르게 내리막길은 짧지만 강력하게 무릎 관절을 박살 내주었다. 차에 오르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 여기 처음 와보는 것 같아. 예전에 가 본 데는 동화사 절이었나 봐.”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남편의 고백 따위는 흘려들으며 초인적인 정신승리와는 별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돌아오는 차에 내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