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을 바라는 자 양심의 무게를 견뎌라
2016. 11. 04
뭐가 문제야?
아파트 마당에서 오천 원을 주웠다.
아싸~하며 줍기엔 큰돈이고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두고 가자니 발걸음이 떼지 질(!) 않고 어쩔 줄 몰라 망설이다가 결국 관리실에 갖다 줘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민기 군이 가져가자고 조른다.
"오천 원이면 너무 큰돈이야. 천 원짜리 정도만 돼도 주워가겠다만..."
그러자 아주 신박한 논리를 펴는 민기 군.
"엄마 그럼 처음에 천 원을 주웠다고 생각해봐. 가다가 또 천 원을 줍고 또 가다가 천 원을 줍고... 이렇게 다섯 번 주웠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
어린이라면 응당 경찰서에 갖다 주자고 할 줄 알았더니.
근데 왠지 점점 설득이 되는 기분이랄까.
2020. 01. 21
요행을 바라는 자, 양심의 무게를 견뎌라.
얼마 전 횡단보도 앞에서 금목걸이를 주운 적이 있다. 아싸~하며 줍기엔 너무 고가이고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두고 가자니 발걸음이 떼지 질(!) 않아 동행인과 둘이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맸었다.
같이 있던 지인이 마침 금붙이에 관해 해박했는데 자신이 보기에 30만 원짜리는 족히 돼 보인다고 감정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더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횡단보도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뀔 동안 죽치고 서서 목걸이를 처리할 방도를 궁리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1. 바로 앞 커피숍에 갖다 준다.(주인이 커피숍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소용없는 짓이다.)
2. 경찰서에 갖다 준다.(주인이 경찰서로 가보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짓이다.)
3. 두고 간다.(다음 발견자에게 쥐어주는 짓이다.)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아도 주인 손에 다시 들어갈 확률은 희박했다.
우리는 서로 그 뜨거운 감자를 가져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급기야 나중에는 목걸이를 발견한 내 눈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때 우리에게 절실한 건 30만 원짜리 물건을 주워가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정당한 논리였다.
3천 원이었으면. 3백만 원이었으면. 이런 생고문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애매하게 30만 원짜리 금붙이로 신이 나를 시험하는구나. 쩨쩨하게.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몇 분 동안 내 양심은 널을 뛰었다.
회의적인 토론 끝에 우리가 겨우 한 짓이란, 주인 눈에 잘 띄라고 횡단보도 앞 보행자 안전장치인 기둥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온 것이다.(그 신이란 작자에게 다음 발견자가 주인이 되게 해 달라고 빌면서 도망쳐왔다.)
아, 그때 우리 집 판관 포청천이 있었으면 기적의 논리로 우리를 그 시련에서 한방에 구원해줬을 텐데.
"엄마 그럼 처음에 목걸이 중 한 알을 주웠다고 생각해봐. 가다가 또 한 알을 줍고 또 가다가 한 알을 줍고... 이렇게 100알쯤 주웠다고 생각해. 뭐가 문제야?"
그래 아들아, 줏대 없이 물질의 가치에 비례하는 내 양심이 문제구나.
나처럼 간이 생기다 만 사람은 돈다발이 떨어져 있대도 안 쳐다보는 게 상책이겠다 싶었다.(물론 이런 경우에는 경찰서에 가져간다.)
심심하면 한 번씩 로또를 사는 남편이 생각났다.
아니, 그러다 진짜 당첨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 거지?
그게 얼마나 곤혹스러운 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