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꽃
정호승
매화나무 가지 하나 꺾어 회초리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회초리로 나를 매질하듯
인간답게 살아오지 못한 나를 매질하기 위하여
안방에 종아리를 걷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도 나를 매질하지 않는다
시간을 수돗물처럼 펑펑 써버린 죄
책을 버리고 공부하지 않은 죄
평생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벌하지 않는다
어머니
다시 회초리를 들어 사는 게 왜 그 모양이냐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피가 나도록 제 종아리를 때려주세요
간절히 소리쳐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종아리를 걷은 채 서서 울먹이다가
어머니가 빨래하던 수돗가에 회초리를 갖다놓았다
봄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회초리에 매화꽃이 피었다
종아리를 걷고 다리를 쓸어본다
회초리를 겁내던 보드랍던 맨살은
딱딱하게 굳어 회초리의 기억을 잊었다
모래지옥에 빠진 일상을 구할 힘이 없어
마지막 한 숨만 남겨놓고
구덩이에 스스로 파묻었을 때
어머니의 회초리만은 끝내 놓지 못했다
그 끝에 매달려 겨우내 웅크렸다
봄, 어머니의 매질로 깨어나 다시 싹을 틔울때까지
시인도 나도 모두 그렇다
시를 읽고 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시를 퍼 올리기 위해 마흔 해의 마중물이 필요했나 보다.
펌프가 새것일 때 시를 끌어올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렸을 때 단번에 건졌다면 그 후 펌프질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을 테다.
마흔 살이 낡은 펌프로는 더 오랫동안 힘차게 펌프질을 해야 한다.
이 아름다운 노동이 내 몫이라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