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야,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사촌동생의 유골함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
사촌동생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는 동생의 느닷없는 전화에 동생도 나도 사망이라는 단어 앞에 숨을 죽였다. 짧은 감탄사 밖에는 내가 알고 있던 수많은 말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직장에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한 동생이 차를 몰고 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막 차려진 빈소는 정적만 흘렀다. 어떤 죽음도 쉬운 죽음이란 없겠지만 우리 가족 중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문상객들도 인사를 받는 우리도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젊은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고를 수 있는 말이라곤 몇 마디 없었기 때문이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남편에게 아이 등교를 부탁하고 발인 날까지 장례식장에 머물렀다.
가족 모두 장례식장에 한 자리씩 지키고 앉아 있었다. 때가 되면 모여서 밥도 먹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누군가 옛날이야기라도 꺼내면 다 같이 한 마디씩 거들며 웃기도 하고 그러다 우리가 거기 모인 이유를 떠올리면 눈물을 훔쳤다.
나는 욱여넣어서라도 밥을 먹고 정신을 놓지 않고 버텨주는 고모가 고마웠다.
이튿날 밤, 새벽에 뒤척이다 눈을 뜨니 잠깐 눈을 붙이는 것 같던 고모가 덩그러니 일어나 앉아있었다. 그 옆에서 엄마는 말없이 고모의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분향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물끄러미 둘을 바라보았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들은 손으로 등으로 육체를 비비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고 싶어 했다.
천사는 커다란 양 날개를 갖고 있었다
이 밤 한쪽 날개를 잃었다
한 날개만으로 날 수 없다
이제 천사는 영원히 날 수 없다
발인 날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것을 보자 저 사각 나무통 안에 태호의 몸이 누워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실감이 났다. 태호는 고인이 된 것이다. 우리를 이승에 남겨두고 저승으로 홀연히 가버렸다. 무엇이 그 경계를 넘게 했을까.
태호가 죽은 것도 내가 살아 있는 것도 그저 우연일 뿐이다 생각하니 삶의 비정함에 온 몸이 떨려왔다. 본래 삶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것인데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처럼 느껴졌다. 그런 위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산다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일까.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 안에 관세음보살을 찾는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흘렀다.
화장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제를 올렸다. 차례로 절을 하고 마지막으로 태호의 동생이 장례지도사의 말을 따라 외쳤다.
“형님, 집에 불 들어갑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훨훨 가시는 길 편히 가십시오.”
불구덩이는 관을 태우고 태호의 살을 태우고 하얀 뼛가루만 남겼다. 유골함을 만져보니 뜨거웠다. 고인의 마지막 열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유골함이 채 식기도 전에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으로 장례식이 끝이 났다.
산 자의 세상에서 죽음에 쓰는 시간은 야박했다.
절에 49제를 올려놓고 돌아왔다. 태호의 혼은 어디에 있을까. 육신이 탈 때 같이 태워졌을까, 유리벽으로 봉인된 유골함 안에 있을까 아니면 혼백에 깃들어 49일 동안 비구의 배웅을 받는 것일까.
사실 어릴 때 같이 놀았던 기억뿐이지 크고 나서는 거의 안 만나고 살았다. 태호가 살아 있었어도 남은 평생 몇 번이나 더 만났을까. 그러니 태호가 어딘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괜찮을 테다.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만 빼면.
만날 수 있을 때 한 번 더 볼 걸, 좀 더 다정한 누나였을 걸 하는 쓸모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언젠가 우리 모두 가야 할 곳으로 태호가 먼저 가버려 우리는 남겨진 자들이 되었다. 남겨진 자들은 미안하다. 그러니 엄마도 태호의 마지막 온기를 끌어안고 사랑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태호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남은 삶 동안 고모의 아픔을 얼마쯤 위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