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버스는 어디서 탈 수 있나요?

by 하유미




친구가 가출을 했다. 오전에 빨래며 설거지 따위 집안일을 대충 끝내고 같이 커피나 한 잔 할까 싶어 연락을 했다가 알게 됐다. 어제부터 홀로 캠핑장에서 차박 중이라고 했다.


“올래?”

친구의 문자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팥죽 끓어오르듯이 부글 보글 댔다. 답장 보낼 겨를도 없이 가는 차편부터 검색을 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길 찾기로 검색을 했더니 가장 빠른 방법으로 기차를 이용하라고 돼있었다.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기차를 즉시 예매를 하고 세탁이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던져 넣고 옷을 갈아입는 중에 벌써 콜택시가 집 앞에 도착을 했다는 알림이 떴다. 뭐라도 가져갈 게 없나 싶어 냉장고를 열었더니 남편이 사놓은 한우 꽃 갈빗살 한 팩이 눈에 띄었다. 급한 마음에 얼음팩도 못 챙기고 종이가방에 대충 고기를 담아 집을 나왔다.

평소 길눈이 어둡다는 고백을 전에도 한 적이 있다. 그러니 기차를 타러 가서야 내가 타는 기차가 상행선인 것을 알았다고 해서 놀라지 말길 바란다.

결혼한 뒤로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탔다. 무려 14년 만이다. 서울행 무궁화호는 혼자 기차를 타는 설렘에 들뜬 승객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 번째 역에 짐 부리듯이 내려놓고 무심히 떠났다. 검색한 바로는 이제 약목역 건너편에서 111번 버스를 타면 30분 내로 목적지에 도착할 터였다. 간이역 같은 작은 역을 빠져나와 길을 건넜다.


그때부터 어딘가 이상했다. 역 앞은 도로가 한 길이었는데 건너편은 길이 세 갈래였다. 세 갈래길 중 어디에도 버스 정류장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온 몇몇의 사람들은 내가 이쪽저쪽 고개 한 번 돌리는 사이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나 혼자 세 갈래길 한가운데 오도카니 섬처럼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중 가장 버스가 다닐만해 보이는 길을 골라 무작정 걸었다. 골목 입구에 낡은 입간판이 서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11번 버스노선표였다. 검색으로는 분명히 111번 버스를 타라고 돼있었는데 그 정류장에는 오직 한 노선 11번 버스뿐이었다. 111번이나 11번이나 1자 한 개 차이니 노선도 비슷하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요즘도 이런 입간판만 덜렁 세워져 있는 정류장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후 십 여분이 흐를 동안 아무도 버스를 타러 오지 않았다. 사늘한 기분이 들어 다시 휴대폰을 켜고 칠곡 시내버스 노선을 검색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노선도 달랑 하나뿐인 이 소중한 11번 버스를 왜 아무도 타러 오지 않는 것인지, 그 소중하신 분은 언제쯤 오는 것인지. 홈페이지에 11번 버스는 1일 1회 운행이라고 버젓이 적혀있었다.

하루 중 언제 올지 알지도 못하는 데다가 딱 한 번 지나가는 버스를 시간에 맞춰 타는 것은 로또를 맞을 행운과 맞먹는 것이다.

그제야 내가 고른 길이 꽝인 복권인 것을 깨달았다. 허탈함과 막막함에 빠져 멍하니 서있는데 반대쪽 골목에서 버스 한 대가 유유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역에서 부려진지 20여 분 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발견한 기쁨에 무작정 달려갔다. 마침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그것은 멀쩡히 운행되고 있는 111번 버스였다. 황당함에 갈 곳 잃은 눈길이 곁눈질하던 기사님 눈과 마주쳤다. 눈길이 부딪히기 무섭게 기사님은 내게 손을 내저었다. 버스정류장이 아니니 타지 말라는 신호였다. 내가 궁금한 건 그 버스정류장이란 곳이 도대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일단 버스가 나온 골목을 거슬러 올라 걸었다. 아까 길보다는 시내인 듯 느껴졌으나 정류장도 길을 물어볼 행인 한 명도 안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여기도 콜택시가 올까를 고민하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걷고 있었는데 저만치 편의점이 보였다. 뛸 듯이 반갑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마침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서 점처럼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발견했다.

그래서 내가 버스를 타는 데 성공했냐면, 아니다. 안타깝지만 결국 택시를 다. 그 사이 어렵사리 찾은 111번 버스 정류장에서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탈 뻔한 일이며 오지 않는 다음번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택시를 찾아 나선 일, 승객에게 들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꼭꼭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찾아낸 이야기 등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진짜 올 줄이야.”

제법 프로 캠핑족같이 후줄근한 차림을 한 친구가 활짝 웃었다. 친구를 보자마자 버스 찾아 삼만리를 헤맨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나한테 손을 휘저은 버스기사한테 묻고 싶은 말이 그거였다고. 도대체 그놈의 버스를 어디 가야 탈 수 있냐고.”

친구는 허풍선이 같은 나의 길헤맨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어주었다.

우리는 소금도 없이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재료를 막 때려 넣은 밀푀유 국물에 맥주 한 캔씩을 나눠 마셨다.

내 맘도 몰라주는 자식이며 남편은 지금 이 순간은 남처럼 내버려 두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근데 너 정말 멋있다.”

“뭐가?”

“이렇게 가출하는 거.”

“그럼 앞으로 너도 가출하고 싶을 때 나 써먹어.”

“알았어.”

하루 이틀 더 있다가 귀가할 거라는 친구를 뒤로하고 돌아왔다. 나의 가출을 응원해주고 지원해주려는 친구가 있어 돌아오는 길이 든든했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집으로 직행하는 급행 1번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해 헤매다 포기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집에 도착한 이야기는 좀 식상할 듯 하니 그만하겠다.

중간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말로도 부인 걱정은 하지 않는 아빠를 둔 덕분에 엄마 걱정을 늘 말로만 해도 돋보이는 아이에게서 말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으니까 나름 걱정이 됐단다.

"혹시 장기밀매 같은데 끌려간 거 아니지. 그럼 됐어. 중년에게는 혼자만의 그런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 즐기다 와."

장기밀매와 중년의 시간이라. 너무 공통분모가 없는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아이 말솜씨에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 많은 시간을 길에서 헤매었지만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좀 오래 걸리고 돌아갔지만 결국 목적지까지 잘 도착했으니까.

어쩌면 길을 헤매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를 찾아가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풋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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