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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27. 2023

도시인 3



도시인 1과 2 사이에서 본  비 도시인 3이 태어났다. 출신의 혼란을 겪는 둘과는 다르게 3 이 확고한 도시인의 정체성을 가졌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얼마 전부터 집에 다갈색에 긴 더듬이와 날개를 가진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벌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도시인 1은 책을 던져서 깔아뭉개는 방법으로 해결을 하는데 방치돼 있던 책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어찌 보면 유용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인 2는 살충제를 마구잡이 뿌리는 방법을 쓰는데 도시인 1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할 만도 한 것이 한 번은 살충제를 충분히 도포하기도 전에 분사력에 떠밀려 장롱 밑으로 목표물이 날아가 버려 기분만 더 찜찜해졌다.


“도대체 어디서 자꾸 나오는 거지?”

“글쎄, 근데 바퀴벌레는 아니겠지?”

“아니야, 바퀴벌레가 얼마나 큰데. 안경알만 하다니까.”


도시인 1은 고등학생 시절 컴컴한 하숙집 주방 벽에 까만 무늬처럼 붙어서 눈속임을 하다가  불을 켜면 살아나 재빨리 어둠 속으로 숨어들던 검은 생명체를 기억했다.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 밑에서 반쯤 살고 반쯤 죽은 상태로 관절이 제각각 뒤틀린 다리를 버둥거리며 비닐 장판을 스칠 때마다 타닥타닥하던 움직임을 보았을 때 너무 놀라면 비명도 못 지른다는 말이 사실임을 체험했다.


“설마.”

“진짜야. 저렇게 손톱만 하지 않다니까.”

“아무튼 조심하자.”


도시인 1과 2는 마주 보고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3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둘은 벌레가 보이는 족족 몰래 잡아 없애기 바빴다.


어느 날 저녁, 샤워를 하던 도시인 3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벌거벗은 채 온몸을 떨며 뛰쳐나왔다.

그동안 욕실에는 나타난 적이 없어서 방심하고 있다가 한 방 크게 먹은 도시인 1과 2는 3을 진정시키며 벌레를 잡느라 소동이 일었다.


“바퀴벌레!”

“아니야. 아파트에 바퀴벌레가 어딨어. 잘 못 본거야.”

“바퀴벌레!”


1과 2와는 다르게 도시인 3은 확고했다. 바퀴벌레와는 절대 한 공간에 있을 수 없다며 자기 방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날 이후로 벌레가 나타날까 봐서가 아니라 나타난 걸 3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던 도시인 1은 아파트 관리소에 문의 전화를 했다.


“집에 바퀴벌레처럼 생긴 벌레가 자꾸 생기는데......”

“아, 바퀴벌레처럼 생긴 게 아니라 바퀴벌레입니다. 지금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근처 단지들이 다 난리예요. 이번 주만도 벌써 신고전화가 몇 건인지 모릅니다. 오시면 붙이는 약 드릴게요. 주방 쪽에 붙여놓으세요.”


도시인 1은 말허리를 잘려 당황한 데다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동안 바퀴벌레를 바퀴벌레라 부르지 못한 금기가 관리소 직원의 말 한마디에 허무하게 깨져버린 것이다.

며칠 뒤 도시인 2가 구입해 설치해 놓은 초음파 해충 퇴치기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보고 나서 도시인 1은 집안 곳곳 손이 닿는 곳에 두꺼운 책을 쌓아두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도시가 벌레 떼로 뒤덮인 사진을 보았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도시 아파트에서 이 정도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바퀴벌레가 출몰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환경에 문제가 생겼거나 기후변화 탓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어느 쪽이든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이런 종류의 문제가 가장 무섭게 느껴진다.

이번 사건으로 또 한 번 자신의 출신을 각인시킨 도시인 3은 다른 의미로 무섬증을 겪고 있는 요즘이다.



바퀴벌레에 대한 참조

전세계적으로 약 4,000종의 바퀴벌레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바퀴(독일바퀴), 산바퀴, 줄바퀴, 경도바퀴, 집바퀴(일본바퀴), 이질바퀴(미국바퀴), 잔이질바퀴(호주바퀴), 먹바퀴, 갑옷바퀴, 가시바퀴 등 10종이 알려져 있다. 몸은 예외없이 편평하고 납작하며 광택이 난다. 몸길이 약 1cm의 소형의 것에서부터 남아메리카에 사는 블라베루스(Blaberus)와 같이 대형의 것까지 다종다양하다. 몸빛깔은 다갈색 또는 흑갈색계인데, 그 중에는 연한 녹색 또는 금속성 녹색인 것도 있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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